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매일신문 2026년 5월 29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행복에 대한 저항시
손택수
연금을 계산하고 노후를 설계하고 새로 나온 보험을 좇아다니다가
봄날이 다지나갔다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고 차 한대를 갖고
여행상품을 검색하는 동안
명품을 간파하는 눈이 생겼는데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고
배신 타령을 한다
와인맛 커피맛을 아는 혀
좋은 브랜드 옷의 감촉은 좋아하면서도
정작 네 살갖에는 무덤덤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주말이면 쇼핑과 외식으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다
여행을 가도 남는 건 사진밖에 없더라 법석을 떨면서
폭식하듯 사진을 찍는다
뼈 빠지게 사노라 살지 못했는가
죽는 것은 습관이 아닌데 사는 것은 습관이 되어서
행복이여, 어쩌다 나는 행복에 대한 저항시를 쓴다.
행복을 위해서도 저항시를 위해서도 이건 참 서글픈 일이다
♦ ㅡㅡㅡㅡㅡ 행복이란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행복은 절로 얻어지는 것
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행복의 열쇠를 가졌음에도 정작 그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행복해지겠다
는 생각 때문이다. 주말이면 쇼핑과 외식으로 파김치가 되고, 여행사진을 모으고, 명품과 와인, 커피맛을
운운하면서 늘 행복을 쫒아간다.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고 차 한대를 갖고 / 여행상품을 검색하는 동안’에도 행복인 줄 모른다는 것은 행복
해져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시인은 행복을 위해서도, 저항시를 위해서도, 행복에 대한 저항시를 쓰는 자신도 참 서글픈 일이라고 한다.
행복은 외부의 조건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왜 꼭 행복해져야 된다는 생각을 할까. 꽃향기를 맡을 수 있고, 포옹할 수 있고, 비를 바라볼 수 있는
창이 있고,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고, 노래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할 줄도 아는......
이 모든 일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닌가.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