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전각에 대하여..
1. 전각과 가람
전각은 가람을 구성하는 여러 건축물을 뜻한다. 먼저 가람에 대하여 살펴보면 가람이란 산스트리어(범어)의 'Sangharama'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음역하여 승가람마 혹은 가람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가람의 본래 의미는 중원(衆園)으로서 많은 승려들이 한곳에 모여서 불도를 수행하는 장소인데, 후세에는 단순한 건조물로서의 전당을 가르치는 명칭 또는 사찰의 통칭이 되기도 한다. 원래 초기 불교시대에는 '일일 일식일숙'의 원칙 하에 살았기 때문에 이러한 가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행하여 대각(大覺)하였으므로 특별한 거처를 정해 수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점차 시대가 지남에 따라 거처가 필요하게 되어 가람이 형성되었다. 가람은 세 종류로 나뉘는데 평지가람, 산지가람, 석굴가람이 그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평지가람은 평지에 있는 것(사람이 번화하고 눈에 잘 띄는 곳)이고 산지가람은 산지에 가람이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가람은 산지에 있다. 또한 석굴가람은 거대한 암벽을 뚫어서 만든 가람으로 우리 나라에는 대표적으로 석굴암이 있다. 그 규모는 방대하나 암질이 사암으로 되어 있어 그 재질이 약하여 뚫기가 쉬운 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것은 강력한 화강암질이어서 뚫기가 용이하지 못하다. 앞에서 말한 사찰 가람내의 전각을 보면 우선 우리 나라 불교의 특징은 토착적인 샤머니즘과 융합되어 약간의 주술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그 성격은 가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2. 가람내의 전각
(1) 대웅전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고도 하며 한국사원에 가장 많은 불전이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주불로 봉안하고 그 협시로 문수, 보현보살을 봉안한다. 대웅전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고 할 때에는 주불로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며 각 여래불 좌우에 제각기 협시불을 봉안하기도 한다. 대웅전이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고 있음은 석가모니의 법회모임이 영산회 모임, 즉 영산회상을 나타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2) 극락전
극락전 혹은 무량수전이라고 한다. 절에 가면 아미타불은 극락전에 계시고 극락세계를 다스리는 데 범어로 'Amitayus'나 'Amitabha'라고 하고 한문으로 번역하면 '아미타(阿彌陀)'가 되며, 무량(無量)하다는 뜻이다. 무량수는 무한한 생명과 자비이고 무량광은 광명과 지혜이다. '나무아미타불'은 무한한 생명과 지혜로써 부처님께 귀의하겠다는 마음을 다짐하는 구호가 된다. 나무(Namas Namo)는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은 정토삼부경이라고 해서 극락의 모습, 그 곳에 상주하여 설법하고 계신 아미타불(무량수불,무량광불)을 넉넉히 칭송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곳 극락으로 가 볼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아미타전'이라고 했을 때는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모신 불전임을 뜻하고 무량수전이라고 했을 경우 무량수불을 주불로 한 것을 의미하는데 아미타여래와 무량수불이 결국 같은 여래불이므로 마찬가지의 뜻을 갖는 불전이다. 극락전의 명칭은 아미타여래나 무량수불의 정토를 극락이라 한데서 온 것이다.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봉안하고 그 협시로 관음대세지보살을 봉안한다.
(3) 약사전
약사여래를 주불로 모시고 그 협시를 월광보살, 일광보살을 모시기도 한다. 이 불전은 약사여래의 동방약사유리광회상(東方藥師琉璃光會上)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4) 관음전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하며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한 불전이다. 그 협시로는 남순동자(南巡童子), 해상용왕(海上龍王)을 들 수 있으나 이 들은 조상하지 않고 후불탱화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5) 대적광전
화엄경에 의한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신 전각이고, 화엄경에 근거하고 화엄전, 화엄경의 주불이 비로자나불이라는 뜻에서 비로전, 그리고 화엄경의 세계가 연화장 세계, 즉 대정적의 세계라는 뜻에서 대적광전이라고 한다. 주불은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좌우에 화신불로서의 석가모니불, 보신불로서의 아미타여래를 봉안한다. 이에 더불어 화신불과 보신불은 각각 그 좌우에 문수, 보현, 관음, 세지보살을 협시로 봉안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대적광전은 불전 중에 가장 큰 규모가 된다.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이 그 예이다.
