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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의 저자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 - 1970)은 독실(!)한 무신론자이다. 이 말은 형용 모순인 듯 보이지만 엄밀하게 보면 의미 연관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하라, 진리를 추구하라, 인류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문이 말해주듯 러셀은 진지하고 인간적인 지식인의 면모를 잃지 않은 사람이다. 신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러셀이 세상에 기여한 바는 진지한 종교인들의 그것을 능가한다. 철저한 반전주의자였던 러셀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는 중재역을 자임했고 중동과 이스라엘 사이에서는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을 규탄하는 등 시대의 지성과 양심으로 살았다.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ml:namespace prefix = o />-ml:namespace prefix = o />-ml:namespace prefix = o /> 러셀의 삶과 사상은 러셀과 상반되는 가치관을 피력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家의 형제들‘과, 신이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종교의 바깥에서 의미를 찾은 물리학 전공의 철학 교수 앤드루 커노한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잘 알다시피 ‘카라마조프家의 형제들‘은 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상을 드러낸 작품이다. 반면 앤드루 커노한은 ’종교의 바깥에서 의미를 찾다‘를 통해 행복, 쾌락, 욕망, 이성, 자아실현, 정의, 헌신 등을 추구해야 할 덕목으로 꼽았다. 이성 뿐 아니라 감정(정서)도 함께 강조한 앤드루 커노한은 러셀의 강조점을 연상하게 한다는 점으로도 양자의 친연성은 입증된다.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역사가, 사회 비평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문인 등 러셀을 수식하는 말은 풍성하고 그가 몸담아 글을 남긴 분야는 수학, 과학, 정치학, 윤리학 등으로 다양해 그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의 전형으로 꼽힐 만하다. 하지만 나에게 러셀은 1997년 이후 무엇보다 ’상대성 이론의 참뜻(The ABC of Relativity)‘의 저자였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및 일반 상대성 이론을 해설한 이 책은 성공한 대중 과학서의 대표이다. 상대성 이론에 대한 책을 여려 권 읽었지만 나는 이 책이 어떤 과학 전공자의 해설서도 따라올 수 없는 대중적 소통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러셀은 아마추어였지만 프로페셔널을 능가했고 이런 점은 역사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역사에 대한 자신의 위치를 아마추어라 표현했지만 이는 겸손의 표현이었다. 러셀은 앤드루 커노한이 이성과 감정(정서)을 균형되게 보았듯 의미와 쾌락을 함께 추구했다. 이는 신을 배제한 지성의 필연의 선택이다. 러셀은 ’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를 통해 쾌락으로서의 역사를 다루었다. 쾌락이 부정적인 어감을 지녔지만 이는 감추어진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호모 루덴스의 세계와도 연관된다. 역사를 거시적 역사와 미시적 역사로 나눈 러셀은 거시적 역사를 “지금의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란 질문에 대한 (자연과학과 고고인류학적) 답변으로 정의했다. 반면 미시적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흥미로운 역사적 인물들을 만나게 해주며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을 향상시켜 주는 분야이며 시각이라고 정의했다. 이쯤에서 역사란 무엇인가, 란 질문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는 러셀의 시선 즉 관점이 반영된 것으로 ‘역사의 이해(Understanding History)’란 원제가 역사에 대한 메타 담론적 성격을 지녔음을 알게 해준다면 번역본의 제목은 여러 사건들의 의미연관을 탐구하는 러셀의 작업이 낳은 결과물임을 짐작하게 한다. 러셀은 역사는 즐겁게 배워야 한다는 견해와, 역사 발전에 천재적인 개인이 필수적이라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러셀에 의하면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플루타코르스, 기번 등은 역사 서술의 서로 다른 감탄할 만한 방법들을 보여준 사가(史家)들이다. 러셀은 주제의 통일성과, 다양한 주제들 속에서 균형 감각을 놓친 적이 없다는 이유로 기번을 최고의 역사가로 꼽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애초부터 노예 해방이 아니라 북부의 경제 논리인 보호관세와 세금에 의한 특정 산업의 지원정책을 추진하려 했다는 이유로 딜로렌조(Thomas J. Dilorenzo)에 의해 혹독하게 비판받은 링컨을, 연구할수록 위대해지는 인물로 꼽았지만 딜로렌조의 사견(邪見)을 반박하는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러셀은 역사적 사실들을 단순히 아는 데에서 나아가 역사 전개의 패턴과 의미를 파악해야 즐거운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플라톤이 편안하게 철학적 문제를 사색할 수 있도록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기 위해 누가 착취를 당했는가?” 역사 발전에 있어서 천재적인 개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비범한 개인이 아닌 보통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장점을 지닌 경제사도 함께 언급하는 러셀은 균형 감각을 지닌 인물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경제사는 틀에 박힌 서술 방법을 취한다는 단점을 지녔다. 러셀의 진단에 의하면 이는 과도한 전문화의 폐해이다. 사회학은 인간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관찰하며 심리적 설명에 대한 시도 없이 오직 신체적 행동만을 관찰한다는 러셀의 지적은 중요하다. 러셀이 개인주의자여서 이런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별의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를 고려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기만 할 뿐인 천문학자들을 예로 들어 심리적 설명을 배제하는 사회학의 오류를 설명하는 러셀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천문학자에 대해 같은 유형으로 분류한 장 지글러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은 소략하나마 지식인의 계보를 알게 한다는 점에서 희열이 느껴진다. 과학을 신뢰하지만 과학만으로는 제공할 수 없는 선악의 기준을 제시하는 잣대로 문화사를 거론하는 러셀의 면모 역시 신뢰할 만하다. 러셀은 과학을 난센스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로 정의했지만 과학에 대한 맹목적 수용 역시 경계했다. ‘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는 얇지만 중요한 문제의식들을 거의 망라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소적인 교훈을 이끌어내는 것에서 나아가 우리가 고찰한 악행에 빠지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라는 당위를 제시한 것 등으로 돋보인다. 지식인의 냉소적 시선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위한 대안 제시를 촉구하는 것은 따뜻한 마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민주주의가 경제 영역으로 확대되지 않으면 완전히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는 어렵다는 진단도 새겨들을 만하다. ‘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를 통해 우리는 세계사를 즐거운 사색의 대상으로 만났고 저자의 깊은 통찰력과 열린 마음, 인간에 대한 애정을 덤으로 만났다. “참다운 도덕성은 지성에 의해 손상을 입지 않으며 지성이 반드시 이기심을 조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 종교적이기까지 한 러셀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중요하게 거론되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을 가려내 시간이 지나도 기억될 인물을 알아보는 능력을 강조한 러셀로부터 향후에도 진정으로 남을 참다운 문제의식을 발견하게 하는 책을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정신의 시간적 영역을 확대해주는 역사학의 즐거움을 실감하게 한 러셀의 책을 강력 추천한다.
http://anuloma01.egloos.com/10801191 |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임중기 작성시간 11.11.29 역사 공부에게 그 시대에 인물을 발견하는 것이 역사공부에 맛이고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드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박상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1.29 역사는 재밌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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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백야나라 작성시간 11.11.30 여행할 때도 건물과 풍경만 보지 말고 그 도시의 유명한 인물이 누구인지 생각하며 본다면 도시가 달라 보이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대문호 도스토에프스키의 활동지임과 동시에 레닌의 공산혁명이 성공한 본산이기도 하지요.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인문적인 도시일수록 인물탐방이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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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박상익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1.30 김교신 선생이 그러셨죠. 한 나라의 최대 산물은 바로 '인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