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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희의 조선 왕릉

조선의 왕도 돌아가신다.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1.06.25|조회수1,008 목록 댓글 4

조선의  왕도 죽음을 맞이한다.

국가 최고 통치자로서의 왕의 죽음은 아주 특별하다.

왕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말이며 새 시대의 시작이다.

조선시대 왕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왕의 죽음과 공시에 왕권 이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왕의 죽음이 가까워오면 대궐과 수도의 군사들에게 특별경계령이 내려진다.

국가비상사태인 계령(戒令)이 발동되는 것이다.
병조는 궁성 밖은 병사들이 사방을 겹겹히 에워싸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
왕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전임대신과 현임대신들이 대궐로 들어온다.
세자는 왕이 병석에 눕는 순간부터 동궁을 떠나와 왕을 모신다.
또한 혼인과 함께 대궐을 떠났던 자녀들도 모두 입궐한다.
조선시대 왕의 임종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여인의 손에서 최후를 맞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왕의 마지막 유언이 갖는 중요성 때문이었다.
만약 후궁의 거처에서 숨을 거두고 그 후궁이 유언을 날조하면 무슨일이 일어 날지 모른다.
그러므로 왕이 사랑하는 비빈의 처소에서 병을 치료받다가도 숨이 끊어질 징조가 보이면
신료들은 왕을 얼른 외전으로 모시고 나간다.

왕이 임종할 장소에는 휘장을 치고 뒤에 도끼가 그려진 붉은 비단 바탕의 병풍을 놓는다.
왕의 임종을 지키는 사람들은 왕세자와 대신들이다.유언을 듣기 위해서다.

임종 직전에 왕은 왕세자와 대신들을 불러 놓고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마지막 유언을 한다.

왕의 임종에는 왕비나 공주 등 여자들의 임종 참여가 금지되어 있고,
또한 왕비의 임종에는 왕을 비롯하여 남자들의 참여가 금지되어 있었다.
왕이 숨을 멎으려하면 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게 했다. 이는 동쪽에서 생명의 근원인 해가 뜨기 때문이다.
몸에서 혼이 떠나려고 할 때는 심한 요동이 나타나기 마련이다.이때 잘못하면 사지가 뒤틀린다.

내시 4명이 팔과 다리를 잡는다. 마지막 요동이 멈추면 의관은 왕의 입과 코 사이에 고운 햇솜을

얹어 놓고 솜이 움직이는 지를 살핀다. 이 절차를 촉광례(觸纊禮)라고 했다.

어느 순간 솜이 움직이지 않으면 왕의 몸에서 혼이 완전히 떠난 것으로 여겼다.

조금의 숨이라도 붙어 있으면 솜이 움직여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사망이 확인되면 '상대점' 3자를 써서 발표하는데 왕이 돌아가셨다는 공고였다.
동시에 사망시간  사망장소 등도 발표한다. 왕의 죽음이 발표되는 순간 대궐과 조선 팔도는 울음과

슬픔 속에 빠져들게 된다. 이 순간부터 왕의 임종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곡(哭)을 시작한다.

 

 

왕의 혼이 죽은 자들의 혼이 모여있는 북쪽으로 더 멀리 가기 전에 다시불러오는 초혼의식을 치른다.

조선시대에 있어 죽음의 의미는 혼과 백이 몸에서 빠져나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왕의 죽음이 확인되면 내시 한 명이 평상시 왕이 입던 위옷을 메고 지붕으로 올라간다.

지붕 한 가운데 용마루를 밟고 내시는 북쪽을 향하여 "상위복(上位復)!" 세 번 외쳤다.

상위복은 "주상 전하! 다시 돌아오소서!"라는 뜻이다.

이 의식은 왕의 혼으로 하여금 자신의 체취가 밴 옷을 보고 다시 돌아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왕비의 경우는 "중궁복(中宮復)!" 세 번 외처 다시 중궁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왕의 혼이 자신의 옷을 알아보고 되돌아왔다가 다시 떠나기 전에 몸 속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지붕에 있던 내시는 왕의 옷을 얼른 지붕아래로 던진다.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시는 이를  받아 서둘러 빈전으로 들어간다.

왕의 몸 위에 그 옷을 덮고 혼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유교의 예법에서 떠난 혼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기간은 대상에 따라 달랐다.
천자는 7일, 제후는 5일, 일반인은 3일을 기다려야 했다. 조선시대 왕은 제후에 해당하였다.

왕의 임종이 가까워지면 병조는 궁궐과 도성 경비를 강화하고 전국에 특별경계령을 내린다.

왕의 죽음이 선포되면 왕세자 이하 신료들은 머리에 썼던 관과 입었던 옷을 벗고 머리를 푼다.

흰색의 옷과 신발 버선을 착용하며 3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또한 졸곡(卒哭)때까지 궁중의 모든 제사와 음악연주가 중단된다.

민간에서는 왕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5일동안 시장이 열리지 않으며 결혼과 도살이 금지된다.

죽음은 신분에 따라 각기 달리 불리웠다.

천자(황제)의 죽음을 붕어(崩御)  제후나 왕의 죽음을 훙(薨) 승하(昇遐)

대부의 죽음을 졸(卒) 선비의 죽음을 불록(不祿) 서민의 죽음을 사(死)라고 하였다.