(6) 영산전
석가모니불과 그의 일대기인 팔상탱화를 봉안한 불전을 말한다. 영산이란 석가의 설법회상의 준말이며, 팔상이란 석가의 생애를 여덟으로 구분한 것을 뜻한다. 팔상전의 주불은 석가모니불이며 좌우 협시로는 상리보살과 미륵보살로 봉안한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법주사 팔상전이 있다.
(7) 용화전
일명 미륵전이라고도 하는 이 불전은 미륵불을 주불로 봉안한다. 미륵불의 회상, 즉 그 세계가 용화세계이므로 용화전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금산사 미륵전이 있다.
(8) 나한전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봉안하고 좌우 주위에 석가의 존자인 16나한상을 봉안한다. 이 불전은 불교에 있어 수도승에 대한 신앙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9) 명부전
일명 지장전, 시왕전, 쌍세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협시로 도명존자, 무독귀왕을 배열한다.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배열하고 있다. 그래서 지장이 강조될 때는 지장전이라고 하고 명부시왕이 강조될 때는 명부전이라고 한다. 명부시왕신앙의 불교적 전개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육도 윤회에서 고통받는 일체 중생을 구제하는 일을 서원으로 세우고 있다. 이 보살은 지옥에 들어서 있으며 죄인들은 염라대왕의 업경대 앞에서 지은 죄를 숨김없이 공술 해야 한다. 두루마리에 그런 죄목들을 차례로 적어 놓고, 공술이 끝났을 때 업경대에 더 이상의 죄가 비쳐지지 않으면 심문은 완료된다. 죄를 적은 두루마리를 저울에 달아보면 죄가 무거운지 가벼운지가 판가름 난다. 이 과정을 지장보살이 지켜보면서 죄를 변호해 주기도 한다. 지장전에는 지옥에서의 그런 광경들을 그린 십왕원(十王圓)이 있다. 십왕원에 의하면 죽은 사람들은 이레에서 사십 구일까지와 백일과 일년, 삼년 등 열 차례에 걸쳐 여러 왕 앞에 나아가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런 내용은 십왕도에 묘사되어 있다. 십왕탱화에는 화폭 아래에서 삼분의 일에 이르는 부분에 색구름이 피어오른다. 윗부분에는 책상에 앉은 대왕이 중심에 있고 구름 아래로는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표정들은 근엄하지만 그들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스며있다. 고통을 희열로 발산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장보살의 제도 중생의 의도를 깨달은 것일까? 묘한 이치이다.
(10) 조사당
선종사찰(禪宗寺刹)은 조사에 대한 신앙이 강하기 때문에 조사의 사리탑인 부도를 건립하고 조사당을 지어 역대 조사들의 영정을 봉안했다는 점에서 응진전이라고도 한다.
(11) 사천왕문·인왕문·금강문
모두가 사찰산문으로서 각각 사천왕·인왕·금강역사 등의 불법 옹호신을 봉안하여, 사찰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악귀를 제거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들 산문을 통과함으로서 가람의 내부는 청정도량이 되는 셈이다.
(12) 산신각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없는 토착 신이나,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해 먼저 호법신중이 되었다가 원래의 성격을 불교의 안에서 되찾게 된다. 산신을 호랑이와 노인상으로 표현하고 탱화로서 이를 도상화한 전각이다. 산신각은 한편으로는 가람의 수호신적 기능을 갖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래적 산신신앙의 불교적 전개를 나타낸다.
