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316 전수현
<무정>은 한국 근대 문학사상 최초의 장편 소설이란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작가 자신의 인생과도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형식의 인생과 삼각관계) 줄거리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생략을 하겠다.
나는 왜 이 글을 읽은 다른 분들이 나와같이 흥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대강의 줄거리와 <무정>이라는 제목만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그 당시에야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지금 읽기에는 솔직히 자유연애와 세 남녀의 삼각 관계 등이라는 표면적 주제가 가슴에 와닿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밋밋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평가된 내용은 읽으면서 확인을 할 수가 있었다. 평소 주인공보다는 엑스트라를 살펴보는 것이 습관이라, 좋은 습관인지 나쁜 습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역시 주제와 이 소설이 주는 대단한 의의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떠한 한 부분에 흥분을 하고 말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형식과 영채의 재회 부분에서였다. 영채는 형식이 어릴 때 자신이 존경하던 스승의 여식이었다. 영채는 예쁘고 똑똑한 아이였는데, 형식과 서로 좋으하는 마음이 있던데다가 스승 역시 형식에게 딸을 맡기려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영채의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는 바람에 집안이 몰락하여 영채 역시 길로 나앉게 되었다. 처음에는 친척집에 가서 지냈으나, 지낼 곳이 못되어 집을 나왔다가 결국 아버지를 위해 돈을 버는 길은 기생이 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어 기생이 된 것이다. 이런 영채가 끝까지 자기 순결을 지킨 것은 순전히 형식에 대한 생각(사랑하는 마음)때문이었다.
그 런 데, ㅡ_ㅡ+시간이 흐르고, 이런 그녀가 형식을 찾아온 순간부터, 오로지 이 고지식한 남자는 영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영채가 처녀일까? 아닐까? 이 향수 냄새를 맡아봐, 분명 영채는 많은 남자들을 껴안았을 게 분명해. 더럽다.. 더러워..... 내 앞에서 불쌍한 척을 하면서 속으로는 나를 비웃겠지? 하다가도 아냐, 그랬을리가 없어. 순결하고 깨끗하게 자신을 지켰을 거야. 만약 그랬다면 이 여자와 결혼을 하리, 자식도 여럿 낳고 행복한 밤을 보내야지 했다가도,또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사실 이런 남자와 결혼을 했다가는 의처증으로 오히려 영채가 정신병에 걸렸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나는 형식이 요새 프로그램 중 <부부클리닉>같은 데 나오는 심각한 의처증의 남편으로 보였다.
영채가 고생하는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오로지 그녀의 "처녀성"에만 집착을 하는 그의 모습에 너무 화가난다. 그녀는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서 또는 돈을 쉽게 벌기 위해서, 요새 말로는 명품으로 몸을 치장하기 위해서 기생이 된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이유야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형식에게 그녀는 '처녀'이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알고 지냈던 영채라든지, 그녀의 마음이 여전히 순수하다든지, 자신을 좋아하는 영채라든지 이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더 열받는 것은 어영부영하는 그 때문에 결국은 지금껏 지켜온 '처녀'를 잃게 되는 것이다. 영채가 기생으로서 몸을 남자들에게 허락하지 않자 이른바 몸값이 엄청나게 오르는데, 이를 돈으로 해결을 하려는 형식의 우둔한 생각때문에 결국 영채는 당하고 만다. 남자들이 마음먹고 나쁜 짓을 하려는 걸 여자의 힘으로 어떻게 당해낼 수 있을까? 그런데도 형식은 그 현장을 목격하고도 영채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도 들지 않았을까? 진작에 형식이 영채를 받아들인다는 의사를 표시했더라면 영채는 그곳에서 벗어났을텐데. 조금 더 극단적으로 생각한다면 영채가 순결을 잃은 것은 형식의 책임이다.
<무정>의 의의와 이광수의 삶과 인생, 이런 것을 다 떠나서 순수한 소설작품으로서만 이 책을 읽은 나의 느낌은 이렇다. 시쳇말로 열 받 는 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것만해도 다행이다.
