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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무정>에 대한 감상--- (3가지 생각)

작성자이성진|작성시간03.09.24|조회수855 목록 댓글 0
<국어국문학 20010254 이성진.
이광수 <무정>을 읽고>


<무정>에 대해 생각해 본 것들...
(이광수의 대표작 <무정>은 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의 연구와 감상이 가능한, 문학사적 의의를 크게 차지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감상에서는 좀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어떠한 틀을 고정시키지 않은 채 내가 느끼고 생각한 <무정>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기로 했다.)


1. <무정>에 대한 고정 관념에서의 탈출 시도.
고등학교 때 필독서로 지정되었던 이광수의 대표작 <무정>은 내게 재미있는 소설이기 전에 의무감과 부담감으로 읽어야만 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문제를 풀기위한 목적이 아니라 소설을 읽는 목적에 집중하면서 읽어 본 <무정>은 생각보다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무정>이라는 작품이 작가와 관련하여 어떤 점을 유의하여 읽어내야 한다든가, 문학사적 의의를 어떤 점에서 가지고 있는지 분석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등의 책임감을 던져놓고 읽기를 시도했기에 가능했던 재미였다고 생각한다.
<무정>은 1910년대 후반 작품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으로 추정하기에는 까마득한 1910년대가 일부는 지금과 별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일부는 정말 80년 전이라는 과거가 매우 멀게만 느껴지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10년대라 하면 정말 꽤 오래되어 지금의 사람 사는 방식과 크게 다를 것 같고 아주 오래 전의 일 같지만 일면 그렇지 않다는 점, 그리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지금 2000년대에서 느끼고 있는 지극히 당연한 점들이 그 당시에는 꽤나 진보적인 관념이나 인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접하면서 80년의 시대 거리감을 맛볼 수 있었다는 점...... 이러한 점들이 <무정>이라는 소설을 편히 대하였을 때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재미로 소설의 흥미를 도왔다고 본다.


2. <무정> 속 등장인물 생각해 보기....
형식, 영채, 선형,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인) 병욱까지... 더 많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여럿 등장하지만 주인공들은 이들 넷으로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는 내가 그저 느낀 바에 충실하여 인물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했다.
먼저, 형식이라는 인물.
형식은 솔직히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당시 진보적이고, 모범적이라 할 만한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의 성격은 우유부단함이 거의 <햄릿>의 햄릿이 보이는 우유부단함을 뺨친다. 영채와 선형의 가운데에서 갈등하는 것은 작품의 후반에 가서 기차의 고장으로 인물들이 내리고 계몽적인 결심을 하게 된다는 내용에 이르기 전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된다. 영채를 책임져야 한다(?)는 까닭모를 정도의 지나친 책임의식과, 그럼에도 영채의 순결을 계속해서 의심하며 선형과 저울질 하는 그의 태도는 정말 코믹스럽기까지 하다. 영채의 신변 걱정에 안절부절 못하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선형과 결혼하고 유학을 가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영채의 일은 깜쪽같이 잊어버리고 자기 합리화에 빠져서는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내게 보여주었다. 솔직히 형식이라는 인물을 멋있어하면서 봐야 한다는 틀은 내가 가장 부담을 느꼈던 등장인물에 가지는 내 스스로의 고정관념이었다.
영채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풍채에 조선의 여성다운 여성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정> 속에서 끈질기게 안쓰러움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인물은 바로 영채였다. 집안이 망하고, 수감된 아버지를 위해 기생이 되나 올곧은 정신의 대변자인 아버지는 딸의 기생 소식에 죽음을 택한다. 사랑하는 형식(형식을 사랑한 것이 먼저인지, 그녀의 아버지가 은연 중 형식과의 결합을 원했다는 데에서 비롯된 만들어진(?) 사랑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을 찾아 수절을 지키는 기생으로서의 갖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 형식에게 느끼는 것은 무정함이다. 병욱이라는 인물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인생의 변화를 겪게 되어 결국은 주목받는 음악가가 되는 것으로 소설을 끝을 맺지만, 거의 전권에 걸친 그녀에 대한 안쓰러움의 내 마음은 단 두 세장의 진보적인 여성으로의 변화로 표현된 결말로 뒤집기에 너무 길게 이어진 감정이였기에 바뀌기 힘들었다.
선형은 소설 속에서 '신여성'으로 그려진다. 처음에는 형식의 과외 학생 정도로의 존재감으로 (에이, 비, 씨를 따라 읽는- 에이, 비, 씨를 마치 천자문처럼 따라 읽었던 그들의 과외 수업은 웃음이 나오게 만들었지만-) 등장한다. 질투는 여성이 가져서는 안되는 덕목으로 예수님께 기도를 하는 장면은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코믹물인지, 소설인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뒤에서 잠깐 말하겠지만 영채와 형식에 대한 묘한 감정으로 편하지 않았던 그녀의 심기가 기차가 잠시 멈추고 수재민을 돕는 가운데 격정적으로 해결된 점은 조금은 납득되지 않았던 <무정>속의 '우연'의 장치는 아니었나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인물로 병욱은, 현재의 인식으로 보아도 남성성이 강한 여성이였다. 진보적인 의식으로 자살하려는 영채를 설득하고, 수재민을 보았을때 음악회를 여는 일도 강력하게 추진하는 그녀의 힘은 이 시대에서 요구하고 있는 여성의 강한 면모와도 많이 닮았다.


3. <무정>을 1편과 2편으로 나누기.
<무정>을 읽어보면 급작스럽게 변화가 보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채와 형식과 선형의 삼각구도로 애정소설이라 생각하게 만들었던 장면에서 '기차가 잠시 멈추게 되고 수재민을 돕게 되는 장면'에서 계몽소설로의 변화로 탈바꿈되는 것 같았다. 어찌보면 소설의 전반과 소설의 후반의 작가가 다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까지 만드는 급격한(?) 변화라고 생각했다. 질투와, 애정의 줄다리기는 '기차가 멈추고 수재민을 보게 되고 돕게 되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봄날 눈 녹듯 사그러지는 갈등의 요소가 되어버린다. 그동안의 복잡한 감정들이 그렇게 쉽게 정리 되었다는 데 느끼는 나의 당혹감은 매우 컸다. 어찌되었든간에 '조선을 위해 배우고 돌아오자'는 주인공들의 책임감은 당시 진보적인 젊은이에게 요구하는 작가의 강한 메시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자유연애'가 이 소설의 가치를 높이는 점인지, '계몽성'이 이 소설의 가치를 높이는 점인지는 모르겠지만, 1편에서는 전자의 것을, 2편에서는 후자의 것을 모두 노리고자 했던 천재 작가의 욕심으로 인해 후반에 가서 독자인 나는 두 이야기의 괴리감을 살짝(?)느껴야 했다.
그래도 둘 모두 분명 <무정>이라는 한 권속의 이야기로서 재미를 느끼고 중간 중간에서는 감동도 느끼면서 읽었다고 정리하면 깔끔한 결말로(마치 드라마 속 엔딩 장면인양 )정리되는 <무정>처럼 맺어지길 바라는 내 의도된 심히 영향을 미친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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