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지붕 추녀마루 끝에 한 줄로 놓여있는 잡상(雜像)이다.
이 잡상은 궁 안에 잡귀나 흉액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궁궐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
17세기에 건축한 창덕궁 돈화문에도 7 개를 한 세트로 한 잡상이 1층과 2층 지붕에서
사방을 사주경계하면서 사특한 무리들의 침범을 한 치도 허용치 않고 있다.
이렇게 지붕에서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잡상은 어처구니로 표현된다.
"어처구니 없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어처구니는 궁궐이나 사찰 왕릉 등의 처마에 장식된 잡상을 말한다.
'없다'의 앞에 쓰이어 ‘생각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물건’ 을 나타내는데 사용된다.
궁을 지으면서 처마에 ‘어처구니’ 를 올리지 않아 뒤늦게야 ‘어처구니’ 가 없음을 알게 된다면
매우 당황스러우리라 생각한다. 그로 인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어처구니(於處軀尼) 없다"라는 말은 한자어로 "어디에다가 몸을 둘지 모른다"는
의미다. "상상 밖에 엄청나게 큰 물건이나 사람" 또는 "맷돌의 손잡이"를 뜻하는 이 말은 "어이없다"는 말과 같이 쓰인다.
"하도 엄청나거나" "너무도 뜻밖인 일"을 당하거나 "해서는 안 될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을 때 자주 쓰인다.
원래 어처구니란 궁궐이나 지체 높은 집의 지붕을 올릴 때 지붕 위 처마 끝에 쪼르르 올리는 흙으로 만든 익살맞게
생긴 동물들의 조형물 잡상이다. 건축물의 위상에 따라서 잡상의 숫자를 달리하였다.
중국에서는 황제가 기거하는 건물에는 11마리의 잡상이 있고 세자의 경우는 9마리 그 외에 격이 낮은 경우는 7마리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이러한 규칙을 따르지는 않는다. 또 별도의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잡상은 홀수로 3개이상 처마에 올렸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에는 9마리이지만 숭례문과 경회루에는 11마리의
잡상을 두었다. 잡상은 원래 중국 송나라때부터 유래된다.악귀나 화재를 쫓으려고 만들어 주술적 의미가 있다.
이보다 300년 전 당나라 태종이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꿈 속에 지붕에 나타나서 아우성치는 귀신들 때문에
잠들 수 없었다. 그래서 병사들을 배치하였다고 한다.여기서 잡상의 유래를 찾는다.
지붕의 끝 귀마루에 설치한 흙으로 만든 이들 잡상은 하늘로 부터 오는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한 벽사의 의미로 설치한
것이다. 조선시대 전통목조건축의 잡상은 삼장법사 일행이 천축국(인도)에 삼장(三藏) 대장경을 얻기위해 손오공을
행자로 삼고 가는 도중에 이들의 행로를 시험하기 위해 각종 악귀들이 출몰하고 때마다 이를 무찔러 악귀들이 감동하여 삼장법사의 일행에 귀속되는 일행을 말 한다고 한다. 잡상은 궁궐의 추녀나 용마루 또는 박공머리의 수키와 위에 덧얹는 흙이나 오지로 구은 기와이다. 중국 명나라의 장편 신괴(神怪) 소설인 「 서유기(西遊記) 」에 등장하는 인물과 토신
(土神)을 형상화한 것이다. 대당(大唐) 황제의 칙명으로 불전을 구하러 인도에 가는 현장삼장인 대당사부(大唐師傅),
손오공으로 알려진 손행자(孫行者), 저팔계(猪八戒), 사화상(沙和尙), 마화상(麻和尙), 삼살보살(三煞菩薩),
이구룡(二口龍), 천산갑(穿山甲), 이귀박(二鬼朴), 나토두(羅土頭) 등이 그들이다.
대당사부(大唐師父)는 잡상의 첫 순위(맨 앞자리)에 놓인다. 대당사부는 당나라 때 현장이라는 스님으로 법명이
삼장법사이다. 삼장법사는 천축국(인도)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을 데리고 간다.
천신만고 끝에 불경을 구하여 당나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엮은 소설이 서유기이다.
대당사부는 실제 인물이었기 때문인지 사람의 얼굴 모습으로 삿갓을 쓰고 있는 형상이다.
손행자(孫行者)는 손오공(孫悟空)이라고도 한다. 돌 원숭이다.삼장법사를 따라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삼장법사를 호위하며 길동무가 되었다. 서유기라는 소설 속에 주인공이 되는 조화(造化)의 영물이었다.
손행자는 원숭이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삿갓을 쓰고 앞발을 버티고 앉아 있다.
저팔계(猪八戒)는 손오공과 같이 삼장법사를 따라 천축에 갔던 멧돼지이다.
저(猪)는 돼지이고 팔계(八戒)는 부처님이 가장 싫어하는 여덟 가지의 음식물을 뜻하기도 한다.
