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나의 마음에 어떤 움직임들이 있었나? (기쁨, 평화, 감사, 분노, 불안…)
분주함과 불안이 가득했습니다. 해야 할 일 아니 해 내야 할 일들이 많이 있고, 그것들을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맘을 불안하게 했고 나도 모르게 분주함이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거기에다 조급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소용돌이 치고 이 생각 저 생각이 여기저기서 뒤섞여서 뭐하나 제대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2. 나는 그 움직임에 어떤 반응을 했나? (폭력, 냉정, 거리두기, 과장/확대, 거짓표현/아부 등)
우선 말이 없어지고 오히려 차분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가까이 아내에게는 오히려 차분하고 조용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상황과 형편에 관심이 없었고 아내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다가 두 번 물어보거나 다시 말하는 경우는 짜증을 내고, ‘내가 지금 속이 이렇게 복잡한데 알지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거지’ 라고 서운해 했습니다. 나를 몰라준다는 느낌을 받아 도리어 거리를 두고 아내에게 냉담한 태도로 대했습니다.
3. 왜 그렇게 반응했나? (원인/각 번호의 집착 회피, 방어기제/과거의 상처 등에서 찾아본다)
우선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이란 그 일의 결과에 대해 누군가의 평가나 판단 그리고 반응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못하는 모습, 좋지 않은 결과(다른 사람의 기대에 못 미치는 또는 내 맘에 들지 않는) 그로인한 사람들의 평가가 몹시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의 만족하지 못한 눈빛, 실망스럽게 보이는 표정 또는 무반응을 견디기 힘듭니다. 존재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삶이 다 끝나는 경험입니다. 물론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내가 상상하는 것 보다 평가와 피드백이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감정은 그 생각을 이깁니다.
왜 이렇게 반응할까요? 7번의 집착과 회피 때문이라면 고통을 마주하고 싶지 않고 즐거움과 행복한 상태에 집착하는 이유일텐데……혹시 모를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고통이라서 행복한 상태가 아니라서 피하고 싶은 것일까요? 아예 고통스러울 수 있는 가능성을 피하고 싶은 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상처에 영향받는 거라면…아버지가 부재한 가정에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언제나 공부도 운동도 예의도 바른 아이여야 했던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도 없이 시집살이 하는 어머니를 위하고 지키는 일은 내가 뭐든 잘 하는 것뿐이었으니까요. 집안 분위기를 잘 살피고 눈치껏 내가 할 일을 잘하는 것이 생존의 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람들의 평가와 판단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어느 한 가지만은 아닐 터이고 기질의 특성과 어린 시절의 상처와 또 다른 학습된 경험들이 영향을 준 것이겠지요. 7번의 집착과 회피에 집중해 본다면, 이런 상황들을 직면하고 받아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불편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감정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거겠지요. 다만 그 힘들고 불편하고 불쾌한 자리를 피하거나 재빨리 덥거나 어떤 이유로든 합리화해서 다음 기회 혹은 미래의 기회와 긍정적 결과를 상상하는 것으로 빠지지 않아야 겠지요. 나는 감정도 당겨쓸 수 있으니까요.
4. 성찰 후 내 안에 남은 가장 강한 움직임은? (고마움, 평화로움, 후회, 미안함, 기쁨, 슬픔)
착잡한 마음이 드네요. 고통의 원인을 없애고 싶은데(뭐든 잘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고 오히려 그 자리에 있어 고통을 보고 느끼고 함께 있어야 한다니 좀 무겁습니다. 익숙해지거나 가벼워질까요?
5. 오늘 하루 중 나 자신에게 위로나 격려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 또는 하나님 아빠께 특별히 도움을 청하고 싶은 한 가지는?
좋으신 주님,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원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 판단으로 인한 내 안의 감정도 담담하게 직면하게 해 주세요.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나와 함께 그 자리에 계심으로 내가 있을 수 있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