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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나는 나아지지 않는 걸까.

작성자성창일목사|작성시간26.06.09|조회수54 목록 댓글 0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나는 나아지지 않는 걸까.

이 질문은 대개 밤에 찾아온다. 낮에는 바빠서 생각할 틈이 없다가, 불을 끄고 누운 자리에서 갑자기 올라오는 그 질문. 내가 게으른 것도 아니고, 포기한 것도 아닌데 왜 벽은 꿈쩍도 하지 않는 걸까.

오래 그 질문과 씨름하다 보면 결국 자신을 탓하게 된다. 더 노력하지 않아서, 더 현명하지 않아서, 무언가 부족해서. 그러나 나는 그 자책이 언제나 정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노력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떤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지, 어떤 관계망 안에 있는지가 삶의 방향에 생각보다 훨씬 깊이 개입한다. 그 사실을 외면하고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가혹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과 별개로, 같은 조건 속에서도 삶의 결이 달라지는 어떤 내면의 질서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다.

물리학에 엔트로피라는 개념이 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질서보다 무질서로 향한다는 것. 물론 인간의 삶을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유로서는 정직하다.

열심히 살아도 에너지가 결실로 이어지지 않는 느낌. 열심히 붓는데 독이 채워지지 않는 느낌. 이것을 옛사람들은 황충이라 불렀다. 수확을 앞둔 논밭을 순식간에 초토화하는 메뚜기 떼. 단순한 불운의 이미지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질병, 사고, 잘못된 판단, 믿었던 사람의 배신. 이런 것들이 겹칠 때 사람은 단순히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어떤 시기에는 더 많이 붓는 것보다 구멍을 먼저 찾는 일이 필요하다. 기도를 나는 그런 의미로도 이해한다.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요술이 아니라, 내 삶의 어디서 에너지가 새고 있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 흩어진 것을 모으고, 막힌 것을 살피는 내적 정비.

경제적 결핍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이 없어서만이 아니다.

심리학자 센딜 멀레이너선은 결핍이 인간의 인지적 대역폭을 잠식한다고 말한다.
당장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하는 사람은 십 년 뒤를 설계하기 어렵다. 눈앞의 불을 끄는 일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결핍의 압박이 누구에게나 시야를 좁힌다는 것이 그의 핵심이었다.

조급함이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여기서 시작된다.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검증되지 않은 선택으로 달리게 만들고, 그 결과가 다시 결핍을 심화시킨다. 황충이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토양이 바로 이 상태다.

그래서 결핍의 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대박이 아니다. 오히려 좁아진 시야를 다시 넓힐 여백이다. 멈추는 것이 후퇴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순간에는 멈춤이 가장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비교한다.

누군가는 더 넓은 집에 살고, 누군가는 더 일찍 자리를 잡는다. 그 비교는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오래 지속되면 현재의 감사를 지우고 결핍감만 남긴다.

분복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 허락된 몫. 이 말이 불편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불평등한 현실을 신의 뜻으로 포장하거나, 더 나아지려는 의지를 꺾는 체념처럼 들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분복은 포기가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그릇과 내 그릇을 끊임없이 견주는 방식으로 살 때, 정작 내 그릇 안에 무엇을 담을지를 생각할 여유를 잃는다는 자각에 가깝다. 거대한 저수지보다 깊은 샘물이 더 맑을 수 있다. 넓이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다. 분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비교의 노예가 되는 삶에서 벗어나, 나만의 고유한 방향을 찾겠다는 용기 있는 선택이다.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실수를 하기 쉽다.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리거나,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거나. 그러나 진실은 대개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신앙은 그 사이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탐욕이 판단을 흐리고 있지는 않은지, 원망이 마음을 갉아먹고 있지는 않은지. 기도는 그 점검의 시간이다. 내 삶을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다시 정렬하는 것. 어떤 고난은 견뎌야 할 연단이고, 어떤 문제는 고쳐야 할 습관이다. 그 둘을 분별하는 것이 신앙적 지혜다.

통로가 정비될 때, 정직한 땀방울은 비로소 흩어지지 않고 열매로 맺힌다.

지금 생활이 고단하고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것 같다면, 그것이 반드시 당신의 부족함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

광야는 목적지가 아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왔는지,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물질의 탄탄대로 대신 광야를 걷게 하시는 이유가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당신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정직한 하루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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