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女僧)은 춤추고 노인은
통곡하다
조선시대 어진 정사를
펼쳐 태평성대를 이룬 성종임금이
있었다.
어느 날, 임금은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둘러보기 위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몰래 도성을 순시하였다.
도성을 둘러보다가 어느 골목길로 들어서니 문득 창문에 불이 환하게 밝혀진 민가 한 채가 눈에 띄었다.
마침 창문이
열려 있어 방안을 들여다보던 임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안에는 머리가 허연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 앞에 술과 안주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노인은 술과 안주를 먹지 않고 두 손으로 낯을 가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욱 더이상 한
것은 노인 앞에 있는 젊은 사내와 머리를 깎은
비구니였다.
사내는 상복을 입은 채 노인 앞에 앉아
흥겹게 손뼉을 치며 만수가(萬壽歌)를 부르고,
비구니는 노랫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임금은 무슨 곡절이 있음을 눈치 채고
사립문 앞으로 다가가 주인장을
불렀다.
사립문을 열자
임금이 말했다.
“나는 지나가는 길손인데, 방안에서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려 무슨 영문인가 싶어 잠시 들렀소.”
노인은 임금을 방안으로 모셨다. “다행히 음식과 술이 있으니 한 잔 드시고 가시지요.”
“무슨 이유로
노인은 울고, 상주는 노래하며, 여승은 춤을
춥니까?”
그러자 노인은 금세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가난하게 살았으나
자손에게는 늘 충효를
가르쳤습니다.
1년 전, 저의 늙은
처가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 늙은이는
아들과 며느리에 의지해
살고있습니다.
아들은 늘 글을 읽고,
효성스런 며느리는 베를 짜서 살림에 보태고
있습니다.”
“그럼, 상복을 입은 사람과 머리를 깎은
여승이 아들 내외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럼
며느리는 왜 머리를 깎았소?”
“사실 오늘은 이 늙은이의 회갑
날입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잔칫상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자식과 며느리는 이 때문에 가슴이 미어졌던 게지요. 그래서 아들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음식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지요 아들은 선비인데 머리를 깎으면
사대부들의 놀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아녀자인 자신이 머리카락을 잘라
이렇게 술상을 마련한 것입니다.
이 늙은이가 죽지 않고 얹혀사는 것도 안타까운데, 집안이 가난하여 아무것도 해줄 수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아들은
이 못난 늙은이를 위해 만수를 기리는 노래를
부르고, 머리를 깎은 며느리는 춤을 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인의 말을 듣고 임금은 가슴이
뭉클했다.
임금은 아들 내외를 도와줄 방법을 생각 하다가
가만히 아들에게 말했다.
“그대는 얼마나 글을
읽었는가?” “아직 부족하오나 대개 선비들이 공부하는 책은
모두 읽었습니다.”
“반드시 그대의 효성(孝誠)에 대한 하늘의 보답이 있을 것이네.
어머님의 상례를 마칠 즈음 아마도 나라에서 과거가 있을 것이네. 반드시 과거에 응하게, 아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네.”
이윽고 시간이
흘러 아들은 상복을 벗었다. 마침 나라에서 과거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아들은 과거시험에 응했다.
그때 임금은 몸소 과장(科場)에 납시어 손수 시제(試題)를 냈다.
아들은 시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상가승무노인곡(喪歌僧舞老人哭).'
즉 상주는 노래하고,
여승은 춤추며, 노인은 운다는
뜻이었다.
아들이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시제를 낸 사람은 오래 전 자신의 집을 찾아왔던
사람이 임금임을 알았다.
그는 단숨에 시를 써서
제출했다.
이후 임금은 그 시를 보고 곧
합격시켰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부모에게 자식된도리를
다 하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효경』에 공자는 “다섯 가지
형벌에 속하는 죄가
삼천 가지이나
그 중에서 불효보다 큰 죄는 없다 (五刑之屬三千 而罪莫大於不孝).”라고
하였습니다.
모셔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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