사화상(獅晝像)은 사화상(沙和尙)으로도 표기한다.
사오정 역시 손오공과 같이 삼장법사를 호위했던 괴물로 원래는 옥황상제를 모시고
궁전에서 수렴지기를 했다는 짐승이라고 한다.
이귀박(二鬼朴)은 우리나라의 용어에는 보이지 많은 단어다.
불교의 용어를 빌려 풀이하면 ‘이귀(二鬼)’는 ‘이구(二求)’의 다른 음으로 보아
이구(二求)는 중생이 가지고 있는 두가지 욕구다.
낙을 얻으려는 득구(得求)와 낙을 즐기려는 명구(命求)이다.
이구룡(二口龍), 입이 둘이어서 이구룡이라고 했을까?
머리에는 두개의 귀가 나있고 입은 두개로 보인다.
마화상(馬畵像)은 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서유기에는 필마온(弼馬溫)이라 하여 ‘말馬’자를 쓴 것과
혼세마왕(混世魔王)이라고 하여 ‘마魔’자를 쓴 것이 있다.
지금까지 사용된 용어에는 음으로는 같으나
한자가 다르게 말화(馬畵) 마화(魔和) 등으로 표기 되어 있다.
삼살보살(三殺菩薩). 살(殺)은 살(煞)과 같은 의미이다.
삼살(三煞)이란 세살(歲煞) 겁살(劫煞) 재살(災煞) 등으로 살이 끼어서 불길한 방위라는 뜻으로 쓰이는 용어이다.
보살은 불교에서 위로는 부처님을 따르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님에 버금가는 성인(聖人)이다.
이 두 가지의 뜻으로 해석하면 삼살보살이란 모든 재앙을 막아 주는 잡상이라고 생각된다.
천산갑(穿山甲)은 인도 중국등지에 분포된 포유동물의 일종이다.
머리 뒤통수에 뿔이 돋혀 있고 등이 다른 잡상보다 울퉁불퉁 튀어 나왔다.
나토두(羅土頭)의 형상은 상와도에 그려져 있지 않다.
나토라는 짐승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나티’의 다른 표기라고 생각된다.
나티는 짐승같이 생긴 귀신으로 작은 용(龍)의 얼굴형상 또는 검붉은 곰의 형상이라고 한다.
이들은 혹은 앉거나 혹은 엎드리거나 혹은 뒤로 젖혀 앉아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는 구실을 한다.
소설「 서유기 」에서 이들은 힘을 합하여 요괴의 방해를 비롯한 기상천외의 고난을 수없이 당하면서도
하늘을 날고 물 속에 잠기는 갖가지 비술을 써서 이를 극복, 마침내 목적지에 이르고 그 보답으로 부처가 되었다.
이들 열 개의 형상을 지붕 위에 올려놓는 까닭은 바로 이에 있는 것이다.
이들이 지붕 위에 등장한 것은 요나라 때인 9 세기 말부터이며 명나라와 청나라에 이르러 널리 퍼졌다.
이들이 우리나라에 건너온 것은 고려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중국에서는 이 잡상들을 궁궐뿐만 아니라 문루나 관아 능의 제사청 그리고 사찰 등에도 올려 놓지만
우리네 절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형상 자체가 더러 바뀐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곧, 선인상(仙人像)과 여러 가지 동물로 변화한 것이다.
현재까지 남은 잡상들을 시대 순으로 늘어놓으면 숭례문(1448 년)에 9개
창경궁 홍화문(17 세기)에 5 개 창덕궁 돈화문(17 세기)에 7 개 수원 팔달문(1796 년)에 4 개
창덕궁 인정전(1804 년)에 9 개 경복궁 경회루(1867 년)에 11 개 경복궁 동십자각(1865 년)에 5 개
덕수궁 중화전(1906 년)에 10 개이다. 이들 가운데 경회루 잡상 중 원숭이(손오공)상은 높이가 40 ㎝ 에 이른다.
나머지 상들은 28 ~ 32 ㎝ 쯤이다. 잡상은 모든 기와지붕위에 설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궁전건물과 궁궐과
관련이 있는 건물에 한정된다. 또한 궁전건물 중에서도 양성으로 되어 있는 내림마루와 귀마루에만 배치되고
기와로 마감된 지붕마루에는 설치하지 아니하였다. 잡상이 설치되어 있는 건물로는 궁궐의 정전 왕의 침전
궁궐의 정문 도성의 성문 궁궐안의 누정 왕릉 왕비릉의 정자각 종묘 성균관, 동묘 등에 한정되며
민가 사원 서원 지방향교 등에는 잡상을 설치하지 아니하였다. 잡귀를 막아내는 잡상이지만 모습은 익살스럽다.
먼발치에서도 사람에게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시켜주는 잡상이다. 그것은 기와지붕에 변화를 주고 추녀마루의 멋을
한껏 드높이는 하나의 액센트라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