왕이 죽으면 조정의 모든 대신들은 국장 준비에 참여 한다.
국장을 치르기 위해서 국장도감 빈전도감 산릉도감 등이 설치되고 대신들은 각 도감의 일원이 되어 장례를 진행한다.
국장도감은 국상 당일에 조직되어 장례 뒤 혼전에 반우(返虞:반혼이라고도 하며, 장사뒤 신주를 집에 모셔 오는 일)하여 우제(虞祭:삼우(초우,재우,삼우)를 총괄하는 이름)가 끝날때까지 약 5개월간 존속되는 임시기구이다.

국장도감은 이 기간동안에 상례와 장례에따르는 모든 의전과 재정 시설 문서 등의 업무를 총괄한다.
빈전도감은 장례일까지의 염습, 성빈, 성복 등 빈전에 관한 업무를 맡아보는 기구이다.
빈전이란 빈소에 대한 높임 말로서 상중에 왕이나 왕비의 신주와 혼백을 묘셔 주는 곳으로

빈전도감은 이에 관한 일을 본다.
산릉도감은 현궁과 정자각, 비각, 재실 등 봉분 조성과 부대 시설에 관한 일들을 맡는다.
능을 조성하고 그 주변 부설물들을 만드는 기간은 대개 5개월 정도 걸렸다.
적게는 6천명에서 많게는 1만명까지 능역에 동원된다. 산릉도감은 이 인원을 모두 관리 감독하는 일도 함께 해야 한다.
이 기간동안 왕의 시신은 관에 안치한 뒤 빈전에다 가매장 하였다.
빈전안에서는 죽은 왕과 가장가까운 왕족이 지키며 문상을 받고 선왕을 모셨던 궁녀가 밖에서 지키며 심부름을 했다.
또 왕위를 계승한 차기왕은 왕비와 함께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며 곡을 했다.
좌의정이 왕의 장례를 총괄하고 조정대신이 각 도감의 책임자로 임명된다.

빈전설치는 유교예법에 밝은 예조판서가 맡았다.빈전은 별도의 전각에 설치하였다.

빈전은 즉위절차와 국장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국왕의 상례는 3년상이다.

유교에서 삼년상이란 국왕으로부터 서인에게까지 부모의 상에 적용되는 공통된 규범이다.

삼년상이 공통된 것이나 세부기간에서는 신분에 따라 달랐다.

성복(成服)에서 장례일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이는 혼백이 빈소에 머무는 기간이다.

천자는 7개월 제후는 5개월 대부(4품이상 관직자) 3개월 선비는 1개월만에 장례를 거행했다.

국장기간은 보통 3개월에서 5개월이 소요되었다.

시신을 3개월 동안 방치하면 부패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시설이 필요했다.

동빙고에서 가져온 얼음덩이와 미역으로 설빙(設氷)이라는 시신보관 냉동장치를 만들었다.

보통 신왕의 즉위는 선왕의 사망이 전제된다.
후계 왕은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왕이 사망한 6일 후인 성복일에 즉위식을 올렸다.
성복이란 상복을 정식으로 입는 것이다.
성복 이전에는 혹시 죽은 자가 소생할까 기대하지만 이후에는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신왕은 이후에도 졸곡(卒哭) 이전인 26일간은 업무를 보지 않는다.
신왕은 상주로서 치상에 전념한다. 이 기간에 국정은 원상으로 임명된 두세 명의 원로대신들이 처리한다.
이들은 주야로 승정원에 숙직하면서 왕을 대신하여 국가의 대소사를 처결한다.
신왕은 전왕의 빈소 곁에 여막을 차리고 주야로 곡을 한다.
왕이 죽고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왕을 임명하는 권한은 형식적으로 대비에 귀속된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왕이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죽었을 때에 대비나 왕대비가 후계왕을 지명했다.

왕이 돌아가시면 옥새는 대비가 보관한다.

세자가 왕으로 즉위할 때 대비는 전왕의 시신을 모신 빈전에서 옥새를 전한다.

대비는 아울러 세자를 왕으로 임명한다는 명령서를 내린다.

전왕의 유언장이 있을 경우 세자는 이를 받아 영의정에게 주고 옥새는 좌의정에게 전달한다.

신왕의 즉위식은 전왕이 기거하던 대궐의 중심공간인 정전에서 시행한다.

 정전에서 행하는 즉위식에서 용상으로 갈 때는 오른쪽 계단을 이용한다.

즉위란 왕이 앉는 자리인 용상으로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또한 즉위할 때는 오른쪽 계단을 이용하기 때문에 즉조라고도 한다.

엄격한 의식절차에 따라 세자가 용상에 정좌하는 순간이 새로운 왕이 탄생하는 시점이다.

이 순간 식장을 메우고 있던 대소신료들은 "천천세!"를 외친다.

 왕조의 운명이 천년 만년 영원하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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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윤영선 | 작성시간 11.06.26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푸른달(성윤옥) | 작성시간 11.06.26 고맙습니다.
  • 작성자왕중왕 | 작성시간 11.06.26 조영희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내용을 올려주셔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박희영 | 작성시간 11.07.01 감사합니다. 죽음뒤에 따르는 절차.....각 기 다를 수 있다는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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