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동국시집 기고 200자 15매 15320
수필
암스테르담에서 음악병이 다시 도지다
이 원 규
지난해 가을 한 철을 아들네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에서 보냈다. 세계 최고라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허보우홀에서 열린 로얄콘서트허보우오케스트라(RCO) 연주회에 갔다. 평생 이 오케스트라를 좋아한 나로서는 죽어도 원이 없을 호사였다.
사실은 늙은 아비로서 조금은 답답하고 걱정스런 마음을 갖고 떠난 여행이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그 나라에서 밥벌이하고 사는데 제 나라로 돌아올 생각을 안 하고 결혼 2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낳지 않고 있어 다짐 받으러 떠난 길이었다. 요새 젊은 애들 다 그렇지. 가서 혼내주고 오게. 가까운 친구들이 그렇게 말했다.
제 잘못을 알아서인지 아들은 이제 아이 낳겠다고 하면서 RCO 연주회 예약표를 내놓았다. 유학시절에도 몇 차례 내가 갔으나 그때는 용돈 송금 받는 처지라 하지 못하다가 이제 제가 돈을 버니 아비를 위해 꽤 비싼 로얄석 티켓을 산 것이었다. ‘녀석아, 네가 한 일 중 가장 기특한 일이구나’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내는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네 아버지 다시 음악병이 도지겠구나.”
‘음악병’이란 집에 클래식 음반이 넉넉히 있는데 쓸 데 없이 또 사들이는 내 버릇, 그리고 나를 핑계 대고 똑같이 하는 사위의 버릇을 아내와 딸이 꼬집어 하는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 누님들 곁에서 일제 내셔널 상표가 붙은 반달형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들으며 음악의 소양을 키웠다. 당시 기독교방송이 대부분 시간을 클래식 음악 방송으로 편성하고 있었다. 내 음악감상은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가서 고1때 고향 인천에서 고교생 음악감상 해설을 했으며 학교 교지에 오페라 해설을 썼다.
베트남전 참전 시절 미군사령관 웨스트 모얼랜드 장군이 클래식 마니아여서 FM라디오로 24시간 음악을 방송했다. 장거리정찰대의 폭파담당 전투원이었던 나는 정신의 마멸 위기에 빠져 있었는데 AFVN 방송으로 내 정신을 지켰다.
소설책 한 권도 사기 힘든 문청 시절, 아끼고 아껴 음반을 사고, 교사가 된 뒤 월급으로 한 달에 한두 장 라이선스 음반을 사곤 했다. 오디오 기기보다는 음반을 모으는 데 집착했는데 한 곡에 대한 모든 연주자의 연주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었다.
월급에서 재형저축 들고 적금 들고 집 사고, 그렇게 살다보니 빠듯해서 음반을 한 장도 사지 못하다가 어느 날 욕망이 쌓이면 참지 못하고 수십 장을 한꺼번에 샀다. 그래서 ‘병’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이었다.
지금은 베토벤 합창교향곡만 20개가 넘게 갖고 있다. 그 많던 LP판은 사위한테 주어버리고 CD와 FLAC 무손실 음원 중심이다. 요즘도 가끔 병이 나서 음반이나 음원 사는 일에 돈을 지르는데 4천 장의 CD와 음원, 평생에 쌓은 내 음악병의 결과이다. 세상의 음악 거의 모두를 가진 셈인데 새 음반이 나오면 또 갖고 싶다.
로열콘세르트허보우오케스트라는 젊은 시절부터 무척 좋아한 음반이었다. 내 방에 콘서트홀과 오케스트라의 연주 사진을 걸어 놓았고 고3담임을 할 때 교실 뒷벽에 똑같은 것을 붙여놓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세계에서 음향시설이 가장 탁월하다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허보우홀, 거기 소속된 오케스트라 연주사진이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현악파트, 황금빛의 관악파트, 그리고 목관파트의 뛰어난 음색을 표현하는 100명 이상의 명연주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속으로라도 음악을 들으며 입시 압박감에서 벗어나라.”
죽기 전에 꼭 한 번 콘서트허보우홀에 가야지.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어 내가 가끔 외국여행을 하고, 당시 걸음마를 하던 어린 아들이 네덜란드에서 살고 콘서트 티켓을 끊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콘서트홀은 130년이 된 고풍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연주 시작 전 로얄석에 점잖게 앉아 기다리는데 동양인 노부부, 젊은 부부가 앉은 게 궁금했는지 옆자리 중년여성이 일본에서 왔냐고 내게 영어로 물었다. 나는 코리아에서 왔다고, 젊은 시절부터 여기 오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아들이 거들었다. 아버지는 한국의 소설가이며 클래식 음악 마니아로서 이 오케스트라 음반 2백 장을 포함해 4천 장의 CD와 음원을 갖고 있다고. 주변에 앉았던 네덜란드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연주가 시작되었다. 나보다 네 살 많은 늙은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는 120명의 단원들을 부드럽게 휘어잡아 섬세한 연주를 이끌어 냈다. 관객석이 체육관처럼 수평이고 오케스트라석이 경사진 채 안으로 조금 휘어진 홀의 구조가 기막힌 음향을 창출하는 것 같았다. 나는 더할 수 없는 행복감에 빠졌다.
아들 며느리가 출근하고 나면 할 일이 없었다. 홍신선 선배님네 문예지 『문학선』에 연재하는 장편소설을 퇴고를 끝내고 유레일패스를 끊어 주변 국가들을 돌아다녔다. RCO 연주의 맛을 본 나는 유명연주회를 찾아다녔고 결국은 우리 돈으로 모두 합해 2백만 원을 입장료로 썼다.
나는 평생 음악을 들어 귀가 예민해져서 연주회보다는 명음반 편이다. 금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 번쯤 유명연주회가 열리는데 4월 그 RCO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 5월 북독일방송 교향악단 말러 교향곡 연주는 갈 생각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망칠십(望七十)에 이른 오늘, 베트남 전선에서 내 정신을 지켜주었듯이 음악은 나를 지켜주는 위안이다. 음악으로 선심도 많이 쓴다. 주변의 친구와 후배들에게 그가 좋아할 만한 음원을 천 곡쯤 골라 USB에 넣어 주면 무척들 좋아한다. 음악으로 인해 너그럽고 여유로워지니 사실 음악은 내개 병이 아니라 최고의 보약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음악병에 걸려 평생을 살았으니 내가 죽으면 아들딸이 아마 음악을 틀어 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