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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읽기]

[박상익]중세사(15): 방아와 풍차, 그리고 각종 농기구들

작성자박상익|작성시간04.04.06|조회수325 목록 댓글 0
중세사(15): 방아와 풍차, 그리고 각종 농기구들  

 

중세전성기의 세 번째 농업 기술 혁신은 방아의 사용이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물방아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노예 노동력이 풍부했던 까닭에 노동력 절감에 무관심했고, 또 로마 영토 대부분 지역에는 물살 빠른 하천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050년경부터 북유럽에서는 물방아 제작이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어떤 지역에서는 11세기에 14개였던 물방아가 12세기 들어 60개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또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는 850년에서 1080년 사이에 약 40개의 물방아가 제작되었고, 1080년에서 1125년 사이에는 40개가 추가로 제작되었는가 하면, 1125년에서 1175년 사이에는 다시 245개가 제작되었다.

물방아 제작의 복잡한 기술을 완벽히 습득한 유럽인들은 이제 풍력(風力)의 이용에 관심을 보였다. 그 결과 1170년경에 유럽 최초의 풍차가 건설되었다. 그 후 물살이 빠른 하천을 갖지 못한 홀란드 등의 평원 지대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물방아가 퍼진 것만큼이나 빨리 풍차가 늘어났다.

방아의 본래 기능은 곡식을 빻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다양하고 다른 긴요한 기능으로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제재(製材), 직조, 착유(窄油), 맥주 양조, 철공(鐵工), 펄프 제조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종이는 서유럽보다 먼저 중국과 이슬람 세계에서 제조된 바 있지만, 서유럽처럼 종이 제조를 위해 방아 시설이 이용되지는 않았다. 그러한 점이야말로 기술적인 정교성이란 점에서 서유럽이 다른 선진 문명들에 비해 앞섰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1050년경에는 그밖에도 중요한 기술 발전이 있었다. 우선 말을 농경 가축으로 이용하기 위한 다양한 마구들이 등장했다. 800년경에는 헝겊을 덧댄 어깨띠(padded collar)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말이 힘을 다해 짐을 끌어도 숨이 막히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약 100년 후에는 쇠로 만든 편자가 말굽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1050년경부터는 직렬식 멍에(tandem harnessing)가 발달되어 여러 마리의 말들을 앞뒤로 한꺼번에 끌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 발전과 삼포제로 인해 풍부하게 수확된 귀리와 함께,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농경 가축으로 소 대신 말이 이용되었다. 그 결과 작업이 신속해졌고 더 오랜 시간 동안 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밖의 농기구로는 외바퀴 손수레와 써레가 있었다. 써레는 쟁기질을 한 후에 밭을 평평하게 고르고, 파종된 종자를 묻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발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중세 전성기에 접어들어 철이 모든 농기구에―특히 무거운 쟁기의 보습 날에―사용됨으로써 그 기능을 강화시켰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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