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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동호에 있었던 모래섬 저자도

작성자조영희|작성시간12.03.31|조회수550 목록 댓글 0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두뭇개다.

빼여난 절경을 자랑하던 두뭇개는 참으로 많이 변했다.

한강진의 보조나루로 일본인들이 많이 사용하던 두뭇개나루다.

이웃 한강진과 함께 하나의 외국인촌을 형성하였던 두뭇개나루터

지금은 그 흔적은 온데 간데 없고 육중한 시멘트 구조물이 밀집,숨막히는 도시를 이루고 있다.

나그네와 각종 물화를 싣고 옥수동과 압구정동을 건너주던 배가 다니던 그 나루터에는 동호대교가 놓였다.

그 중심지역에는 국철과 지하철 3호선이 지나는 옥수역이 주요 교통로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

 

 

겸제 정선의 그림 압구정이다. 뚝섬 쪽 한강에서 바라본 두뭇개와 동호 일대 절경을 스케치한 것이라고 한다.

이 부근에 저자도((楮子島)가 있었다고 한다. 저자도는 금호동과 옥수동 남쪽 한강에 있었던 모래섬이다.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삼각주에 형성된 제법 큰 섬 저자도다.

 

 

고려시대부터 명승지로 주목을 받아 왔던 저자도는 조선 초기부터 왕실 소유였다.
오늘날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의 한강 중간, 중랑천과 한강 본류가 만나는 지점에 그 섬이 있었다.
서울 도성 안을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청계천이 동대문 밖을 지나 마장동과 사근동의 동쪽 변두리를

스쳐 남쪽으로 흐르다가 사근동 동남쪽 모퉁이 쯤에서 양주 땅으로 흘러 내려오는 중랑천과 합류되어,
다시 서남으로 꺾이면서 한강으로 접어드는 유력으로 생겨난 삼각주가 바로 저자도였다.

 

 

닥나무가 많아 저자도로 불리던 이 섬은 멀리서 보면 아이가 춤추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무동도라고도 하였다. 경관은 아름다웠고 토질은 비옥했다.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해 예부터

많은 문인이 이 곳을 찾아 노래하였다.조선시대는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했다.
고려 말 한종유의 소유였으나 조선개국과 함께 왕실 재산으로 귀속되었다.

이 섬에는 닥나무가 많아서 닥점이라는 마을도 있었던 곳이다
"홑적삼에 짧은 모자로 염못가에 앉으니

언덕너머 수양버들 서늘한 바람 불어보내네
산책하고 돌아오니 저 산에 달떠오르는데
지팡이 머리에는 아직도 연꽃 향기 남았구나"
고려때 저자도에 별장을 두었던 한종유 시이다.

 

 

세종은 둘째딸 정의공주에게 저자도를 하사했고 공주의 아들 안빈세가 정자를 지어 세도가와 시인묵객을 불러들였다.
저자도에 초대받은 한명회가 그 풍광에 매료되어 자신은 압구정을 지었다.

훗날 지어진 황화정과 함께 동호3경으로 불렸다.
숙종(1672~1720)때 사람으로 산수승경을 좋아하던 문인 삼연 김창흡은 이 저자도에 정자를 지어놓고 남한산을 오가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근세에는 개화파의 거두 금릉위 박영효가 이 섬에 정자를 지어 동지들과 자주 의담하였다고 했다.

역대의 명소요, 승지며 실록의 장이기도 했던 저자도가 1925년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로 풍경은 잃어버린채 모래와 자갈만 쌓이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에 들어와 강남지역의 무분별한 개발로 모래와 자갈마저 건설업자들에게 빼앗겨 흔적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자연의 힘을 꺾을 수는 없는 일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섬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삼각주 꼴의 모래섬이 물 위로 조금씩 부상하고 있다.

봄이면 살구꽃이 아름답고 가을이면 갈대가 아름다웠다. 저자도는 조선시대에 촌락까지 형성됐던 섬이었다고 한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모래와 자갈만이 쌓이게 되면서 무인도로 되었다.
동서로 2000m 남북으로 885m 총면적 118만㎡의 섬으로 1960년대까지 존재했다.
안타깝게도 1970년대 강남을 개발하면서 그곳의 모래로 아파트를 짓는 바람에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1970년대 압구정 현대아파트 개발 과정에서 건설, 매립용으로 사용돼 1972년 강물 속으로 사라졌던
삼각주의 자연섬 저자도를 다시 만드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고려 때나 조선 시대에는 봉긋한 등성이도 있었고 넓은 밭과 집들도 들어선 특유한 섬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숙종(1672~1720)때 사람으로 산수승경을 좋아하던 문인 삼연 김창흡은 이 저자도에 정자를 지어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근세에는 개화파의 거두 금릉위 박영효가 이 섬에 정자를 지어 동지들과

자주 의담하였다고 했다.
저자도가 1925년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로 풍경은 잃어버린채 모래와 자갈만 쌓이게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와 강남지역의 무분별한 개발로 모래와 자갈마저 건설업자들에게 빼앗겨 흔적마저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섬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삼각주 꼴의 모래섬이 물 위로 조금씩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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