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도의 맺음말은 어떻게 하는가? (2004.11.25)
주일의 공식예배를 끝내는 순서는 예배 인도자가 성도들에게 성삼위의 복을 비는 것으로 하는 것이 통례가 되어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바른 말 쓰기에 네 가지를 유의해야 한다.
첫째 소위 ‘축도’‘(祝禱)라는 가리킴말(指稱語)이 잘못된 것이다. ’祝禱‘라는 한자어는 그 자체가 뜻글자 즉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로 된 어휘로서, 그것을 그대로 풀이하면 ’축‘자도 빈다는 뜻이요, ’도‘자도 빈다는 뜻이 되어, 무엇을 빈다는 목적어가 없고 동사만이 겹치는 과잉표현(redundancy)이 되는 것이다. 이 ’축도‘라는 말을 흔히 ’축복기도‘(祝福祈禱)의 준말로 보기도 하나, 그러한 경우에는 ’축복‘을 ’복‘과 같은 뜻으로 기도의 목적어로 쓰는 것인데, 이미 동사(축)가 들어 있는 ’축복‘은 ’복‘과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일본어에서는 ’축복‘과 ’복‘을 동의어로 쓰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바른 말은 ’축복‘이다. 같은 한자를 쓰는 우리말과 일본말은 다같이 이 말을 잘못 쓰고 있지만, 한자의 모국인 중국에서는 ’祝福‘이라고 바로 쓰고 있다.
둘째, 이 ‘축복’을 강복선언(降福宣言)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개신교의 개념으로는 잘못된 것이다. 그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카톨릭 교회에서는 사제에게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하는 것과 같이 로마교황을 비롯한 사제들에게 복을 선언하는 것이 교리상 가능하겠지만, 만인사제설(萬人司祭說)을 인정하는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목사가 결코 복을 내린다고 선언하는 권한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을 내린다고 선언하는 것은 복을 내릴 수 있는 주체만이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2) 이 축복의 본문은 목사가 성삼위의 복이 성도들에게 있기를 비는 기원형(祈願形, Optative)이므로 선언(Pronouncement)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선언문이 되려면 문법상 직설법(直說法, Indicative)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축복을 할 때에는 그 본문인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의 뜻에 맞게 해야 한다. 이에도 두 가지를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하다.
1) 본문에서 주어는 성삼위가 아니고, 성삼위로부터 내려지는 ‘은혜’와 ‘사랑’과 ‘사귐’(우리말 성경의 ‘교통’은 원어 ‘코이노니아’에 대한 잘못된 번역임)이며, 그 순서는 성부 성자 성령이 아니고 성자 성부 성령인 것도 유의해야 한다(이 이유에 대해서는 신학적인 것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2) 축복의 대상은 본문에 나타난대로 현장의 성도들에게 국한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한 편지에서 언급한 대상이 “너희 모두”인 것을 보아 분명하다. 따라서 이 축복의 대상을 현장의 성도가 아닌 그 이상의 범위로 온 국민 또는 전 세계 성도들에게까지 확대하는 하는 것은 성경의 축복 본문에 어긋나는 것이다.
넷째, 축복을 할 때에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대신에 구약 민수기 6장 24-25절의 본문을 들어 하는 것은 옳지 못 하다. 민수기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전하라고 하신 것인데,, 신약시대인 오늘에 성삼위의 구조로,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에 대한 구원의 은혜를 중심으로 기원하는 축복을 제외하고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성부)의 복만을 집중적으로 기원하는 것은 구약과 신약의 구별을 도외시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끝으로, 현재 한국 교회에서 하고 있는 축복 본문의 끝맺음으로 하는 두 가지 유형 즉 “ ...있을지어다”나 “...을 축원하옵나이다”는 엄밀하게 신학적인 해석으로나 국어학적인 분석으로나 옳지 않음을 지적하고 싶다. 이 문제는 본 칼럼에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므로 생략한다.바른 번역은 “ ...있어지이다”이다 (필자의 책 “주기도, 사도신조, 축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