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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향연]

[독서노트][20010424]와타나베 쇼이치 <지적 생활의 방법>

작성자박상익|작성시간05.03.01|조회수73 목록 댓글 4

[독서노트] 와타나베 쇼이치 지음, 김욱 옮김 『지적 생활의 방법』(세경멀티뱅크, 1998)


 

<오마이뉴스> 2001년 4월 24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1.


와타나베 쇼이치는 조치대학(上智大學)을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 등에서 공부를 한 후, 현재 조치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원래 영어학이 전공이지만, 깊은 교양을 배경으로 한 역사, 문명 비평으로도 필명을 날리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적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당연히 ‘책’에 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중심이 되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얻는 지적인 기쁨이 너무나 달콤한 것이어서, 노령(老齡)이 겁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겁나기는커녕 오히려 정년(停年)이 기다려진다고 말한다. “모든 의무로부터 해방된 상태에서 차례로 신간(新刊)을 사들여 아침부터 책을 읽는, 정년 후의 인생이 지금부터 기다려진다.”고 말할 정도이다.

『논어』에 보면 ‘호지자 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이다. 실로 저자는 독서를 즐기는 경지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 자신은 어디에 와 있는가?

저자는 소년 시절의 독서 방법으로서 불건전하거나 변태적인 내용의 책은 피하라고 충고한다. 예를 들어 그는 일본의 유명 작가로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 같은 것은 어쩐지 읽기가 싫어 회피했다고 한다. 그런 책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다음에는 괜찮다. 그러나 소년 시절에는 상식적이고도 건전한 책을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아쿠타가와의 글을 재미있게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서른 살이 지나서였다. 소년 시절 아쿠타가와의 글을 즐겨 읽던 저자의 이웃에 사는 조숙한 소년은 중학 시절에 치한(癡漢)이 되었다고 한다. 그 뒤 대학을 나온 뒤 훌륭한 사회인이 되었으나 독서를 한다든가하는 지적 생활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생활을 하며 지냈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고전을 만들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저자는 2, 3년 전에 읽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책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여전히 재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 몇 권만을 골라내서는 내년이나 내후년에도 반복해서 읽으라고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나 자신의 ‘고전’이 만들어지고, 그러다 보면 독서 취미가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사실 스스로 돌이켜보니 이 [독서 노트]를 위해 『지적 생활의 방법』을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년에도 이 책을 다시 집어 들고 읽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저자는 지적 생활을 위해서는 자기 돈을 주고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입이 적으면 적은대로, 그 때 그 때 자기 돈으로 책을 조금씩 사들여 자기 주위에 책을 쌓아가는 것이 지적 생활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장서’, 곧 ‘도서관’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어느 날 문득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찾던 그 책이 곁에 없어서 읽을 수 없었다면, 그것은 지적 생활에서 치명적인 일이다. 이튿날 또는 다음 기회에 도서관 등에서 빌려 보려 했을 때에는 이미 그 책을 읽고 싶다는 감흥이 사라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시 책은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저자는, 무리를 하면서까지 책을 산다든가 하지 않는 사람이 지적으로 활발한 생활을 하는 예는 거의 없다고 한다. 주머니 돈을 털어, 맛있는 음식 대신, 당장 읽지도 않을 책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허기진 배를 라면으로 때우면서도, 언제 읽게 될지도 모를 값비싼 책을 사는 것이 지적 생활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적 생활이란 언제나 끊임없이 책을 사들이는 생활을 말한다. 따라서 책을 둘 장소를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즉 공간과의 싸움이다. 저자가 아는 한 연구자는 책 때문에 밤에 이부자리를 펴지 못해 책을 깔고 그 위에 이부자리를 펴고 잤다고 한다. 우리 가운데 과연 이런 사람이 있던가 하고 자문(自問)하지 않을 수 없다.

