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동국시집 기고 산문 16207
분덜리히 듣기 50년
이 원 규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자꾸 먹으면 질리고 세계 최고의 명화도 여러 번 보면 심드렁해지고 사랑의 열정도 식으면 무덤덤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내게는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1966년 36세로 요절한 독일의 리릭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의 노래이다. 그의 대표 음반인 도이치 그라마폰의 『슈베르트・슈만・ 베토벤 리트』에 실린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시랑」 첫곡 「아름다운 5월에」 와 베토벤 4리트의 첫곡 「아델라이데」는 내 평생에 아마 3천 번은 들었을 것이다. 내 아이들이 다섯 살, 세 살일 때 따라서 흥얼거릴 정도였으니까.
내가 분덜리히를 처음 들은 것은 고교 2학년 한참 고전음악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당시 클래식 음악을 주로 방송하던 기독교방송(CBS)을 통해서였다. 우리집에는 반달형 일제 내셔널 트란지스타 라디오가 있었는데 음악을 좋아하는 누님들 극성 때문에 아버님이 사신 것이었다. 그때 들은 것이 「아델라이데」였다. 음울한 분위기, 사색과 철학을 요구하는 듯한, 절제된 듯한 독일 바리톤 음역 성악가들과 달리 음색이 맑은 햇살같이 투명하고 이탈리아 펠칸토 성악가들 같은 열정이 깃들여 있었다.
다음해 봄 고3이던 나는 중증 류머티스열이라는 깊은 병에 걸렸고 장기결석을 했다. 대학입시도 물 건너간 듯싶었다. 소설책과 음악에만 빠져 절망을 이겨 나가려 했다. 외가가 2층집 가진 부자였고 좋은 오디오 기기가 있었다. 무남독녀로서 숙명여대에 다니던 외사촌 누님이 방송국에서 낡아 폐기처분한 분덜리히 LP음반을 구해다 주었다. 1960년대의 폐기음반이라면 잡음 많고 건너뛰고 겉도는, 거의 절반은 들을 수 없던 것. 그래도 그것을 애지중지하며 분덜리히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해 9월, 기독교방송을 통해 놀랍고 슬픈 소식을 들었다. 분덜리히가 불의의 사고로 요절한 것이었다. 사냥을 좋아한 그가 친구 집에 갔고 신발 끈을 제대로 안 맨 채 계단을 내려오다 발에 걸려 넘어지며 손잡이 난간을 잡았는데 그것이 벽에 제대로 박혀 있지 않아 거꾸로 추락해 뇌진탕으로 죽은 것이었다. 나는 그날 혼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후 그의 노래를 들으며 절망을 이겨냈고 소설을 쓰겠다고 국문과에 갔다.
복학생이던 197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라이선스 음반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분덜리히 새 음반을 사서 소원을 풀었다. 10년쯤 뒤 승용차를 샀을 때 돌비 녹음 카세트가 나왔고 그것을 들으며 차를 몰았다. 다시 세월이 가서 주머니 사정이 좀 나아지자 오페라 아리아, 이탈리아 가곡 등 그의 노래가 있는 모든 음반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몇 년 뒤 가슴 무너지듯 슬픈 음반을 손에 넣었다. 『Der letzte Liederabend』, 스튜디오 취입이 아닌 마지막 연주회 라이브 음반이었다.
분덜리히는 1966년 8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어셔 홀에서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리트, 그리고 슈만의 「시인의 사랑」 전곡 모두 합해 27곡을 불렀다. 신성처럼 떠오른 36세의 테너에게 에든버러의 청중들은 끝도 없는 커튼콜을 보냈고 그는 슈만의 「연꽃」,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중 「초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내 사랑을 전한다」 를 앙코르 곡으로 선사했다, 욕심쟁이 청중들은 ‘한 곡만 더’를 외쳤고 분덜리히는 지친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이것으로 내 리사이틀을 모두 끝내기를 원합니다.” 그 말을 하고 그는 슈베르트의 「음악에」를 불렀다.
3주 후에 죽었으니 생애의 마지막 육성 발언, 마지막 노래였다. BBC가 스테레오로 녹음한 실황음반을 들으면 그의 가쁜 호흡, 노래가 끝나고 청중이 더 이상 앙코르를 외치지 않고 우레 같은 박수만으로 경의를 표하는 것이 생생히 느껴진다. 박수소리는 길게 이어지고 마치 연극무대에서 마지막 불이 꺼지듯 점차 작아지다 사라진다. 그건 도이치 그라마폰의 제작기법일지도 모르겠다. 금년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 마지막 리사이틀에서 마치 숙명적 예언처럼 그가 한 말, 그리고 청중의 박수 소리는 긴 세월을 건너 지금 내 서재 스피커에서 내 귀를 울리고 있다.
그를 좋아한지 50여 년, 나는 정말 프리츠 분덜리히를 듣다가 늙어버렸다. 귀가 닳도록 들었는데 한 번도 싫은 적이 없었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독특한 집착 때문은 아닐 것이다. 전 세계에 그의 팬들이 그때보다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노경에 들어서인지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내가 죽은 뒤 내 소설을 이렇게 좋아하는 독자가 한 사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