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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황석영 장편소설

작성자녹양|작성시간26.06.19|조회수35 목록 댓글 0

한알의 씨앗이 품은 우주

나이테 안에 깃든 파란만장한 연대기

 

소설은 새 한 마리의 여정으로 문을 연다. 시베리아의 차가운 눈보라를 뚫고 날아온 개똥지빠귀가 금강 하구의 빈터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새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뱃속에 품고 있던 팽나무 씨앗 하나는 긴 겨울을 견디고 싹을 틔워 마을의 수호신 할매가 된다. 소설은 이 팽나무가 한겹씩 나이테를 늘려갈 때마다 그 그늘 아래를 스쳐간 인간군상의 파란만장한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조선 건국 초기, 굶주림에 지쳐 절에 들어왔다 환속하여 갯벌을 일구던 승려 몽각은 나무 아래서 나는 없다. 나무도 풀도 물도 바람도 돌도 모두 나와 같다”(81~82)는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나무와 영적으로 교감하며 마을의 길흉화복을 빌었던 당골네 고창댁’,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유분도’, 그리고 사람이 곧 하늘이라 외치며 우금치 전투에서 산화한 동학농민군 배경순까지. 황석영은 역사책의 행간에 묻혀 있던 민초들의 삶을 특유의 입담과 생생한 묘사로 복원해내며, 이들이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으되 할매라는 거대한 생명의 뿌리 아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가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서사는 더욱 격정적으로 휘몰아친다. 일제강점기에 수탈을 위해 닦은 군산 비행장 활주로 옆에서 팽나무 할매는 끔찍한 비극을 목격한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어린 나무가 어린 일본군 특공대 조종사들의 권총 사격의 표적이 되어 온몸이 짓무르고 썩어 들어가 끝내 베어진 것이다. 해방 후에도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미군기지의 확장과 새만금 간척사업이라는 폭력적인 개발로 인해 바닷길은 막혀버린다. 저자는 평생을 갯벌에 기대어 살아온 어민들의 절규와 함께 물을 찾아 기어 나온 수만마리 조개가 말라가는 갯벌의 참혹한 현장을 서늘할 정도로 정밀하게 묘파한다. 그러나 소설은 절망에서 멈추지 않는다. 갯벌의 마지막을 기록하는 활동가 배동수와 순교자의 후손이자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유 방지거신부는 파괴된 땅을 지키기 위해 연대한다. 철조망 속에 갇힌 팽나무를 찾아가 끌어안는 신부와,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갯벌 한가운데서 기적처럼 들려오는 뭇 생명들의 거대한 합창 소리는 인간의 탐욕으로도 결코 끊어낼 수 없는 생명의 끈질긴 생명력을 증언한다.

 

문명전환기에 마주한 깊고 뜨거운 위로

다시 한번 확인하는 한국문학의 웅장한 나이테

 

할매는 방대한 시간대를 다루지만 각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사연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압도적인 흡인력으로 독자를 단숨에 600여년의 시간 속으로 빨아들인다. 소설은 역사의 비극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던 모든 생명의 온기를 끝까지 껴안으며 위로한다. 문명전환기에 선 우리에게 민담적 상상력과 생태적 사유를 통해 새로운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이 작품은 하나의 작은 씨앗이 얼마나 광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를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웅대한 시적 서사의 세계로 보여준다”(백지연 문학평론가). 한국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가며 전세계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지금, 할매K문학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시켜줄 기념비적인 역작이라 할 만하다. 한국적인 정서 안에 인류 보편의 생명 사상을 담아낸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세계적인 거장 황석영이 도달한 웅숭깊은 사유의 숲을 거닐게 될 것이다. 또한 책을 덮는 순간 독자들의 마음속에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거대한 나무 한그루가 자라날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기억이자 근원을 되찾는 여정이다. <출판사 서평 참조>

 

펴낸곳: 창비. 2026. 1. 2 발행. 강서도서관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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