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철 서빙고역 1번 출구로 나와서 동쪽으로 가면 삼거리를 만난다.
그 삼거리 대각선 방향에 있는 회색건물 용산구청 창업지원센터 서쪽 주차장에
조선시대 얼음 저장고 서빙고터 표석이 있다.
서빙고 터 표석이다.
"서빙고 터
조선시대 8채의 움막집 형태로
지어졌던 얼음창고 터.
이 얼음은 궁중과 백관들이 사용하였다.
겨울에 한강에서 얼음을 깨서 저장하였던 얼음창고 빙고(氷庫)가 동쪽과 서쪽 두 군데 있었다.
동과 서의 두 빙고는 고종 31년(1894)가지 존속하였다가 폐지되었다.
광복 이후 6.25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옛 빙고를 변형시킨 민가의 ‘곳집’ 형태를 살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서빙고는 조선 태조 5년(1396) 예조의 속아문으로 한강변의 둔지산(屯芝山) 기슭에 설치되어
한강이 4촌(1寸 = 3.33cm) 이상 결빙되었을 때 채취하여 이곳에 저장하였다가
나라의 어주(御廚, 수라간)에 바치고, 또 신하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었다.
옛 동빙고의 북쪽에 위치한 사한단이 있었다.
여기에서 물의 신인 현명씨(玄冥氏)에게 얼음을 잘 얼게 해 달라는
동빙제(凍氷祭, 司寒祭)를 지낸다.
보통 음력 12월 상순에 얼음을 저장하기 전에 제사를 지내고,
저장한 후 다음해 춘분이 되어 꺼낼 때 또 한번 제사를 지낸 후 얼음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만약 겨울이 따뜻하여 강물이 얼지 않아서 체빙할 수 없을 때에는 계곡의 얼음을 저장했다고 하다.
얼음을 보고나하는 창고는 볏집 지붕의 움집 8동으로 되었다.
서빙고가 동빙고보다 훨씬 규모가 커서
12월에 결빙된 두께 4촌 이상의 얼음 134,974정을 저장할 수 있었다.
수라간에 바치는 얼음과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얼음의 시기와 숫자는 각각 달랐다.
궁궐에 올리는 시기는 3월부터 9월까지 1,000정, 각 관아에는 5월부터 7월까지 660정이었다.
또 각 궁궐의 아지(왕자의 유모), 시녀, 장번 내관(궁중에서 장시간 당번맡는 내시)과 내반관에는
5월부터 7월까지 종친과 문반 2품 이상과 3사 장관(대사헌, 대사간, 대제학),
6승지에게 6월 한달 동안 매번 10정씩 각각 차등을 두어 나누어 주었다.
영조 때 사회,경제를 다룬 「만기요람」재용 편에 이러한 규정이 수록되어 있고,
빙고의 수리비용, 얼음 밑에 까는 갈대 구입비, 얼음 운반비용 등은 선혜청에서 지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