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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원규의 서재

인천 서곶의 섬 프롤로그

작성자이원규|작성시간17.02.19|조회수181 목록 댓글 0

    서구문화원 기고


오랜 기억 속 서구의 섬들 170114

  -스토리텔링을 통한 부활을 위하여-

                                      

                                                                 이 원 규/소설가. 전 동국대 교수

 

 

필자는 조상 대대로 300여 년을 인천광역시 서구 연희동에서 출생해 살아왔다. 선친(이훈익 향토사가)의 인천향토사 연구를 도와드리기도 했고 모시고 차를 운전해 답사를 다닌 일도 많다. 필자의 유년시절 기억, 아버님과 지역 원로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대선배님들, 그리고 같이 늙어온 친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20여 년간 인천 서구의 지명과 관련하여 집필했던 여러 원고들, 그리고 문헌자료의 기록들을 섞어 가면서 내 고향 인천 서구의 섬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갯벌 매립으로 이제 거의 모두 사라진 내 고장의 섬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남겨야겠다는 결심 때문이다. 검단 앞바다 섬들은 인천시사서구사의 지명부분을 집필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내 고향 서곶보다는 잘 알지 못한다. 상세히 기술할 수 없어 유감이다

 

청라국제도시가 각광을 받고 있으니 내 고장의 사라진 섬들이 스토리텔링으로 부활되기 바라는 마음이 크다. 학술적인 것은 다른 연구가들이 글로 쓰실 것이니 스토리텔링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려 한다. 인천 서구의 섬들 이야기가 중요한 문화콘텐츠로 떠오르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필자는 서곶초등학교 4학년 봄 처음 소풍 가서 표고 395미터인 계양산에 올랐다. 1,2,3학년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에서 도롱뇽을 보며 소풍하고, 4학년이 되어야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 마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멀리 서울 남산이 보였고 서쪽으로 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허정 교감 선생님의 설명을 따라 합창했다.


청라도는 파렴, 장도는 노렴, 율도는 밤염, 사도는 배암섬.”


허정(許楨 1924-2003) 선생님은 경서동 출신으로 서곶초등학교에만 거의 20년 근무하시어 60-70대 거의 모든 서곶 토박이들의 스승님이시다.


서곶과 검단의 갯벌은 경사가 매우 완만하여 밀물과 썰물이 빠르게 드나들었다. 섬들은 밀물 때는 바다에 잠겨 푸른 수평선 끝에 보이기도 하고 썰물 때는 망망한 갯벌의 끝에 얌전히 앉은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 밀물과 썰물의 시간차를 이용하여 드넓은 갯벌에서 게와 조개와 맛조개를 잡았으며, 썰물을 따라서 섬까지 걸어가 한두 시간 일을 보고 밀물에 앞서 해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섬들은 갯벌 매립으로 거의 모두 사라졌다. 1차로 난지도가 육지화되었고 경서동 금산 앞의 사도와 까투렴이 1960년대에 이명수방죽공사로 사라졌다. 그 후 동아건설에 의해 1차로 금곡동과 오류동 앞바다가 매립되고 2차로 원창동과 석남동 앞바다가 매립되었으며, 2차로 왕길동, 백석동, 검암동, 연희동 앞바다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이 청라 매립지(처음엔 동아매립지라고 했다)에 포함되면서 거의 모든 섬들이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세어도를 제외한 청라도, 일도, 장도 등 거의 모든 섬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 매립사업으로 인해 인천 서구의 면적은 원래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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