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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길]당신은 서 있는 널판을 옮길 수 없다

작성자nari|작성시간26.06.16|조회수29 목록 댓글 8

신시아 부조 《마음의 길: 향심기도와 깨어나기》

제4부, 향심기도와 깨어나기

12장, 내적 관찰자와 작업하기, 183쪽

 

고전적인 영적 훈련에서, 진정한 "자기 작업"work on self은 내적 관찰자inner observer 혹은 목격자가 발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신은 서 있는 널판을 옮길 수 없다!"라는 말은 내가 참여했던 내면 작업 집단의 격언이었다. 일상적인 알아차림이 당신이 아는 유일한 알아차림인 한, 당신 존재의 무게중심을 그 에고의 궤도로부터 진정한 중심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정말 없다. 당신이 바랄 수 있는 최대치는 "건강한 에고"이다. 즉, 자신의 경계와 합리적으로 접촉하고, 다른 이의 경계를 존중하는 정도면 된다. 

 

사실, 현대 영적 교사 중의 한 사람인 에크하르트 톨레는 에고를 "주시하지 않는 마음"the observed mind으로 간결하게 정의한다. 그가 보기에, 에고를 에고로 만드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에고 자체를 떼어놓을 수 없는 그 무능력이며, 그 내면의 심리극 안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마는 그 성향이다. 내면 작업의 전통적인 언어에 따라, 그는 이 의식의 수준을 무의식, 혹은 깨어나는 잠waking sleep과 같다고 본다.

 

아시다시피, 당신은 잠자는 동안 꿈을 꾸지 않는 상태와 꿈꾸는 상태를 끊임없이 옮겨 다닙니다. 비슷하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어 있을 때라도 일상적인 무의식과 깊은 무의식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내가 일상적인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의 생각 추이와 감정, 자신의 반응, 욕망, 혐오에 동화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그런 상태로 지냅니다. 그때 사람들은 에고의 마음에 의해 움직이며, 그렇게 되면 존재자Being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영적 교사들은 내적 관찰자inner observer를 그들이 현존이라고 부르는 상태, 혹은 다른 말로 존재자Being 자체의 능동적인 알아차림과 연결시킨다. 톨레가 말한 "반응, 욕망, 혐오"라는 의식의 내용물에 빠져버리기보다, 당신은 의식의 장에, 말하자면, 강을 따라 흘러가는 배보다는 강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배운다. 이런 동시적인 알아차림으로부터, 더 이상 한때의 충동이나 정서적 반응과 같지 않은, 존재 자체에 깊이 뿌리내린 "나"라는 온전한 새로운 감각이 나타난다. 그 내적 관찰자는 이 "나"라는 새로운 감각을 지니고 에고적인 자각과 더 깊은 자기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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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겨자씨한알의꿈 | 작성시간 26.06.16 나는 서있는 널판을 옮길 수 없다!!
    주님 내가 할수없는 것에 doing하지 않게하여주소서.
  • 작성자dmlwlsaka | 작성시간 26.06.16 " 더 이상 한때의 충동이나 정서적 반응과 같지 않은, 존재 자체에 깊이 뿌리내린 "나"라는 온전한 새로운 감각이 나타난다. "

    바람에 흔들려가며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간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주님, 에고의 흔들림 속에서 사는 저이지만 주님을 향해 가는 길을 잃지 않도록 저와 함께 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작성자새해 | 작성시간 26.06.16 "비슷하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어 있을 때라도 일상적인 무의식과 깊은 무의식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 작성자그린 | 작성시간 26.06.16 '에고를 에고로 만드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에고 자체를 떼어놓을 수 없는 그 무능력이며, 그 내면의 심리극 안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마는 그 성향이다.' 강력한 심리극 한편 쓰고 올리고 지나간 끝에 그 소용돌이를 돌아보게됩니다. 에고따라 살다가 길 잃는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부드럽게 다시 불러주시는 주님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 작성자하루 | 작성시간 26.06.16 '그 내적 관찰자는 이 "나"라는 새로운 감각을 지니고 에고적인 자각과 더 깊은 자기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주님.. 몸의 한계를 마주하며 건강한 에고 정도에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더 깊은 자기에 닿는 이 여정에 주님께서 함께해 주세요. 이끌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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