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11. 킨카쿠지(金閣寺 / 鹿苑寺)와 니조조(二條城)

작성자우보(牛步)|작성시간11.11.17|조회수281 목록 댓글 0

11.  킨카쿠지(金閣寺 / 鹿苑寺)와  니조조(二條城)

 

기타야마(北山) 문화의 중심, 킨카쿠지(金閣寺 / 鹿苑寺)

 

일본의 상징이자, 너무나도 유명한 교토의 명물 금각사(金閣寺). 교토 여행에서 절대로 빠트릴 수 없는 필수 코스중의 하나이다.

금박으로 빛나는 2층 누각과 아름답게 가꾸어진 정원이 1950년 한 젊은 승려에 의해 불타버리고 5년 뒤, 1955년에 원래의 누각과 정원을 현재와 같이 복원시켰다. 이 절은 사리전[금각(金閣)]이 특히 유명하기 때문에 킨카쿠지(金閣寺)절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정식 명칭은 [로쿠온지(鹿苑寺)]절로서 임제종(臨濟宗) 쇼코쿠지(相國寺)파의 선종사원이다. 이곳에는 가마쿠라(鎌倉)시대에 사이온지 긴쓰네(西園寺公經)의 별장인 기타야마(北山) 저택이 있었으나 무로마치(室町)막부의 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몹시 좋아하여, 1397년 사이온지 가문으로부터 이를 물려받아 산장 기타야마 별저로 개축하였다. 킨카쿠(金閣) 전각을 중심으로 한 정원과 건축은 극락정토를 현세에 표현하였다고 전하며 고코마쓰(後小松) 천황(잇큐(一休) 선사의 부친)이 직접 행행(行幸)한 일도 있다. 한편 이 시대는 중국 명나라와 활발한 무역을 펼치며 문화 발전에 공헌하였던 시대로 특히 이 시대의 문화를 기타야마(北山)문화라고 부른다.

요시미쓰(義滿)의 사망 후에는 그의 유언대로 무소(夢窓)국사를 초대 주지로 하여 요시미쓰의 법명이 로쿠오인전(鹿苑院殿)에서 2자를 따서 로쿠온지(鹿苑寺)절로 명명하였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정원(庭園)

금각(金閣) 로쿠온지절 앞에 위치한 교코이케(鏡湖池) 연못을 중심으로 하여, 아시하라시마(葦原島) 등 크고 작은 섬과 당시의 지방 영주들이 앞을 다투어 헌납한 명석(名石)들이 배치되어 있다. 서쪽의 기누가사야마(衣笠山)산을 배경으로 한 이 정원은 무로마치시대의 대표적인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정원으로서 국가특별사적 및 특별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방장(方丈:주지의 방)의 북쪽에는 교토 3대 소나무 중 하나로서 배의 모형을 본 뜬 [리큐슈노마쓰(陸舟之松)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소나무는 요시미쓰가 직접 심은 소나무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사리전(舍利殿)

2층과 3층에는 옻칠을 한 뒤 순금의 금박을 입히고 지붕은 화백나무의 엷은 판을 몇겹씩 겹쳐 만든 널조각으로 이은 지붕으로, 그 위에는 중국에서도 길조라고 불리는 봉황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1층은 침전식(寢殿式) 건축물로서 호스이인(法水院), 2층은 무가식 전통 건축물로서 조온도(潮音洞)라고 불리고 있다.

 

금각(金閣)과 기타야마(北山) 문화

 

금각(기타야마)으로 대표되는 문화가 기타야마 문화다. 기타야마 문화는 3대 쇼군 요시미쓰가 쇼군에 취임하는 1368년부터 1408년 사망할 때까지 전개되었다. 이 시기는 요시미쓰가 남북 양조를 합일하고, 명과 국교를 열어 조정의 정치적 서서히 빼앗으며, 유력 슈고인 야마나(山名)씨와 오우치(大內)씨를 토벌해서 바쿠후의 권력을 확립한 시기다. 요시미쓰는 바쿠후 정치의 확립을 배경으로 하여 사치를 좋아하고, 선승(禪僧)의 영향으로 폭넓은 문화적 관심을 보였다. 학문`문학에서는 송`원의 영향을 받은 5산문학이 주류를 차지하고, 회화도 송`원풍의 수묵화가 발달했으며, 예능에서는 사루가쿠노(猿樂能)의 예술적 완성을 보였다. 이 시기의 문화는 전통적 귀족문화와 신흥 무가 문화의 융합이 특징이다.

