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기(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정초가 되면 누구나 올해는 무슨 띠의 해이며, 그 해의 수호 동물(守護 動物)이라 할 수 있는 십이지의 띠동물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서 새해의 운수를 예점(豫占)하려고 했다. 또한 그 해에 태어난 아이의 운명과 성격을 띠동물과 묶어서 해석하려는 풍속도 있어 왔다.
새로운 띠동물을 대하면서 그 짐승의 외형, 성격, 습성 등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를 통해 새해를 설계하고 나름대로 희망에 찬 꿈과 이상을 품는다. 이러한 것을 가지고 운명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근거가 없는 일이지만 다만 세상이 시끄럽고 개인의 미래 생활이 불안하여 해가 바뀔 때마다 어떤 새로운 기대를 걸어 보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 모른다.
물론 이들 12지의 띠동물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하게 제시할 수 없지만 우리 조상들은 각각의 띠동물로부터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서 나름대로 한 해의 운수를 예견하려 했고, 나아가서 생활 교훈과 행동 원리까지 얻었다는 사실은 여러 풍속과 문헌, 유물, 유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은 그 당시의 여러 가지 생활 문화나 종교, 관념 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떠한 의미를 띠고 있는 동물 상징(動物 象徵)을 많이 사용했다. 바위 그림이나 동굴 벽화를 비롯하여 동물형 토우와 토기, 고분 벽화 등에는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그 당시 사람들이 나타내고자 했던 의미와 관념이 숨어 있다.
이들 고대 유물과 유적에서 나타나는 많은 동물들은 현재적 사고만으로는 그 온전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국 문화에 등장하는 동물 상징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화적, 사상적 배경과 그 맥락 속에서 연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각 동물의 외형이나 행태 등에서 상징성, 암시성을 부여하였다.
띠동물에 대한 의미와 싱징도 세대를 거듭해 전승되어 오는 동안 우리 민족에게 어떤 특수한 의미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 띠동물을 통해서 한해의 운수, 아이들의 성격과 운명, 궁합을 통한 결혼 생활을 예측하고자 했다.
예컨대, 양의 순박하고 부드러운 성격에서 양띠[未]도 온화하고 순하여 이 해에는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구박을 받지 않고, 잔나비띠는 원숭이처럼 재주가 많다느니 하는 식의 俗說이 전해 오고 있다. 쥐해[子]에 태어난 사람은 평생 먹고 살 걱정이 없다느니, 닭해[酉]에 태어난 사람은 마치 닭이 무엇을 파헤쳐야 먹을 것이 나타나듯이 돈을 써야 돈을 번다느니, 소띠[丑]가 5,6월 오전 중에 태어나면 이 때 소가 일을 많이 하듯이 그 사람도 평생 일복이 많다느니 하는 등의 속설(俗說)이 있다.
1. 십이지의 역사와 의미
한국의 십이지상은 중국적 내용에 불교적 표현을 빌어서 불교 건축물이 아닌 능묘에서 나타나다가 불교적 건축물로 이행하여 갔고, 시대적으로도 일시적인 유행사조로 그친 것이 아니라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고, 현재는 띠동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사신(四神)과 십이지상(十二支像)에 대한 사상은 역사기록상으로 한족(漢族)에게서 발생하였음은 일반화된 견해다. 처음엔 십이지가 별의 모양을 모방하여 다만 뉴(?)로서 표현되고 또 시간적인 관념에 의하여 12개월의 부호로서 쓰였으나 그 후 그것은 방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어 십이지를 지상의 방위에 배당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것이 기년(紀年)에 응용되어 정리된 것은 기원 전후였다. 중국에서 갑을병정(甲乙丙丁) 등의 십간(十干, 天干)과 자축인묘(子丑寅卯) 등의 (十二支, 地支)의 글자를 아래 위로 맞추어 날짜의 명칭으로 사용한 것은 3천년 전부터이다. 그것은 갑골문에 丙子, 癸未, 乙亥, 丁丑 등의 글자들이 보임으로써 알 수 있다. 그러나 십간과 십이지를 배합하여 60갑자가 합성된 것은 상당히 연대가 지난 뒤에 성립되었다. 이것을 가지고 연대로 표기한 것은 약 2천년전, 한대(漢代)인 기원전 105년 丙子年부터 시작되었다.
십이지가 다시 동물로 상징되어 자를 쥐, 축을 소, 인을 호랑이 등 동물을 배정시킨 것은 2세기경인 후한(後漢)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서 처음으로 생긴 것이다. 이런 동물로서의 표현이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한경(漢鏡)에서이다. 그 후 오행가(五行家)들이 십간과 십이지에다 金木水火土의 오행을 붙이고 상생상극(相生相剋)의 방법 등을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배열하여 인생의 운명은 물론 세상의 안위까지 점치는 법을 만들어 냈다.