지적 생활자는 수동적 지적 생활자와 능동적 지적 생활자의 둘로 나뉜다. 수동적 지적 생활이란 주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말 한다. 이 경우는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아도 된다. 작은 방에 애독서들이 들어차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능동적 지적 생활을 하는 사람, 즉 논문을 쓰거나 신문,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권의 책을 쓰려면 50배, 100배의 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집에서 잡지에 기고할 글을 쓰다가 무언가 조사할 일이 생겼을 때 집안에 참고문헌이 없다면 그날 밤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이튿날 도서관에 가서 조사를 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한 일이 아니라면 상관없다. 그러나 마감을 지켜야 하는 경우라면 참고문헌이 없어 집필을 중단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 된다.

와타나베 쇼이치의 글을 읽으며, 민족주의자이자 무교회주의자였던 김교신(金敎臣) 선생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선생은 절대 책을 남에게 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서재란 마치 군함과 같아서, 전시에 어떤 무기를 뽑아 사용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글을 쓸 때는 언제 어떤 책이 필요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지적 생활 초심자의 경우 ‘원칙적으로’ 카드를 만들지 말라고 권한다. 카드 작성은 너무나 시간을 잡아먹으며 일일이 카드를 기록하려면 크나큰 노력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독서가 중단된다는 것이다. 결국 카드 쓰기가 귀찮아져서 독서하기가 싫어지고 지적 생활을 위축시키게 된다.

책 한 권을 사서 카드를 작성하면서 읽는 시간에 20권의 책을 읽으면서 중요 대목에 줄을 쳐가며 읽을 수 있으니, 도서관 책을 빌리지 말고 책을 사버리는 것이 결국은 시간 절약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산다는 것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인생은 짧으니까)

과연 우리나라의 대학생, 또는 대학 졸업생들 중에, 진정 이런 식으로 지적 생활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호지자 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의 경지에 들어간 저자가 부럽기 짝이 없다.  

 

2.

 

대학원생 시절 논문 작성을 위해 외국 자료를 입수하러 분주히 다니다보면, 책장에는 외국 책을 복사해서 제본해 놓은 책(?)들이 제법 쌓이게 된다. 원서를 구할 수 없다보니 도서관 등에서 빌린 책을 복사해 제본한 것들이다. 지금도 서가 한 모퉁이에는 복사해 놓은 자료들이 들어차 있다. 그런데 세월이 가도 이 자료들에 대해서는 어쩐지 손이 가질 않는다. 역시 책은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디자인되고 장정된 책이어야 정이 붙는 것 같다.

요즘은 인터넷에 중고서적 취급 사이트(abebooks.com 따위)가 있어서 절판된 책도 헌 책으로 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래서 예전에 구하지 못했거나 복사본으로만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직접 주문해서 원서로 받아보곤 한다. 비록 헌 책이지만, 일단 원본이 구해지면 복사본은 책장에서 작별을 고하고, 원본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임무 교대인 셈이다. 이렇게 볼 때, 책이란 순전히 그 ‘기능’만 가지고는 판단할 수 없는 요소를 갖고 있는 셈이다.

요즘 대학가에선 학교 앞 복사 가게에서 교재 등을 복사해서 쓰는 경우가 제법 많다고 한다. 나도 몇 권의 책을 쓰고 옮긴 적이 있지만, 내 강의실에서마저 내가 쓴 책을 버젓이 복사해 들고 오는 학생들을 가끔씩 볼 때가 있다. 책값이 만만치 않다보니 그런 편법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진정으로 지적 생활을 추구하는 대학생이라면 차마 못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작권을 침해한 불법복제라는 점도 문제지만, 그런 식으로 복사한 책(종이뭉치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은 아마 그 학기가 끝나는 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될 것이다.

와타나베 쇼이치도 그와 비슷한 말을 한다. 연구 업적을 내기 위해 읽는 문헌의 경우는 복사판이든 보급판이든 상관이 없지만, 업적과 무관하게 읽는, 교양을 위해 또는 취미로 읽는 책의 경우는 책의 장정과 편집을 중요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언제부턴가 “이제 앞으로 몇 년이나 살게 될 것인가?”하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고 한다. 그런 상념은 “앞으로는 읽을 수 있는 책의 가지 수도 많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그러다보면 값싼 책을 많이 사는 것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활자가 큰 책이라든가, 장정이 고급스럽게 된 책이라든가, 삽화가 좋은 책 따위를 고르게 된다는 것이다.

