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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선생]

[정달영 주필]'의미 맹(盲)'의 시대

작성자박상익|작성시간04.04.11|조회수70 목록 댓글 0
[정달영 주필]'의미 맹(盲)'의 시대  

<시민과 변호사>2000년 3월호에 실린 정달영 한국일보 주필의 글입니다.

http://www.seoulbar.or.kr/Magazine/200003/Article01.asp



‘교사’ 김교신(金敎臣)과 ‘판사’ 김홍섭(金洪燮)을 “감동을 주는 한국인 상”으로 재발견한다는 취지의 글을 오래 전에 쓴 일이 있다. 두 사람은 살아간 연대(김교신 1901~1945, 김홍섭 1915~1965)에 차이가 있고 직업 또한 판이해서, 같은 마당에 놓고 비교하듯 이야기한다는 것은 썩 내키는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김교신의 ‘교사’는 8·15해방을 보지 못하고 쓰러진 그의 짧은 일생과 함께 일제치하에서 끝이 났으나, 김홍섭의 ‘판사’는 8·15해방 이후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시대배경과 생활이 서로 다르고 사사로운 연고도 없다.

그러나 아주 우연한 일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생전에 삶으로 모범을 보인 ‘구도자의 모습’이다. 둘은 비록 무교회주의와 가톨릭의 서로 다른 체제에 몸담았으나 뜨거운 신앙의 길을 걸어갔다는 점에서 같고, 특히 정신의 강건함과 생각의 깊이에서 똑같이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일찍이 양정학교에서 김교신이 얼마나 좋은 스승이었던가 하는 것은 그를 추모하는 수많은 제자들, 예컨대 윤석중 유달영 손기정 등의 글에도 아직껏 절절하다. 교육학자 김정환(金丁煥) 교수 같은 이는 ‘현대 세계를 대표하는 위대한 3대 교사’로 아동해방교육의 A. S. 니일(1883~1973), 민족해방교육의 도행지(陶行知, 1891~1946)와 더불어 ‘민족이상교육의 실천가’ 김교신을 당당히 꼽을 정도다.

그러나 교사이면서 신앙인인 김교신의 진면목은 개인잡지『성서조선』을 15년 동안 달마다 쉼 없이 발행한 엄청난 열정에 녹아 있다. 오늘날 전집 여섯 권으로 남은 그의 방대한 글모음은 지금 읽어도 문장이 생기 넘치고, 그 하나 하나가 뛰어난 신앙고백으로 빛난다.

감성이 시인처럼 해맑고 문장이 아름답기로는 김홍섭의 글도 버금간다. 광주와 서울고등법원장을 지낸 법조인인 그에게 장면(張勉) 박사는 ‘사도법관(使徒法官)’이라는 별명을 주었다. ‘사도’라면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들을 이르는 말이다. 김홍섭의 전기를 쓴 법사학 교수는 ‘법신학적 사상가’라고 그를 정의한다. 그는 인간이 인간을 재판하는 일을 항상 회의하고 고뇌했으며 피고인에 대한 선고에 임하기 전에 “하느님의 눈으로는 과연 누가 죄인인가”를 끈질기게 물었다고 한다. 그가 수많은 사형수들과 나눈 사랑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 시대의 전설이다.

김교신과 김홍섭. 두 사람은 너무 다른 시기와 환경에서 살았으나, 너무 닮은 인생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뛰어난 자연관찰자였다는 점이 놀랄 만큼 일치한다.

김교신은 본래 박물학 교사로, 동·식물 생태에 해박하다. 김홍섭은 산행을 즐기면서 식물을 관찰하고, 사실적인 스케치로 잎새를 기록했다. 그 그림 솜씨가 수준 이상이다.

김교신은 돈암동 삼선교 일대가 허허벌판이던 시절에 정릉 산골짜기에 집을 정하고, 양정까지 삼십릿길을 자전거로 다녔다고 한다. 그야말로 ‘건각’이다.

