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이제 버리세요, 현미밥 100번씩 씹어드세요”
중앙일보
입력 2012.06.18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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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7시. 서울 잠원동 한 개인병원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 병원 ‘힐링스쿨(healing school)’에 가입한 환자들이다. 이날 첫 모임에 참가한 환자는 모두 9명. 힐링스쿨은 약 없이 음식으로 병을 고치는 프로그램이다. 매주 2시간씩 총 4주에 걸쳐 진행된다. 당뇨병·고혈압·비만 등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환자들은 병원 내 조리실에서 마련한 현미밥과 가지·피망·두부·상추와 케일 등 각종 채소와 과일을 한 접시에 담고 자리에 앉았다.
고혈압·당뇨병 등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약 대신 음식으로 치료하기 위해 모였다. 황성수 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현미밥을 제대로 먹는 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김수정 기자]
힐링스쿨 교장인 황성수 박사(황성수의원 원장)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밥 먹는 연습을 합니다. 밥은 반찬과 따로 먹습니다. 우선 현미밥을 한 숟갈 입에 넣고 100번 씹습니다. 똑같이 따라하세요.”
환자들은 일제히 밥을 떠서 입에 넣었다. 100번 씹기가 끝나자 황 박사가 물었다. “어떤 맛이 나죠?” 혈압이 높다는 주부 김영인(55)씨가 답했다. “씹을수록 고소해요. 항상 반찬과 함께 먹다 보니 밥맛을 몰랐어요”. 비만이 걱정이라는 대학생 박민영(여·25)씨는 “밥 한 숟갈 먹었을 뿐인데 벌써 배가 불러요. 현미밥이 이렇게 맛있는 줄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10년째 복용하는 당뇨약을 끊는 게 목표라는 김성훈(가명·남·회사원·45)씨는 “오래 씹는 게 익숙하진 않지만 제대로 밥 먹는 방법을 익혀서 꼭 약을 끊겠다”고 말했다.
황성수 의원은 일반 병원과 조금 다르다.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사·링거·약품 등은 일절 없다. 대신 조리실과 식탁 16개, 그리고 강의할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비치돼 있다. 황 박사는 “우리 병원은 당뇨병·고혈압·비만 등의 만성질환을 약 없이 치료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오뚝이재활의학과 신우섭 원장(42)도 약 없이 치료하는 의사다. 그는 최근 ‘약 없는 임상의학회’를 창설했다. 그의 진료실 책상에는 온갖 약 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환자들에게 뺏은 약이다. 그도 역시 약 대신 채식·현미밥·운동으로 만성질환을 치료한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천일염을 처방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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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원장은 “천일염은 일반 소금에 비해 나트륨 양은 적고 미네랄은 풍부하다. 몸을 따뜻하게 하고 부족한 미네랄을 보충 하는 좋은 식품 급원이다. 나트륨은 자동 조절돼 배설된다”고 말했다. 신 원장은 “수많은 환자에게 처방을 하며 좋은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잠실에서 정신과의원(아이 마인드)을 운영하는 서경란 원장도 약 없는 임상의학회 회원이다.
현미밥과 채소 식단. 이 식단만으로 식사를 해도 단백질·탄수화물·지방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서 원장은 “정신과 약물을 복용할 때 부작용이 나타나는 환자들이 있다. 졸리다거나 ‘멍’하게 있다거나 침을 흘리는 등의 증상”이라며 “자연히 약 없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도파민을 줄이는 약을 주는 대신 뇌파를 활성화하는 훈련을 한다. 음식 치료도 한다. 서 원장은 “육식은 뇌 호르몬 분비를 저해하고, 채식은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현미밥 채식을 중요한 정신과 치료로 이용한다”고 말했다. 약 없는 임상의학회 회원인 박현 원장(잠실 닥터 웰니스의원)은 “식사요법만으로도 만성질환·만성피로·두통 등을 치료할 수 있다”며 “효과도 좋고 만족감이 높다. 앞으로 더 많은 의사가 약물 대신 몸의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방법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약 없이 음식으로 치료하는 1세대 의사인 황 박사는 30여 년간 중풍(뇌졸중)을 진료해온 신경외과 의사다. 수술과 약 처방을 주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풍환자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았다. 모두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 중 하나는 가지고 있었다. 왜 그럴까 공부하던 중 음식 치료에 대한 책을 접했다.
그 중에서도 현미밥과 채식에 대한 내용에 주목했다. 고기의 단백질과 지방이 분해돼 체내 독성물질로 변하면서 만병의 근원이 된다는 내용도 알게 됐다. 황 박사는 “생리학·생화학을 다시 공부하며 현미밥과 채식이 혈당과 혈압을 낮출 수 밖에 없는 이유, 우리 몸은 단백질 요구량이 극히 적으며 과량의 단백질이 든 고기·생선이 만병을 일으키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정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음식치료 효과는 대단했다. 혈압·혈당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사람 등 약을 먹어선 절대 나타날 수 없는 임상 증례가 줄을 이었다. 그에게 채식 치료를 받고 싶어 서울·제주·전라·강원도 등에서 찾아온 환자가 줄을 이었다.
그는 지난해 정년 퇴직을 하고 개원을 했다. 환자들의 반응과 치료 효과는 꽤 좋다. 지난 1기 환자 수료식에선 17명의 환자가 4주 과정을 마쳤다. 그 중 14명이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황 박사는 “17명 중 3명은 수치가 낮아지긴 했지만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모두 식사요법을 철저히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입맛을 바꾸는 게 그만큼 어렵다. 3주가 고비다. 3주만 꾸준히 현미밥 채식을 실천하면 자연히 입맛이 바뀌어 고기류나 백미·밀가루 음식들을 줘도 먹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