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행복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을 많이 쌓아두면 행복할 줄 알고 열심히 일하여 먹을 것을 창고에 가득하게 쌓아두었는데도 행복이 없습니다. 오히려 창고에 쌓아놓은 먹을 것을 도적이 와서 훔쳐 갈까 걱정하고 염려하여 창고 문을 단단한 열쇠로 바꾸고 그 주위로 높은 담을 쌓고 담 위에 유리 조각과 철조망을 두루고 거기에도 부족하여 전기를 넣어두고 그것도 부족하여 경비를 세워둡니다. 그렇다고 창고에 쌓인 양식이 결코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지식을 가지면 행복할 줄 아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태어나서부터 특별한 유모를 모셔 오고 유치원을 골라서 보내고 제일 좋다는 학교를 찾아서 공부하여 학 박사가 됩니다. 그러나 지혜의 왕 솔로몬은 전도서 1장 1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아멘 이는 지혜가 많고 지식이 많으면 행복할 줄 알지만 오히려 그 지혜가 많은 번뇌를 가져오고 그 여러 가지 지식이 근심을 더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먹을 쌓아놓는 것도 많이 배우고 익혀서 지혜와 지식을 쌓는 것도 아닙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것은 염려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동안 염려 걱정을 하지 않으래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염려 걱정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일 때문입니다. 오늘은 내가 가진 것을 먹고 살면 되는데 내일도 먹을 것을 먹으려면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염려 걱정이 나옵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가지려 하고 지금 가진 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염려와 걱정입니다. 오늘의 평안을 내일도 갖기 위함이 염려입니다. 이런 염려는 어디서 옵니까? 그것은 세상 나라 임금에게서 옵니다. 세상 나라의 임금은 마귀입니다. 마귀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자기 백성을 다스립니다. 그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요한복음 8장 4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아멘 마귀가 갖고 있는 것은 욕심과 거짓과 살인입니다. 욕심은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더 가지려는 것이고 거짓은 더 갖기 위하여 남의 것을 부당한 방법으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살인은 비교하여 내보다 더 많이 갖고 있다고 판단 되면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이 갖게 하는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 미움과 질투와 시기이고 그것이 자라면 살인이 됩니다. 이것이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를 사는 사람은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세상 나라를 사는 자들은 염려하게 되고 걱정하게 하여 세상 임금인 마귀에게 절대복종하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않고 사는 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염려하지 않고 걱정하지 아니하면 행복입니다. 어떻게 하면 염려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자족함에서 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아멘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족함에서 평안이 오고 행복이 옵니다. 자족함이 무엇입니까?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다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비한 것들을 우리는 가져다 쓰면 됩니다. 그런데 욕심과 거짓과 살인을 가진 마귀가 세상 임금이 되면서부터 우리는 자족함을 잃어버렸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시기와 미움과 질투와 다툼과 분쟁이 생기게 되어 걱정하고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를 사는 사람으로서는 염려를 내려 놓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바울은 배워서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방법을 빌립보 4장 6절에서 말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아멘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염려하지 않는 비법은 다른 것 아니라 기도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남이 가진 것을 빼앗아 내 부족함을 채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족함을 채움 받은 기도는 이방 종교에서 말하는 기도와는 다른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 종교에서는 내가 필요한 것들을 달라고만 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무조건 달라고만 기도하지 말고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자들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나를 지으시고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하신 분이고 이 세상을 살게 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것들을 예비하시고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구하면 주실 것을 알고 믿기에 감사함으로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듣음으로 하나님을 알고 깨달아 알고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기도하며 사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복을 다 누리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