 

케이쵸(慶長)년대의 건축물과 모모야마(桃山) 시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니조조(二條城)

 

1603년 도쿠카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세운 임시 본부로, 처음에는 작은 건물이었으나 꾸준하게 증축되어 도쿠카와 이에미쓰(德川家光) 때 대규모 성으로 완성했다.

주변이 해자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대규모의 성은 18세기에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는 니노마루고덴(二の丸御殿)과 혼마루고덴(本丸御殿), 니노마루 정원이 남아 있다. 니노마루궁(二の丸御殿)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성의 가장 안쪽은 쇼군(將軍)과 부인, 하녀들이 살았고, 성의 중심인 니노마루고덴에는 복도와 연결되는 6개의 홀이 있다.

각각의 홀은 다른 높이로 지어졌으며, 계급에 따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에 제한을 두었다. 그 가운데 오오히로마(大廳)는 도쿠카와 쇼군이 다이묘의 방문을 받던 곳이다. 이곳의 마루바닥은 발로 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서 외부의 침입자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정원은 못과 흐르는 물, 소나무가 잘 정돈 된 느낌을 주었다. 소나무는 새싹을 잘라서 분재와 같은 모양으로 가꾸어 소나무가 일정한 형태를 갖추도록 가꾸고 있었다. 성의 입구 통로와 같은 곳은 왕대나무를 엮어서 담장을 만든 것이 특이하였다.

보존상태가 좋아서 모모야마(桃山) 시대, 에도(江戶)시대의 서원 건축을 감상할 수가 있는 곳이다. 1867년 15대 장군 요시노부(慶喜)가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환함에 따라 이조성은 정부가 가지게 되었으며 1884년 리큐(離宮,황궁에서 분리된 궁궐)로 바뀌었으며, 1993년 교토시로 하사되었다. 2003년 축성 400년을 맞이하였고 199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니노마루고텐(二の丸御殿)

내부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이곳에는 중요한 문화재들이 많이 보전되어 있었다.

니노마루고텐의 신기한 점은 방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마루바닥을 밟으면 꾀꼬리 소리가 난다는 점이다. 이는 워낙 전쟁이 많이 나고 암살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니노마루고텐 바닥에 소리를 나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혼마루고텐(本丸御殿)

니노마루고텐을 보고 나오면 잔디밭이 있는 정원 쪽으로 오면 혼마루고텐(本丸御殿)이 있다.

혼마루(本丸)는 1626년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에 증축되어진 것으로 원래는 돌담위쪽으로 천수각이 있었다고 하는데 낙뢰로 인한 소실로 지금은 계단만 있다. 현재 남아있는 혼마루도 큰 화재로 소실된 후 교토고쇼(京都御所)에 있던 가쓰라궁(柱宮) 어전을 이곳으로 이축하여 만든 것이라 하는데 어전의 구조로는 완전한 형식이 보존되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한다.

예전에는 성내에 높이 우뚝 솟아 장대함을 자랑하던 5층의 천수각이 있었는데 1750년 벼락으로 소실되었고, 1788년에는 큰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의 혼마루 궁전터로 남게 되었다.