<무정>은 한국 근대 문학사상 최초의 장편 소설이란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작가 자신의 인생과도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형식의 인생과 삼각관계) 줄거리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생략을 하겠다.
나는 왜 이 글을 읽은 다른 분들이 나와같이 흥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대강의 줄거리와 <무정>이라는 제목만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그 당시에야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지금 읽기에는 솔직히 자유연애와 세 남녀의 삼각 관계 등이라는 표면적 주제가 가슴에 와닿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밋밋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평가된 내용은 읽으면서 확인을 할 수가 있었다. 평소 주인공보다는 엑스트라를 살펴보는 것이 습관이라, 좋은 습관인지 나쁜 습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역시 주제와 이 소설이 주는 대단한 의의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떠한 한 부분에 흥분을 하고 말았다.
그것은 다름아닌 형식과 영채의 재회 부분에서였다. 영채는 형식이 어릴 때 자신이 존경하던 스승의 여식이었다. 영채는 예쁘고 똑똑한 아이였는데, 형식과 서로 좋으하는 마음이 있던데다가 스승 역시 형식에게 딸을 맡기려는 눈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영채의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는 바람에 집안이 몰락하여 영채 역시 길로 나앉게 되었다. 처음에는 친척집에 가서 지냈으나, 지낼 곳이 못되어 집을 나왔다가 결국 아버지를 위해 돈을 버는 길은 기생이 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어 기생이 된 것이다. 이런 영채가 끝까지 자기 순결을 지킨 것은 순전히 형식에 대한 생각(사랑하는 마음)때문이었다.
그 런 데, ㅡ_ㅡ+시간이 흐르고, 이런 그녀가 형식을 찾아온 순간부터, 오로지 이 고지식한 남자는 영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영채가 처녀일까? 아닐까? 이 향수 냄새를 맡아봐, 분명 영채는 많은 남자들을 껴안았을 게 분명해. 더럽다.. 더러워..... 내 앞에서 불쌍한 척을 하면서 속으로는 나를 비웃겠지? 하다가도 아냐, 그랬을리가 없어. 순결하고 깨끗하게 자신을 지켰을 거야. 만약 그랬다면 이 여자와 결혼을 하리, 자식도 여럿 낳고 행복한 밤을 보내야지 했다가도,또 의심하고, 의심하고, 의심하고..
사실 이런 남자와 결혼을 했다가는 의처증으로 오히려 영채가 정신병에 걸렸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나는 형식이 요새 프로그램 중 <부부클리닉>같은 데 나오는 심각한 의처증의 남편으로 보였다.
영채가 고생하는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오로지 그녀의 "처녀성"에만 집착을 하는 그의 모습에 너무 화가난다. 그녀는 자신을 치장하기 위해서 또는 돈을 쉽게 벌기 위해서, 요새 말로는 명품으로 몸을 치장하기 위해서 기생이 된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이유야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형식에게 그녀는 '처녀'이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알고 지냈던 영채라든지, 그녀의 마음이 여전히 순수하다든지, 자신을 좋아하는 영채라든지 이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더 열받는 것은 어영부영하는 그 때문에 결국은 지금껏 지켜온 '처녀'를 잃게 되는 것이다. 영채가 기생으로서 몸을 남자들에게 허락하지 않자 이른바 몸값이 엄청나게 오르는데, 이를 돈으로 해결을 하려는 형식의 우둔한 생각때문에 결국 영채는 당하고 만다. 남자들이 마음먹고 나쁜 짓을 하려는 걸 여자의 힘으로 어떻게 당해낼 수 있을까? 그런데도 형식은 그 현장을 목격하고도 영채를 가엾게 여기는 마음도 들지 않았을까? 진작에 형식이 영채를 받아들인다는 의사를 표시했더라면 영채는 그곳에서 벗어났을텐데. 조금 더 극단적으로 생각한다면 영채가 순결을 잃은 것은 형식의 책임이다.
<무정>의 의의와 이광수의 삶과 인생, 이런 것을 다 떠나서 순수한 소설작품으로서만 이 책을 읽은 나의 느낌은 이렇다. 시쳇말로 열 받 는 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것만해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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