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을 읽다 보면 이상한 침묵 하나와 마주치게 된다.
산상수훈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도, 탕자도, 오병이어도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거의 다 복음서 안에 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문서, 바울의 편지들에는 이 이야기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바울은 수많은 편지를 썼다. 교회의 분열을 다루고, 율법과 은혜를 설명하고, 부활의 의미를 가르쳤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의 공생애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도,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도 없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학자들은 물어왔다. 바울은 왜 예수의 말씀을 인용하지 않았는가. 어떤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바울이 이렇게 침묵했다는 것은, 초기 교회가 갈릴리의 인간 예수를 나중에 신학적으로 부풀려 '그리스도'로 만들어낸 증거가 아니냐고. 이것은 가볍게 넘길 질문이 아니다. 바울의 편지가 복음서보다 먼저 쓰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초기 기독교의 실제 모습을 가늠하는 첫 번째 자료가 된다.
하지만 질문이 타당하다고 해서 결론까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바울의 편지는 복음서가 아니다.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를 기록하려는 책이다. 마태는 메시아를, 마가는 고난받는 종을, 누가는 인류의 구원자를, 요한은 태초의 말씀을 보여준다. 반면 바울은 이미 세워진 교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고린도는 분열로, 갈라디아는 율법과 은혜의 혼란으로, 데살로니가는 재림에 대한 오해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예수 전기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응급실에서 처방을 내리는 의사였다. 편지마다 예수의 생애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이미 복음을 들은 이들이었다. 1세기 교회는 문자보다 구전이 중심인 공동체였고, 사도들의 설교와 예수의 말씀은 이미 그들 안에 전승되어 있었다.
바울은 기초를 다시 놓기보다 그 기초 위에서 사는 법을 가르쳤다.
그렇다고 바울이 예수의 말과 삶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고, 필요할 때는 정확히 인용했다. 이혼 문제를 다룰 때 그는 자기 의견과 '주의 명령'을 구분해서 말한다(고전 7:10-11). 사역자가 삯을 받을 권리를 말할 때도 "주께서 명하신 것"을 근거로 든다(고전 9:14).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재림을 설명할 때는 "주의 말씀"을 직접 인용한다(살전 4:15).
바울은 예수의 가르침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필요한 자리에 정확히 꽂아 넣었을 뿐, 굳이 생애 전체를 재구성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문제는 인용의 양이 아니라 관심의 중심이다. 복음서가 예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보여준다면, 바울은 그 일이 왜 중요한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가 예수를 만난 방식이 있다.
열두 제자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를 만났다.
함께 걷고 함께 먹으며 가르침을 들었다.
그들에게 예수는 먼저 스승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길을 걷지 않았다. 그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다. 사도행전이 이 사건을 세 번이나 기록할 만큼, 초대교회는 이것을 결정적인 사건으로 여겼다. 그것은 사상의 전환이 아니라 인생 전체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출발점이 갈렸다. 제자들은 역사 속 예수에게서 출발해 부활의 신앙에 이르렀다.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해 거꾸로 예수의 의미를 이해해 갔다.
그의 편지마다 부활하신 주님의 권위가 먼저 서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예수를 도덕 교사로 소개하지 않는다. 만물의 주, 죽음을 이긴 분으로 선포한다.
여기서 역사학자들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바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서 시작했다면, 그가 전한 것은 역사 속 인물인가 신앙이 만들어낸 신화인가.
정직하게 답하자면, 역사학은 이 질문에 끝까지 답해줄 수 없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 그 시대의 정치적 정황은 역사학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인류의 구원이 되었는지, 무덤이 정말 비어 있었는지를 문헌 분석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신앙도 역사적 검증을 면제받지 못한다. 기독교는 신화가 아니라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을 딛고 서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질문은 깔끔하게 봉합되지 않는다.
초기 교회는 이 불편함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끌어안았다. 그들은 예수가 실제 역사 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선포하는 동시에, 그 사건이 세상을 바꾼 하나님의 일이라고 선포했다.
둘 중 하나를 지워서 얻은 평안이 아니라, 둘을 다 짊어진 채로 얻은 확신이었다.
그리고 이 출발점의 차이는 바울과 베드로 사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요한은 사랑받는 제자의 자리에서 그분을 만났다.
도마는 의심 끝에 못 자국을 만지고서야 믿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새벽, 무덤 앞에서 그분을 만났다. 어떤 이는 병이 나아서, 어떤 이는 절망의 끝에서, 어떤 이는 오랜 지적 탐구 끝에 그분께 이르렀다. 오늘 우리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죄 사함의 감격으로, 누군가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누군가는 삶이 무너진 자리에서 신앙에 들어선다.
이 다양함은 결함이 아니다. 초기 교회는 차이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베드로도, 요한도, 바울도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한 분을 '주'라 불렀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증언의 합창이다. 그런데도 교회는 이것을 분열로 여기지 않았다. 초기 교회는 이 일치를 인간의 솜씨가 아니라 성령의 일로 이해했다.
성령은 사람을 한 지점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십자가에서 시작한 사람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끌고, 사랑을 경험한 사람을 구원의 깊이로 인도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을 부활의 능력으로, 부활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을 다시 예수의 삶과 성품으로 데려간다. 스승으로 만난 예수가 구원자로 다가오고, 구원자로 만난 예수가 만왕의 왕으로 드러나며, 만왕의 왕으로 만난 예수가 다시 선한 목자로 가까이 온다. 서로 다른 예수가 아니다. 한 분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여러 얼굴로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그가 받은 소명의 결과였다. 그는 예수의 생애를 다시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 죽음과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평생을 걸고 풀어낸 사람이었다. 역사학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고, 계속 연구될 것이다. 그러나 그 질문이 답을 다 가져가지는 못한다.
갈릴리의 길을 걸으신 예수와 다메섹에서 만난 그리스도는 다른 분이 아니다. 베드로도, 요한도, 바울도,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도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그분을 만난다.
출발점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끝은 하나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참고도서
* N. T. 라이트, 박문재 역,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4
* N. T. 라이트, 박문재 역,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상. 하)]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