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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餘白)의 서(書)

작성자권준희|작성시간26.06.12|조회수12 목록 댓글 0

 

여백(餘白)의 서(書)

                           권준희

 

조각돌 둥근 모서리마다

빛바랜 소년들의 指紋이 묻어 있다

 

물이끼 휘젓던 가랑이 사이로

은어(銀魚)의 등짝처럼 미끄러지던 시간들

 

지금의 중랑천 등뼈 위에는

두터운 콘크리트 무대가 얹히고

가공된 장미들이 줄지어 피어난다

 

사람들은 박제된 계절의 뺨을 만지며

조명등 아래 몇 장의 사진을 남기지만

 

보아라, 저 화려한 무덤의 바닥을.

 

장미 뿌리가 필사적으로 움켜쥔 것은

인공의 영토가 아니라

그 아래 웅크린 날것의 진흙

 

노래방 반주음이 강변을 흔들 때마다

무대 밑 어둠 속에서는

눈먼 물고기들이 기어이 흙탕물을 휘저으며

가장 싱싱한 숨구멍을 파내고 있다

 

흘러간 물은 돌아오지 않는 강(江)이 되듯

이곳은 비로소

소년들만의 흐르는 餘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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