(13) 칠성각
칠성도 산신과 마찬가지로 원래 불교와는 무관한 신이나, 산신과 같은 과정을 거쳐 수명 장수신의 원래 성격을 되찾게 된다. 칠성각에는 칠성의 화현인 일곱여래 등을 탱화로 그려 봉안하여 신앙하게 된다.
(14) 독성각
독성이란 스승없이 혼자 깨우친 성자, 즉 독수선정을 말하고 중국 천태산의 나반존자가 그같은 독성이라며 신앙하고 있으나, 한국사원에서 독성이란 단군 신앙의 불교적 전개라 볼 수 있다. 이의 불교적 수용도 산신이나 칠성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15) 삼성각
산신·칠성·독성을 한 전각에 봉안한 것이다. 이 경우 재래의 수·복·재의 삼신신앙과의 습한 현상을 살필 수 있게 된다.
(16) 누각
사원의 중심 불전 앞에는 누각이 세워진다. 이 누각에서는 대법회가 있을 때 불전에서 행할 행사를 행하게 된다.
(17) 일주문(一柱門)
사찰을 들어가다 보면 제일 앞에 일주문이 있는데 이는 사찰의 관문이다. 한문 그대로 풀이하면 '한 개의 기둥으로 된 문'이지만 두개의 기둥이 일직선상에 놓여있다고 하여 일주문이라 하는 것이다.
(18) 당(幢)
사찰의 문 앞에 세우는 기(旗)이다. 불,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기리거나 고승의 명예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또 중생을 계도하고 마군(魔軍)들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불전이나 불당앞에 세운다.
(19) 당간(幢竿)
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 의식이 있을 때 당(幢)을 달아두는 기둥, 사찰경내 전면에는 법당(法幢)을 다는 당간을 세우는 것이 격식이어서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두개의 지주를 세우게 된다. 지금 당간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지주만 몇 개 남아 있을 뿐이다. 공주 갑사에는 신라시대 유일의 철제 당간이 남아 있는데 높이 약 50cm의 철통 24개를 연결, 전체 약 15cm의 당간을 이루는 형식이고, 청주 용두사지(龍頭寺址)의 철제당간은 고려 광종 13년(926)에 조성된 것으로 지름 40∼50cm, 길이 60∼70cm의 철통 20여개를 연결한 형식이며, 전라남도 나주읍 동문밖 석제당간은 길고 가는 석주(石柱)의 상하면을 반씩 깎아내어 접착시킨 형식의 당간이다. 또한 개성의 흥극사(興國寺)의 당간은 아래쪽 지름이 60cm, 높이 3m가 되는 구리 당간으로 표면에는 황금을 입히고 당간 끝에는 봉황새의 머리를 만들어 꽂은 고려 당간의 대표작이다. 후기에 와서 풍수설이 성해지자, 사찰의 위치에 따라 행주형(行舟型)이니 돛대를 세워야 한다느니 노인형(老人型)이니 지팡이를 꽂아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들 때문에 당간이 풍수설에 병합하는 형태변화를 보이다가 차차 당간을 세우는 격식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20) 당간지주(幢竿支柱)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세운 지주, 대체적인 형태는 지주 밑에 방형(方形)의 대석이 마련되고 지주 사이에 원형간대를 놓아 지주를 고정시켰다. 지주 안쪽은 장식없고 수직으로 되었고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주간에 2∼3개와 꼭대기에 구멍이 뚫려 있고, 양측면도 수직으로 되어 있으나 간혹 세로로 능선을 표현한 예도 있다. 내면은 수직으로 올라가다가 꼭대기에 1단의 굴곡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주의 기대부는 대부분 파괴되어 지주의 하단부가 노출된 것이 적지 않으나 완전한 형태의 것도 많다. 분황사 당간지주에는 거북으로 된 간대가 남아 있고, 공주 반죽동(班竹洞) 당간지주와 갑사 당간지주, 금산사 당간지주에는 기대가 완전히 남아 있어 당간지주의 원형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