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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거지소(燕居之所)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1.10.15|조회수1,304 목록 댓글 0

 

창덕궁 내전 대조전 일대를 그려내고 있는 동궐도이다.

내전은 임금과 왕비가 기거하면서 활동하는 공간이다.

대전은 임금이 공무를 집행하는 공간 시어소(時御所)이다.

대전은 임금과 핵심 고위 관료들이 만나 국정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공간이다.

사실상 정치적 행정적인 측면에서 궁궐의 실질적인 중심 대전이다.

고위 관료들이라고 하더라도 임금의 허가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대전이다.

대전은 동시에 공무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공간 연거지소(燕居之所)이다.

임금이 왕비나 후궁과 동침하는 공간 침전(寢殿)이다.

이 침전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다.

다른 건물보다는 권위가 있는 중요한 건축물이라는 상징으로 용마루를 두지 않았다.<홍순민교수(명지대)>

궁궐의 주인은 왕이지만 궁궐 안에 왕의 사적인 장소는 없다.
국왕의 일거수일투족은 기록의 대상이었고, 모두에게 공개된 존재였다.
 때문에 이름 없는 궁녀의 처소에 군주가 갑자기 방문해 로맨스가 싹트는 일은 실제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강녕전이나 대조전 같은 침실에도 주변 방에 나이 많은 상궁이 대기하고 있었고,
심지어 임금의 똥도 버려지지 않고 의원들이 직접 맛을 볼 정도였다.
정병설 서울대 교수는 “아무리 호화롭다 해도 감옥이나 다를 바 없는 고립된 공간인 궁궐에서 태어나

살다 죽었던 것”이라며 ”감옥 같은 궁궐에 갇혀 왕은 늘 정변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고

왕자들은 자신이 과연 왕이 될 수 있을까, 왕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늘 불안해했다.”고 말했다.

임금의 침소도 일관이 정하나 지밀상궁이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의 '사정'을 고려하여 최종 결정한다.

중전은 왕비의 생활 공간이다.

왕비의 시어소(時御所)이자 연거지소(燕居之所)이다.또한 왕비의 침전 중전이다.

왕비를 중전이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왕비는 정궁이라고도 불리운다.

정궁 중전과는 달리 왕의 승은을 입은 궁궐 여인은 후궁이다. 후궁과는 바로 정궁이 왕비다.

임금이 후궁이 있는 공간에서 잠자리를 했다고 해서 후궁처소를 침전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왕비의 침전으로 궁궐 가운데 있다고 해서 중궁전(中宮殿)이나 중궁(中宮)이라고 했다.

곤전(坤殿)이라고도 불렀다. 중전은 궁궐의 가장 중앙부 깊숙한 곳에 배치되었다.

중궁전을 구중궁궐이라고 한다.대전과 중전은 내전의 중심이다.

왕비의 침전은 정궁이라고 한다.간혹 경복궁을 조선의 정궁이라고 하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희정당 동쪽 곁에 있는 성정각(誠正閣) 일대를 그려낸 동궐도이다.

성정(誠正)은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의 앞글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유교 경전에서는 뜻을 순수하게 집중하는 모양을 성의라고 하였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을 정심이라고 하였다.

동궁 영역을 둥궐도를 자세히 그리고 있다.활동 공간 동궁(東宮)이다.

내전과 외전을 중심 축으로 해서 그 좌측 동쪽에 배치한 공간이다.

세자는 왕위를 이를 공식적인 후계자이다. 세자를 교육하고 보필하는 세자시강원,

흔히 춘방이라고 하는 기관과 세자를 호위하는 세자익위사 계방이 동궁에 속한다.

조선 500년동안 궁궐에 세자가 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자가 궁궐안에 없었던 시절도 많았다. 세자가 없었던 시기에 동궁은 비워놓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때는 임금의 푠전으로 동궁을 활용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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