전공에 직접 관련된 책이 아닌, 자신의 취미에 맞는 책을 사서 모아들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와타나베 쇼이치는 젊어서부터 그런 책을 꾸준히 모아들인 학자와 그렇지 못한 학자는 정년 후의 활동양상이 달라진다고 한다. “학자들 중에는 정년 후에 크게 뻗어나는 사람과 정년이 되면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 도구 또는 수단으로서의 문헌만이 아니라, 지적 반려자로서의 책이 또한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젊었을 때부터 연구용 기본도서와 애독용 도서 등을 한 권씩 사 모으는 과정 자체가 풍요로운 지적 생활이 되며, 비록 작더라도 개인 도서관이 자기 나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실감을 사생활 속에서 느끼게 될 때, 삶의 여유가 생기고 노후의 지적 생활이 한층 다채로워진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사실 이 책의 저자 와타나베 쇼이치야말로 그런 독서법을 스스로 실천한 인물로 보인다. 영어학 전공이면서도 역사라든가 독서생활 같은, 전공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저술을 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평소 취미로서의 독서 생활을 충분히 즐기며 살았음을 잘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자기 전공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낸 학자들 중에는, 자신의 전공을 마치 ‘종교’처럼 외곬으로 생각하여, 다른 독서 취미를 거의 갖지 못한 상태로 노년을 맞이하는 분들이 있다. 노년기에 접어든 그런 분들을 만나면 학문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여유가 없고 편협하다는 인상을 받곤 하는데, 와타나베 쇼이치의 말을 들으면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목사들 중에도 평소 폭넓은 독서를 한 분은 말과 글에서 분명한 차이가 난다. 자나 깨나 『성경』 한 권만을 마치 주문처럼 달달 외워서 인용하는 목사들에게서는 인간미를 느끼기가 힘든 것이다. 아니, 그들 중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력마저 결여된 경우도 아주 흔하다.

이점은 젊은 날 교양과 취미로서의 독서 없이, 오로지 『육법전서』만을 달달 외운 우리 주변의 자칭 수재연(秀才然)하는 법률 전문가들에게서 자주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도 진정한 의미의 ‘독서 계층’이 형성되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와타나베 쇼이치는 이를 위해 독서 취미가 형성되는 유년 시절에, 형식적인 교육의 간섭을 받지 않은 채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간섭받지 않고 혼자서 무슨 책이든 읽는 것은 장래의 지적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이가 몇 살이 되건, 지적 생활의 중심은 고독 속에서 생각하거나 명상하는 시간, 고독 속에서 책을 읽는 시간, 고독 속에서 작업하는 시간이다. 하루 몇 시간이고 완전한 고독 속에서 지내더라도 마냥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지적 생활은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인문 계통의 학자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자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어린이가 어른에게서 또는 다른 어린이에게서 훼방 받는 일 없이 혼자 지내면서 놀 수 있는 체험을 하며 자랄 수 있는가의 여부가 지적 생활을 하기에 적합한 성격 형성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어려서부터 “혼자서도 잘해요” 하는 어린이가 나중에 자라서 지적 생활도 잘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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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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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o선정애o | 작성시간 10.08.22 수도원의 수녀 678명을 대상으로 알츠하이머병을 연구한 과정을 담고 있는 책이 있어요. 미국의 역학(疫學)자 데이비드 스노든의 <우아한 노년>이라고...그 책에서 보면, 건강하게 늙은 수녀들은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교육수준이 높으며, 풍부한 어휘력과 독해력을 갖고 개념 밀도가 높은 문장과 단어를 쓰고 있었답니다. 결국 잘 늙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는 거죠. 교수님은 만수무강하실 거예요.^^
  • 답댓글 작성자박상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8.22 그래도 언젠가는 떠날 세상이지요?...^^
  • 답댓글 작성자o선정애o | 작성시간 10.08.22 <하치 이야기>에서 주인공 파커의 죽음이 너무 허무하죠? '죽음이란 아침에 출근한 사람이 다시는 퇴근하지 못하는 것'. 경험에 의한 제 정의예요. 언제 떠날지 모르는 세상이니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고...ㅜㅜ;;
  • 답댓글 작성자박상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8.22 그래서 '밤새 안녕'이란 말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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