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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생활

수업은 그냥 듣는 일인가

작성자샘물|작성시간06.03.27|조회수30 목록 댓글 0

수업은 그냥 듣는 일인가

 

 

  바야흐로 공부하기 좋은 이른바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다. 농부들이 땀 흘려 논밭을 가꾸듯 지금 우리들은 다만 학문을 통해서 마음 밭을 경작하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하겠다. 이 일을 더욱 잘하기 위해 학문 생활의 올바른 방향과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로, 공부하는 목적을 잘 세워야 한다. 올바른 뜻을 굳게 확립하지 않고 훌륭한 성과를 거둘 수는 없다. 대학은 학문하는 곳이지만, 개인마다 공부하는 목적이 똑같을 수는 없다. 다양한 대학교육의 목적은 교양인과 직업인 양성으로 크게 나눌 수 있겠다. 신분사회였던 과거에는 직업교육을 너무 경시하였고, 반대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직업교육에 치중하여 교양교육을 무시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취업을 위한 직업교육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인격을 함양하고 폭넓은 안목을 지닌 교양인을 양성하는 일 보다 전문가와 기술자가 되는 공부가 우선된다면, 학문을 하는 대학교육에서 가치관의 본말이 전도된 격이라 하겠다. 이런 견지에서 대학생이라면 직업교육과 교양교육을 착실히 병행하여 자신의 역량을 함께 길러야 한다. 


  둘째로, 수업시간이 즐거워야 한다. 설레며 기다려지는 수업이 되어야함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느 교육사상가의 주장처럼, 교수는 ‘열심히 그리고 쉽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열심히’ 가르친다는 것은 우선 이 일에 사명감을 가졌음을 뜻하고, ‘쉽게’ 가르친다는 것은 가르칠 대상과 내용과 방법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즐거운 수업시간이 되기 위해서 먼저 모두 지금 하고 있는 수업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지 느껴야 한다. 힘든 일도 의미를 발견한다면 가벼운 법이고, 의미 있는 일도 모르면 힘겨운 법이다. 무슨 일이건 의무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은 훌륭한 태도이고, 성실해야 학문적으로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의무적으로 성실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업을 즐겨야 할 것이다. 아는 것은 좋아함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수업은 모두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그 시간은 학생과 교수가 더불어 자유롭고 평등하게 학업을 닦는 일(修業)로 보아야 한다. 일방적으로 학생은 배우고(受業) 교수는 가르치는(授業) 시간만이 아니다. 어느 교육철학자의 말과 같이, 교육은 ‘가르친다’거나 ‘배운다’는 인식이 없을수록 더 잘 이루어진다. 학생들이 교수로부터 배우듯이, 교수 또한 학생들로부터 언제 어디서건 배워야 하고 배울 수 있다. 교수란 먼저 배운 사람(先生)이며 여전히 배우는 사람(學者)이다. 옛 문헌에서 ‘학자’란 전문적 지식인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배우는 사람’(學者)을 가리킨다. 학생과 교수 모두 ‘학자’이며, 그들은 선생(先生)과 후생(後生)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지적 도덕적 성장을 위한 배움의 길에서 만난 벗(朋友)의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좋은 수업시간을 만드는 책임의 절반이 학생들 자신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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