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시절 귀향길 작성자보리밭길|작성시간19.02.05|조회수65 목록 댓글 1 글자크기 작게가 글자크기 크게가 그시절 귀향길 60년대 대중 교통이라고는 기차가 전부였으며 70년대 들어서 고속버스가 생겨났으나 명절때마다 겪는 교동 대란은 여전했다,.....1899년 경인 철도에 처음 도입된 증기 기관차. 연료가 석탄이었으며 장시간 타고나면 석탄 가루가 날려 옷과 코구멍이 검게 그을리고했다. 서울역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수 많은 귀향객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며칠식 역광장에서 노숙을하며 표를 구해야 하는 고향길은 저승길보다 더 힘들었다. 이기차를 놓치면 이번 명절엔 고향에 갈 수가 없다객실 통로가 빽빽히 막히면 필사적으로 창문으로 기어올라 타기도했으며객실 선반위까지 사람이 올라가 자리를 잡기도 했다. 창구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혹시나 내 차례에 표가 매진 되지 않을까조바심에 애 간장은 녹아내리고.....서울 부산간 완행열차 12~14시간이나 걸리는 머나 먼곳이었다. 수많은 인파들이 며칠 전서부터 서울역앞에 자리를 잡고 표를 사기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했으며,이를 통제하는 경찰관들은 호루라기와 곤봉을 들고 질서를 잡았다. 그야말로 기차표 사기가 하늘의 별따기 였으며 암표상들의 대목이기도 했다어떤 이들은 근로자 한달 봉급을 털어 몇배의 돈을 주고 표를 구하는 이들도 있었다. 북새통에 소매치기를 당해 고향엘 가지못하고 발길을 돌려야하는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다. 경찰관들의 통제에 의해 질서 정연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모두가 소지품이 간단하다, 몸둥아리 하나 끼여 타기도 힘들어서다. 며칠을 역앞에 노숙하며 애써 기다렸는데도 단 시간에 표가 매진되어 고향엘 가지 못하는 이들도 부지기 수 였다. 명절 당일날 새벽부터 혹시나 기차를 탈 수 있지안나 싶어 또 모여들고밤샘을한 이들도 많았다. 수없이 몰려드는 귀향객들중 표를 구하지 못해 무임 승차를 하는이들도 있어서객차문앞에서 경찰관이 검표를 하기도 했다노약자들은 힘에 부처 뒤로 밀리고 또 밀리고..... 일부 회사에서는 사전에 버스를 전세내어 사원들을 귀향길 목적지 까지 대려다 주는 곳도 있었다. 강남 터미널에도 수 많은 귀향객이 몰렸으며,관리자들도 움직일 수 가 없어서 먼 발치의 사람들은 긴 장대로 이용하여 통제를 하곤했다. 객차 발판에 까지 매달려 어�게든 타 볼려고 몸부림을 친다발디딜 틈이없어 객실 화장실 안에도 4~5명식 신문지를 깔고 자리를 차지하다보니용변을 볼 생각초차 힘들었으며 도착지까지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는것은 절대 금물이었다. 이렇게 힘든 고향길이지만 명절이 아니면 부모 형제를 볼 수가 없어, 필사의 귀향 전쟁을 치루면서도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기쁜 마음에 피로함을 몰랐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복잡다고 이차를 안타면 다음차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타야한다. 트럭으로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트럭으로 영업하는 이도 있었으며, 같은 고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트럭 짐칸에 빽빽히 타고 고향 길을 재촉한다당시는 인사 사고만 나지 않으면 경찰관 아저씨들도 눈감아 주는 훈훈한 정이있었다. 70년대 초 일본내 조총련소속 교포들이 고국을 방문한 획기적인 일도 있었다. 재래시장에는 풍성한 오곡백과가 수북이 �아져 나오고.. 명절이 아니면 얻어 입을 수 없는 새옷.. 새옷한벌.신발 한켤례 사주시면,,너무좋아 신발을 신고 새옷을 입고 잠을 자다 혼나기도 하고.. 시골장에는 우리 어머님들이 곡식을 이고지고가서 팔면, 그 돈을로 재수용품 사고 자식들 고무신 한켤례씩 사서 먼길을 걸어서 오시곤 했지요. 당시 백화점이 먼지도 잘 모르던 때였습니다시장이라하면 재래시장이 최고였지요. 온식구가 돠라가며 떡 방아간에서 앞에서 하루 종일 차례 올때만 기다리곤 했지요. 추억속에 사라지고 있는 널 뛰기입니다. 명절 아침이면 골목길에 아이들이 모여 새옷과 신발 자랑 신바람나는 일이었습니다고무신도 한켤례 못얻어신은 아이들을 먼 발치 골목에 숨서서 빼꼼히 처다보며무척 무러워 하던 때였습니다.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견인차 혁활을한 디젤 열차입니다. ( 86년자료) 이때까지만 해도 승용차가 귀한 시대라 버스를 많이이용했지요회사에서 제공한 버스에 고향길을 재촉하는 모습입니다. (86년 자료) 이때까지도 재래시장은 늘 북새통이었습니다. (86년자료) 서울역 앞에서 표를 사기 위해 노숙하는 모습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북마크 공유하기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1 댓글쓰기 답글쓰기 댓글 리스트 작성자바위사랑 | 작성시간 19.02.07 국민학교 5학년(1954) 추석빔으로 어머니께서 사 주신 운동화를 생애 처음으로 신으니 하늘을 날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