니노마루

니노쿠루와, 산노쿠루와 등으로도 불린다. 니노마루, 산노마루는 혼마루의 부수적 역할을 담당한다. 규모는 대규모부터 소규모까지 여러 가지다. 대규모 구역인 것은 니노마루 어전이라 불리는 거주공간이 있으며, 정원을 두기도 한다. 산노마루에는 가신들의 무가 저택을 배치하였다. 이 구역들을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이들 구역의 목적은 혼마루 방위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혼마루(本丸)는 일본의 성의 중핵 구역의 구루와의 명칭이다. 이치노쿠루와(一の曲輪)·혼쿠루와(本曲輪)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일본의 중세성곽에서는 본성, 실성, 쓰메마루(詰丸) 등 성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다. 근세 이전의 성터 조사에서는 주곽 등으로 불린 적도 있다. 또, 이 같은 이유로 일본에서는 사물의 본질, 조직의 중핵 등을 가리키는 경우에도 혼마루란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혼마루에는 혼마루어전(本丸御殿)이라는 호화로운 건물을 세워 성주의 일상생활과 정무를 보던 곳으로 사용된 경우와 혼마루의 면적을 좁게 하여 전시에 대비한 주곽으로서 역할을 강조한 경우도 있다. 주곽으로의 역할을 강조한 경우에는 성주의 일상생활과 정무의 정청은 니노마루·산노마루에 어전 건물을 두었다. 또,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와 에도(江戶) 시대에 오면 혼마루에는 일본 성의 상징적 건물인 천수를 세웠다. 혼마루 안 또는 혼마루와는 별도인 장소에 천수를 세운 소규모의 구역인 덴슈쿠루와 또는 덴슈마루를 두었다. 성의 혼마루도 가상학(家相學)에 따라 지어진 경우도 있다. 혼마루의 중심, 혹은 어전 건물의 중심을 중심으로 해 성의 정문인 오테 문을 남동쪽에 두었고, 귀문(鬼門)의 방향인 동북쪽에는 각을 두지 않게 모퉁이를 없애는 것을 좋게 여겼다. 더불어 천수와 천수대용의 3층 망루 등은 북서쪽에 세우는 것이 좋다고 믿었다.

안내문을 읽어보자.

니조성은 1603년, 도쿠가와계의 초대장군 이에야스가 교토 고쇼의 수호와 장군의 교토 방문시의 숙박지로 만들어, 3대장군 이에미쓰가 후시미성의 잔류유물들을 정리하여 1626년에 완성시킨 것입니다. 이에야스가 세운 케이쵸(慶長)년대의 건축물과 이에미쓰가 지시, 제작된 그림이나 조각 등, 말하자면 모모야마(桃山) 시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1867년 15대 장군 요시노부가 통치권을 천황에게 반환함에 따라 니조성은 정부의 것이 되었고, 더불어 1884년 리큐(離宮,황궁에서 분리된 궁궐)로 바뀌었으며, 1993년 교토시로 하사되었습니다.

니노마루어전(二の丸御殿)

쇼인쯔끄리라고 하는 무가풍 서원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궁전건축으로 6개 건물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건축면적은 3,300m², 방수는 33개, 다다미는 800장 정도이며, 각방의 벽화들은 카노파(狩野派)가 직접 손으로 그린 것으로 각방에 목적에 맞춰서 그려져 있습니다.

니노마루정원(二の丸庭園)

니노마루 정원은 예부터의 정원조성기법에 의거해 연못의 중앙에 샘을 상징하는 돌을 두고, 그 좌우에 학과 거북이 모양의 돌을 배치한 지천회유식의 정원으로서, 코리엔슈(小堀運州)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원은 1626년 연못의 남쪽에 고미즈노오천황(后水尾天皇)의 행차어전이 세워졌을 때 개조되었다고 전해지고 있고, 주로 오오히로마, 구로쇼인, 행차저택의 세 방향에서 볼 수 있도록 고안되어 졌습니다.

혼마루(本丸御殿)

혼마루는 1626년에 증축된 어전입니다. 예전에는 성내에 높이 우뚝솟아 장대함을 자랑하던 5층의 천수각이 있었는데 1750년에 벼락으로 소실되었고, 1788년에는 혼마루어전도 큰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의 혼마루내에 궁정터로 남게 되었습니다.

가쓰라별궁의 일부를 이용해 1847년에 건축된 현재의 건축물은 본래 교토 궁궐에 있던 궁전을 이곳에 옮긴 것입니다.

세이류엔(淸流園)

세이류엔은 갑부상의 집터에서 차실과 정원석을 기증받아 이것을 기초로 만들어진 정원으로 1965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정원은 치센카이유식(원형연못을 중심으로 꾸민 정원양식)의 정원과 잔디중심의 정원의 두 타입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내에는 코우운테이香云亭나 와라쿠안和東庵 등의 차실이 있어 니조성을 방문하는 귀빈들을 접대하는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