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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이후 무엇을 발견하는가

작성자성창일목사|작성시간26.06.18|조회수29 목록 댓글 0

성공의 길과 믿음의 길

사람은 고난 속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평안할 때는 보이지 않던 질문들이 삶이 흔들리는 순간 찾아온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은 진짜 가치 있는 것인가.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의 인생 변화는 고난에서 시작된다.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사람,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 인생의 바닥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

그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고난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고난을 통해 사람은 이전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방향을 다시 정리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내가 이렇게 했더니 성공했다."

이것은 사실일 수 있다. 한 사람의 진실한 간증이다.

그런데 이 문장은 다음 문장으로 전개된다.

"그러니 당신도 이렇게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여기서부터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한 사람의 경험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칙으로 바뀐다.

그리고 더 나아가면 이런 말이 나온다.

"성공하지 못했다면 믿음이 부족하거나 간절함이 부족한 것이다."

이것은 위험한 주장이다.

같은 노력을 해도 타고난 재능이 다르고, 건강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시대의 기회가 다르다. 운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요소도 분명히 존재한다.

간증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어느 순간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리는 지점이다.

성경은 고난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성경에서 고난은 단순히 더 강한 인간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고난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과정이다.

욥은 모든 것을 잃은 뒤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이 발견한 것은 자신의 위대한 가능성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주권이었다.

사도 바울도 많은 고난을 경험했다. 그는 능력 있는 사도였지만 자신의 강함을 자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약함 가운데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고백했다.

성경의 중심은 "내 안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라"가 아니다.

"나의 연약함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신다"이다.

이 차이는 예수님의 광야 시험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귀는 예수님께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절하셨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셨고, 수많은 병자를 고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예수님은 능력을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자신의 욕망과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신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귀는 십자가 없는 영광을 제안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과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중요한 것은 성공 자체가 아니다.

성공의 주인이 누구인가이다.

성경은 부를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욥도 큰 부자였으며, 다윗도 왕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중심은 재산과 성공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여기서 분량의 문제가 들어온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을 나누어 주셨다고 말한다.

달란트 비유에서도 어떤 이는 다섯 달란트, 어떤 이는 두 달란트, 어떤 이는 한 달란트를 받는다. 출발선부터 동일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독수리처럼 큰 그릇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참새처럼 작은 그릇을 받았다.

중요한 것은 독수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그릇을 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칭찬받은 이유는 다섯을 열 달란트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그것을 충성되게 사용했다면 같은 칭찬을 받았을 것이다.

주인의 관심은 결과의 크기가 아니라 충성이었다.

"네 입을 넓게 열라"는 말씀도 모두가 같은 크기의 그릇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분량 안에서, 그 입을 최대한 넓게 열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라는 뜻이다.

현대 성공 담론은 말한다.

"너 안에 있는 가능성을 깨워라."

복음은 말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따르라."

하나는 인간의 가능성을 중심에 두고,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뜻을 중심에 둔다.

성경의 핵심은 "누구나 큰 그릇이 될 수 있다"가 아니다.

큰 그릇이 되지 못해도,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가치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고난을 지나 무엇을 발견했는가.
내 안의 힘인가.

아니면 나를 붙드신 하나님인가.


그 질문에서 성공의 이야기와 믿음의 이야기는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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