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 뒤에, 가면 같은 얼굴 뒤에, 뭐가 있을가?
울고 있는 아이가 있다.
생각도 안 나고 그래서 대충 그린 그림에 선생님들이 해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담담히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었다. 그릴 때는 몰랐는데 보여지는 게 있다. 그림을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서도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외면하고 있었던 거겠지.
스노우볼 같다고, 자신만의 방 같다고, 누가 보고 있는 걸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는 등의 여러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그 모습이 인형의 집에 있는 인형 같아 보였다. 어렸을 때, 마론 인형을 하나 갖게 되었는데 인형 집을 사고 싶었다. 어려운 형편에 당연히 불가한 이야기였고 내가 상자랑 이런 것들로 만들어줬던 기억이 난다. 내 삶은 황폐하지만 그 곳에선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꾸미고 그 인형이 나인 것처럼 현실에서 촌스러울 것 같아 입을 수 없는 옷을 입힌다. 그리고 나를 보며 다정하게 웃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인형의 웃는 표정에 담겨 있다.
학교에 무슨 말만하면 우는 남자 아이가 있다. 이제는 상담을 다니면서 자기는 당황할 때 눈물이 난다고 스스로 인지하고 말한다. 그 아이가 나같았다. 어렸을 때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서 기쁘고 안도감이 들었는데 눈물이 났다. 왜 울고 난리냐는 엄마의 역정에 설명도 제대로 못하고 울음을 삼켰던 기억, 화가 나는데 화를 내면 상황이 어색해질까 참다가 눈물이 났던 기억, 울면 청승떤다고 재수없다고 은근히 타박받았던 기억이, 모든 감정을 울음으로 ㅍ현했던 어린 시절로 남아있다.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여자는 함부로 눈물을 흘리는게 아니야 라는 말로 희화하며 울음을 참았던 날들이 있었다.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적절하게 나타내기 어려운, 가면과 같은 내 모습이 불쌍하다.
아침 산책길에 늘 걷던 산길 앞에 주춤했다. 왠지 오늘은 한적한 깊은 숲이 무서웠다. 나의 내적 여정도 이 지점에 있는 거 같다. 숲을 좋아하고 더 깊이 들어가고 싶지만, 무섭다. 두렵다기보다 무섭다. 낯선 사람을 만날까, 위험한 동물을 만날까 무섭다. 산책길은 마음의 소리를 듣자 하며 돌아서 나왔지만, 내적 여정의 길은 주님의 손을 잡고 걸어들어가고 싶다. 무엇을 만날지 모르지만 주님이 계시니, 담담히 들어주고 말해주는 동반자 쌤들이 계시니, 할 수 있을 거라 혼자말하며 사진 한장 남기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