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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御營不營)의 어원

작성자늘봄(常靑)|작성시간13.08.28|조회수162 목록 댓글 0

‘어영부영’이란 말은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는 행위를 말한다. 이희승 국어대사전의 어영부영 풀이는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내는 모양’이다. 물론 조직이나 사회에서 가장 못마땅한 행태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타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냉혹하다. 어영부영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서 기업인이든 자영업자든, 직장인이든 실업자든 ‘어영부영’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말이 잘 어울리는 행태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내 개인적인 것뿐 아니라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온통 어영부영이 판을 친다. 사회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치적으로는 더욱 그렇다.

국민은 없고 오로지 자기들의 ‘이기’만 있는 정치. 아집이 판치는 세상. 식당에서 맛없는 해장국 내놓고 속 풀라고 하는 것이나, 정치권에서 보이는 실용주의 간판만 내걸고 허송하는 모습이 ‘어영부영’의 제대로 된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는 이 어영부영이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어영부영’이란 말은 어영청에서 유래되었다. 원래 ‘어영청(御營廳)’은 임진왜란 뒤 5위(五衛)에 대체되어 설치된 조선시대 3군문(三軍門)의 하나로 최정예 야전군을 일컫는다. 1623년(인조 1) 반정공신인 이귀가 개성유수(지금의 개성시장)로 있으면서 건장한 자 260명을 모집하여 화포술을 가르치면서 이를 ‘어영군(御營軍)’이라 한 것이 그 시초이다. 따라서 어영청은 조선시대 가장 군기가 센 부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 말기로 오면서 최정예부대 어영군의 군기가 풀어져 오합지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어영청(御營廳)’의 군기(軍氣)가 말이 아니어서 ‘어영은 군대도 아니다. 즉 어영비영(御營非營)이다’라는 속담까지 생겼다. 여기서 ‘어영비영’이 발음의 편의상 ‘어영부영’으로 바뀌어, 별 생각 없이 일이 되어가는 대로 행동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지금까지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어영청의 군기와 훈련상태에서 ‘어영부영(御營不營)’이 유래되었다니 아이러니다.

여기에는 북벌(?)군주로 잘 알려진 효종과 관련이 있다. 삼전도 치욕을 당한 조선의 군주인 인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효종. 청나라를 치겠다는 효종의 북벌은 10년을 목표로 삼았다. 10년 동안 3만 명의 정예 북벌군을 양성해서 명나라와 연합군을 형성하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1652년(효종 3) 효종의 북벌(北伐)계획에 따라 어영청을 정비·강화, 비로소 군보(軍保)를 정하고 군영을 설치하여 이완(李浣)을 어영대장으로 북벌계획의 본영(本營) 구실을 하였다. 효종 때의 어영군은 별초병과 기병을 주로 한 정예부대로서 경상·전라·충청·강원·경기·황해의 6도에 나누어 배치되었다.

그러나 북벌계획은 그야말로 ‘계획’으로 끝났다. 명과 대치하던 청의 세력이 들불처럼 커지고 내부 문제는 말이 아니었다. 원래 어영청 상위 직급은 양반 자제들이 차지했다. 그래서 실무보다는 형식을 따졌다. 싸움은 아랫것들이 하는 것이라며 종을 대신 내보내고 그들은 주색잡기를 즐겼다. 병졸들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했다. 정예군은 고사하고 당나라 군대보다 못한 오합지졸이었다. 효종의 3만 정예군 양성 목표는 고작 5,600여 명의 어중이떠중이 부대로 만족해야 했다.

결국 어영청은 1706년(숙종 32)에 1영5부제로 기구가 축소되었으며, 이후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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