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답사자료방

신선이 되고 싶었던 고구려 사람들

작성자샘물|작성시간07.04.26|조회수69 목록 댓글 0

신선이 되고 싶었던 고구려 사람들

 

종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고구려 사람들에게도 종교는 중요한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에게 최고의 신은 천신 즉 하늘의 신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신은 해신과 달신 등이었습니다.
특히 고등신과 부여신은 고구려 사람들에게 중요한 신이었습니다. 고등신은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왕입니다. 고구려 사람들에게 추모왕은 천신의 자손으로 믿어졌습니다. 천신의 자손이 세운 고구려에 산다는 자체가 고구려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추모왕은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죽지 않은 인간이자 신이었습니다. 부여신은 추모왕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입니다. 그녀는 추모왕이 나라를 세우도록 지혜를 준 지혜의 여신이었으며, 오곡 곡식을 준 농사의 신, 대지의 신이었으며, 물의 신 하백의 딸로 물의 신이기도 했습니다. 이 두 분은 매년 동맹 축제에서 주된 신으로 모셔졌습니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동맹 행사에서는 유화부인이 해모수와 만나 추모왕을 낳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고구려가 바로 하늘의 자손인 추모왕이 세운 나라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행사였던 것입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동맹 행사에서 함께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신들에게 감사하는 축제를 즐겼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도 영혼이 계속해서 살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구려 수도인 국내성에 거대한 무덤들이 만여 개 이상 몰려 있었던 것은 이러한 믿음 때문입니다. 고구려왕의 명칭에는 왕의 무덤의 위치를 가리키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동천왕은 동천원의 무덤에 계신 왕이란 뜻이고, 고국원왕은 고국원의 무덤에 계신 왕이란 의미입니다. 광개토태왕의 정식호칭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서도 국강상이란 말이 바로 왕의 무덤이 있는 장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고구려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고구려왕들은 시조인 추모왕의 묘를 비롯해 조상의 무덤에서 수시로 제사를 올렸습니다.
광개토태왕은 자신의 무덤이 만년 후에도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습니다. 무덤은 죽은 자와 산자가 만날 수 있는 곳이었고, 영혼이 천상에 오르기 위해 한 동안 머무는 공간이었습니다. 따라서 무덤을 튼튼하게 만들었고, 수묘인을 두어 무덤을 잘 관리했던 것입니다. 또한 무덤 내부에 영혼을 수호하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사신과, 수문장과 호위무사 등도 그렸으며, 무덤 주인공의 생전의 생활상도 그렸던 것입니다. 고구려인들은 용, 학, 기린 등을 타고 다니며 오래도록 살아가는 신선의 삶을 최고의 이상적인 삶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고분벽화 천장에는 신선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춤추며 즐겁게 사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오회분 4호묘와 5호묘 등의 고분벽화에는 마치 그리스의 헤파이도스신처럼 농사의 신, 불의 신, 수레바퀴 신, 대장장이 신 등 기능을 가진 신들이 보입니다. 고구려 사람들이 보통 인간이 갖지 못한 기능을 가진 자들을 신으로 섬기기도 했습니다. 종교적 의례를 담당하는 무당이나, 제사장, 제사에서 희생물을 담당하는 관리 등도 있었고, 수시로 신들을 받드는 의식이 치러졌으며, 추모왕의 사당을 비롯한 신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인들이 믿었던 신앙의 경전이나 교리체계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고구려 종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것은 372년에 소수림왕이 종교로 인정해준 불교였습니다. 불교는 구체적 신의 모습을 갖춘(神像)을 가진 부처님과 전문 신앙인의 조직체인 교단과 교리체계인 경전을 제대로 갖춘 종교였습니다. 고구려에서 불교는 왕과 왕실 가족의 적극적 지원을 받으며 곳곳에 사찰을 건립하며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습니다. 정릉사, 장천1호벽화고분, 연가7년명금동일광삼존상 등은 대표적인 불교 유적과 유물입니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해준 것도 고구려였고, 삼론종을 발전시킨 승랑, 일본 호오류사 금당벽화를 그린 담징, 장수왕 시절 첩자로 활약한 도림 등 유명한 스님도 많이 등장하였습니다.
고구려에서 불교는 고구려인의 전통적인 천신신앙과 융화되어 일반 백성들에게 까지 서서히 전파되었지만, 신라, 고려만큼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고구려에 불교가 수용되어 발전한 것은 우리나라 종교발전에 큰 계기였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