그 후 긴 공백기간을 거쳐 당대(唐代)의 종이나 부장품으로서 용(俑)의 형태로 나타난다. 십이지가 다시 수수인신상(獸首人身像)으로 변모하는 것은 당(唐) 중기로서 신라의 십이지상의 발생시기와 견주어 전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동시적이다.
이것이 다시 갑주(甲胄)를 입고 신장(神將)으로서 모습을 갖춘 것은 신라가 처음이고 능묘의 바깥 수호신[외호(外護)]으로서 부조(浮彫)의 형태로 대규모로 나타난다. 동시에 불교 건조물에 수수인신(獸首人身)의 형태이지만 특이한 도무상(跳舞像)으로 돌연 나타난다. 이 두 가지 새로운 변모, 즉 신장으로서의 십이지상, 도무상으로서의 십이지상은 오직 신라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문화현상이다. 고려 시대에 이르면 이것은 다시 동물의 탈을 벗고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관(冠)에 축소되어 잔존하는데, 다시 묘내(墓內)의 석관에 음각되거나 내벽의 벽화로 나타나게 되었다.
어쨌든 통일신라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십이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십이지상는 8세기에서 9세기에 걸친 거의 같은 시기의 것으로 능묘 십이지 호석, 능묘의 주변, 석실 내부의 시상 주변, 화장골호 주변 등 여러 방법으로 배치하였다. 그러나 사자의 주변이라는 기본적 배치방법은 변함없다.
둘째, 십이지의 복장은 통일신라에서 창안된 무복, 문복과 더불어 중국풍의 문복 십이지 용의 유행도 병행하고 있다.
셋째, 십이지상의 재료는 화강암, 납석, 청동, 니토(泥土) 등 매우 다양하다.
넷째, 십이지상은 시간신과 방위신으로 8-9세기에 걸쳐 크게 유행하였고, 그것이 그 이후 한국 능묘제도의 신앙적 핵심을 이룬다.
다섯째, 십이지상이 조형적으로는 쇠퇴되나, 사상과 신앙은 약화되었다고 볼 수 없고 십이지 신앙이 대중화 되었다.
십이지의 사상과 신앙은 현재 띠동물로서 가장 많이 전승되고 있다.
십이지는 시간과 방위를 나타내는 시간신과 방위신으로 나타나면서 불교와 결부된다. 불화(佛畵)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약사여래 권속으로서 십이지 신장으로 표현된다. 다음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점술가들은 각각 시간과 방위에서 오는 사기(邪氣)는 그 시간과 방위를 맡은 12지의 동물이 막고 물리친다고 믿었으며, 불가(佛家)에서는 그 시간과 방위를 지키는 불보살과 신중이 물리친다고 믿었다.
십이지의 띠동물 순서가 정해진 사연은 쥐가 십이지의 첫자리가 된 설화에서 엿볼 수 있다.
옛날, 하늘의 대왕이 동물들에게 지위를 주고자 했다. 이에, 그 선발 기준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정월 초하루에 제일 먼저 천상의 문에 도달한 짐승으로부터 그 지위를 주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각 짐승들은 기뻐하며 저마다 빨리 도착하기 위한 훈련을 했다. 그 중에서도 소가 가장 열심히 수련을 했는데, 각 동물들의 이런 행위를 지켜보던 쥐가 도저히 작고 미약한 자기로서는 먼저 도달함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그 중 제일 열심인 소 등에 붙어 있었다.
정월 초하루가 되어 동물들이 앞다투어 달려왔는데, 소가 가장 부지런하여 제일 먼저 도착하였으나, 도착한 바로 그 순간에 소에게 붙어 있던 쥐가 뛰어내리면서 가장 먼저 문을 통과하였다. 소는 분했지만, 두 번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정초가 되면 누구나 올해는 무슨 띠의 해이며, 그 해의 수호 동물(守護 動物)이라 할 수 있는 십이지의 띠동물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서 새해의 운수를 예점(豫占)하려고 했다. 또한 그 해에 태어난 아이의 운명과 성격을 띠동물과 묶어서 해석하려는 풍속도 있어 왔다.
새로운 띠동물을 대하면서 그 짐승의 외형, 성격, 습성 등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를 통해 새해를 설계하고 나름대로 희망에 찬 꿈과 이상을 품는다. 이러한 것을 가지고 운명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근거가 없는 일이지만 다만 세상이 시끄럽고 개인의 미래 생활이 불안하여 해가 바뀔 때마다 어떤 새로운 기대를 걸어 보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 모른다.
물론 이들 12지의 띠동물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하게 제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 조상들은 각각의 띠동물로부터 상징적 의미를 부여해서 나름대로 한 해의 운수를 예견하려 했고, 나아가서 생활 교훈과 행동 원리까지 얻었다는 사실은 여러 풍속과 문헌, 유물, 유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