김홍섭은 사직동 자택에서 신문로로 나와 덕수궁 뒷길을 거쳐 법원 청사에 이르는 길을 걸어서 오갔다고 한다. 10년 동안을 그랬는데, 그 행색이 “책 한 권과 도시락이 든 누런 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군복을 개조한 허름한 옷에 검정 고무신이나 워커 구두를 신은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30∼40년대의 일화인 ‘자전거 통근’과 50~60년대의 풍경인 ‘도보 출퇴근’은 시기는 서로 다르지만 두 사람의 참으로 닮은 점을 보여준다. 그때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두 사람에게 모두 ‘생각이 깊은 시간’이고, 인간과 자연과 신을 사색하는 알맞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김교신·김홍섭이라는 ‘감동을 주는’ 두 한국인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이런 ‘생각이 깊은 시간’, ‘사색하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오늘의 세태를 깨닫고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뜻에서다.

요즘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돌도 되기 전부터 TV광고의 현란하고 자극적인 영상에 길들여진다. 상상하거나 생각할 여지가 전혀 없다. 부모나 가정이나 학교조차도 ‘무엇인가를 생각하도록 돕는’ 교육은 거리가 멀다. 관심은 오로지 천박한 소비문화이거나 오락이거나 온갖 물신적(物神的)인 것들뿐이다.

큰일났다고 생각되는 일 가운데는 요즘 신문들도 있다. 섹션 페이지라는 것을 만들면서 예외 없이 ‘돈’ ‘재테크’를 대서특필한다. 어떻게 굴리면 가장 효과적으로 재산 증식을 하는가, 어느 동네 재개발 아파트에 투자하면 유망한가 하는 따위 ‘정보’들은 그런대로 얌전한 편이지만 무슨 ‘대박’ 터진 벤처기업이며 수십억짜리 연봉이며 스톡옵션이며 하는, 온통 ‘돈’만이 절대가치인 이야기들로 지면을 가득가득 메워 절대다수의 상대적 결핍 대중들을 기죽이는 것이다.

TV 같은 영상매체만이 아니라 신문조차도 일편단심 ‘돈의 우상화’에 복무할 뿐 생각의 깊이를 돕거나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일도 있다는 점에 관심을 보이는 데는 애써 인색하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지금은 정보화-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대변혁기이다. 그야말로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인터넷을 통해 광속으로 쏟아지는 정보를 무슨 방법으로 가려내고 소화한다는 것인지 알지를 못한다.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과잉이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처리불능이 가져다주는 쇼크다. 무엇을 ‘생각’한다거나 무슨 ‘의미’를 찾아낸다거나 하는 일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다.

‘컴 맹’ ‘넷 맹’ ‘웹 맹’이 살아가기 힘들던 세상이 아니라,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는 ‘의미 맹(盲)’이 되었다는 경고가 들려오고 있다. 정보만이 홍수로 쏟아지는 세상에서 그 정보홍수의 갈래를 헤아리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은 전혀 없는 ‘의미 맹’들의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정보화시대는, 이쯤 되면 복음이 아니라 저주이기 쉽다. 이렇게 되어서는 결단코 안 될 말이다.

자전거 페달을 밟거나 걸으면서, 속도는 다소 느리더라도 생각의 깊이를 더해 가는 생활이 소중하다. 인터넷이 만능이고 모험주의가 대박을 터뜨리는 세태라고 한들, 인간의 정신이나 영혼이 빠진 세상은 그야말로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약삭빠르기보다는 다소 우둔한 편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의 의미, 차디차고 잔인하게 양산되는 정보의 바다에서 인간적인 삶과 문화의 고전적 원형을 찾아서 지켜야 한다는 주장, ‘의미 맹’으로의 편입이 아니라 ‘의미 부여자’로 남아야 한다는 자각, 그리고 김교신 김홍섭과 같은 이들의 “감동 주는” 정신의 깊이에 빠지고, 귀기울이고, 느끼고, 재발견하는 일이 이 21세기에 더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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