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의 버선꽃
과연 귀를 쫑긋 세운 노루 한 마리가 저쪽 숲속에서 오고 있었다.
수덕은 말없이 눈웃음을 치며 활을 거두었다. 『아니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노루를 잡을 판이기에 못내 섭섭해 했다.
그 옆에 사람은 보이지 않느냐?』
하인들은 모두 의아해 했다.
노루 대신 여인을… 헤헤.』
그리 방자하냐. 자 어서들 돌아가자.』
일부러 호통을 치고 갈 길을 재촉했으나 가슴은 뛰고 있었다.
노루사냥이 절정에 달했을 때 홀연히 나타난 여인, 어쩜 천생연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수덕 도령의 가슴은 더욱 뭉클했다.
집에 돌아왔으나
들떠있는 수덕의 가슴은 진정되지를 않았다. 책을 펼쳐도 글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눈에 어리는 것은 여인의
모습뿐. 그 여인의 행방을 알아오도록 했다.
할아범은 그날로 여인이 누구이며 어디 사는가를 수소문해 왔다.
아름다웁고 덕스러울 뿐 아니라
예의범절과 문장이 출중하여 마을 젊은이들이 줄지어 혼담을 건네고 있으나
어인 일인지 모두 일어지하에 거절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덕의 가슴엔 불이 붙었다. 매일 처녀의 집 주위를 배회했다.
낭자를 만날 길이 없었다.
어느 날 밤. 가슴을 태우던 수덕은 용기를 내어 낭자의 집으로 찾아 들었다.
『덕승 낭자, 예가 아닌 줄 아오나….』
벌써 두 달, 대장부 결단을 받아주오.』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일찍이 비명에 돌아가신 어버이의 고혼을 위로하도록
집 근처에 큰 절 하나를 세워 주시면 혼인을 승낙하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상관치 않고 불사에 전념했다.
기둥을 가다듬고 기와를 구웠다. 이윽고 한 달만에 절이
완성됐다.
수덕은 한걸음에 낭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이제 막 단청이 끝났소. 자 어서 절 구경을 갑시다.』
그때였다.
수덕은 흐느끼며 부처님을
원망했다. 낭자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수덕을 위로했다.
『한 여인을 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오직 일념으로 부처님을 염하면서 절을 다시 지으십시오.』
수덕은 결심을 새롭게 하고 다시 불사를
시작했다. 이따금씩 덕숭 낭자의 얼굴이 떠오름은 어쩔 수 없었다.
절을 완성 할 무렵 또 불이 나고 말았다.
다시 또 한 달.
그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마침내 신방이 꾸며졌다.
순간 뇌성벽력과 함께 돌풍이 일면서 낭자의 모습은 문밖으로 사라졌고 수덕의 두 손에는 버선 한짝이 쥐어져 있었다.
눈앞에는 큼직한 바위와 그 바위 틈새에
낭자의 버선 같은 하얀 꽃이 피어있는 이변이 일어났다.
수덕은 그제야 알았다.
덕숭 낭자가 관음의 화신임을. 수덕사가 있는 산을 덕숭산이라 했다.
「버선꽃」이 피며 이 꽃은 관음의 버선이라 전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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