누가 왜 조선을 신화로 만들었나? 역사심리학적 분석
조선이라는 이름은 긴 역사를 가졌지만, 해방 이후의 한국 사회가 그 이름을 다루는 방식은 언제나 일정한 심리적 기원을 품고 있었다. 해방 직후의 역사학은 ‘사실을 밝히는 학문’이라기보다, 새로운 국가가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일종의 심리 정치였다. 상처받은 집단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 구조, 즉 자기에게 유리한 진실을 조립하는 과정이었다. 이 서사 구성의 출발선에는 ‘실제 조선이 어떠했는가’보다 ‘조선이 어떠했으면 좋겠는가’가 놓여 있었다. 국가 정체성의 공백과 심리적 불안이 뒤엉킨 혼란 속에서 해방기의 지식인들은 조선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대신, 조선의 결함을 희석하거나 은폐하거나 심지어 아름답게 포장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재구성했다. 이 지점에서 해방 이후의 역사학은 이미 비판적 분석이 아니라 정치적 심리적 기능을 수행하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의 역사학은 ‘구조적 원인 분석’보다 ‘피해자 정체성 강화’를 택했다
해방 이후의 역사학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우리의 역사’라는 말에서 비롯되는 집단적 착시다. 역사학은 사실과 해석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지만, 해방 후 한국에서 ‘우리의 역사’는 거의 종교적 상징처럼 사용되었다.
이런 구조는 역사학을 사실 탐구의 학문이 아니라, ‘심리적 치료제’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조선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는 대신, 조선의 긍정성을 재구성하는 데 에너지가 집중되었다. 한국 사회는 조선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할 기회를 잃었고, 그 대신 ‘조선 신화’를 만들어냈다.
결국 피해 기억을 중심으로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식은 조선의 실패를 은폐한 채, 외부 억압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심리적 구조를 만든다
해방 후 지식인들이 선택한 서사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첫째는 피해자 중심의 민족주의 서사, 둘째는 조선의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서사, 셋째는 외부 요인 중심의 붕괴 설명이었다.
식민사관은 조선을 폄하했지만, 그 부정 과정에서 지식인들은 조선을 과도하게 미화하는 또 하나의 허구적 서사를 생산했다.
식민사관의 부정을 통해 탄생한 첫 번째 신화는 조선의 도덕적 우월성이다. 두 번째 신화는 조선의 잠재적 근대성이다. 세 번째 신화는 조선의 자율적 공동체성이다. 네 번째 신화는 조선의 문화적 우수성이다. 다섯 번째 신화는 조선의 역사적 일관성이다. 식민사관은 조선의 역사를 무기력한 반복으로 설명했고, 지식인들은 이 부정적 해성을 거부하기 위해 조선의 역사에 일관된 ‘민족적 흐름’을 부여했다.
민족주의 사학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 기여했지만, 조선을 성찰할 기회를 빼앗고, 역사 분석을 감정적 위로의 영역으로 돌려놓았다.
민족주의 사학의 권력화는 조선에 대한 인식을 왜곡하는 효과를 낳았다. 제도화된 민족주의 사학은 조선을 비판하는 작업을 ‘정통성 훼손’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펴낸곳: 장수하늘소. 2026. 2. 13 발행. 강서도서관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