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작가 이원규의 서재

나의 애송시, 백석의 <산숙>, [책과 인생]에 기고

작성자이원규|작성시간14.08.06|조회수85 목록 댓글 0

[책과 인생] 기고 140803/Bumwoosa@chol.co

 

고단하고 서글픈 삶에 대한 위안

 

 

산숙 (山宿)

 

백석

 

여인숙(旅人宿)이라도 국수집이다.

모밀가루 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은 들믄들믄 더웁기도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木枕)들을 베어 보며

이 산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깜아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골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1938. 3. 朝光)

 

 

마음이 번잡해지거나 삭막해질 때 백석의 시집을 붙잡게 된다. 여우난골족, 흰 바람벽이 있어, 팔원, 산숙이 좋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위안이 있는데다가, 한 편의 소설 같은 스토리텔링이 살아 있어서이다. 일제의 압제와 착취 아래 신음하던 시절, 민족의 애환을 시에 담아 동질성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려고 한 작가정신도 물론 좋다.

 

산숙의 시적자아는 백석 자신일 것이다. 평안도나 함경도의 산골을 지나다 여인숙에서 하룻밤 묵으며 갖게 된 생각을 담아낸 시이다. 새까맣게 때가 낀 목침이 있고 윗목에는 낡은 국수분틀이 있는 방,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여인숙 방에 혼자 목침을 베고 누워서 가진 상념들.

 

쉬운 언어로 된 짧은 시이지만 한 줄 한 줄 행간에서 당대의 고단하고 서글픈 삶과 그것에 대한 시인의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마치 소설을 구상할 때처럼 서사적 상상력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백석이 이 시를 쓴 것은 1930년대 후반, 민족이 희망을 차압당하고 어둡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먹고살 길을 찾아 산판이나 금광을 찾아가거나 행상을 하던 이들, 벌목장의 지아비를 찾아갔다 돌아가던 아낙네가 목침을 베고 서글프게 몸을 눕히면 낡은 국수분틀이 윗목에 누워 있다.

사는 게 다 그렇지요. 참고 이겨내면 좋은 날도 올 것이오. 고개를 돌려 나를 보시오

국수분틀은 달관한 노인처럼 아마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삶이 고단하다. 물질은 풍요해도 정신이 고단한 사람들도 많다. 70여 년이 지난 오늘 이 시가 가슴에 다가오는 것은 따뜻한 위안 때문일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