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를 번역한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요한복음 1장 1-2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의 아름다운 시체(詩體)로 기록된 이 요한복음의 서두는 독자로 하여금 영원에의 깊은 상념(想念)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그것은 그 가운데 있는 ‘로고스’(Logos)라는 어구 때문이다. 그러면 이 로고스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는 그 낱말의 번역에서부터 문제를 만난다. 제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Philo)는 ‘로고스’라는 어휘를 가장 많이(1,300회 이상) 사용한 사람으로서, 로고스 개념 파악에 중요한 단서를 준다. 필로의 로고스 이론은 한 마디로 유대의 종교와 헬라의 철학을 조화 절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최고신(the supreme God)의 형상이라고 말한다(G. Kittel,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IV 80면 이하). 이러한 필로의 로고스 이론은 인격(person) 이 아니고, 성육신이 불가능하며, 완전한 신이 아니며, 선재자(先在者)가 아니며, 메시야가 아닌 점 등에서 요한의 로고스 이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로고스라는 어휘, 즉 소위 ‘로고스 찬양’(Logos hymn)이라고 불리는 요한복음 1:1-18 본문의 주제어는 신약에 330여회 사용되고 있으며, 대개의 경우 ‘말’/‘말씀’(word/Word)을 뜻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 로고스는 그 문자적인 의미(‘말’이란 뜻)와 요한복음 서론에서의 실질적인 개념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있으므로 우선 이 어휘의 번역에서부터 어려움을 경험한다. 일찍이 괴테(Goethe, 독일의 시인, 극작가인 동시에 철학자)는 그의 작품 ‘파우스트’(Faust)에서 요한복음의 로고스를 독일어로 번역할 때, 처음에 ‘das Wort’(말씀, 영어의 the Word)로 했다가 불만이어서, ‘der Sinn’(사상, 영어의 thought)으로 했다가 또 불만이어서 ‘die Kraft’(힘, 영어의 power)로 했다가 또 불만, 마지막으로 ‘die Tat’(행동, 영어의 act 또는 deed)로까지 시도하고는 단념하였다. 영어성경에서는 대개가 ‘the Word’로 번역하고 있으나, Moffat 역은 영어의 ‘the Word’ 나 다른 어떤 어휘로도 번역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Logos’ 라는 원어 그대로 사용하였다.
다음, 중국어역 성경을 보면 최근의 ‘今日聖經’(1979년)이 ‘基督’이라고 의역한 것 외에는 모두가 ‘道’로 번역하고 있거니와, 이것은 그 어느 나라 언어의 번역보다도 합당하다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서이다.
첫째 중국어의 ‘道’는 도교(道敎)의 우주론 또는 우주생성론(cosmology/cosmogony)에서 우주의 근원을 가리킨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보면 우주와 만물의 생성에 대해서 “道 生 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抱陽 冲氣爲和”(42장)라고 하여, 고대 희랍의 철학자 플로티누스(Plotinus)가 만물의 근원적실재로 표현한 ‘하나’(das Eine)보다도 더 근원적인 것을 나타낸다. 여기서 ‘道’는 모든 현상(現象)의 근원적 본체로서, 道에서 一氣(太極)가 나오고, 一氣에서 음양(陰陽) 二氣가 나오고, 二氣와 冲氣(조화의 힘)가 합하여 三氣가 되고, 三氣에서 만물이 생하며, 그 만물은 오행(五行)의 상생(相生)의 원리, 즉 금은 물을, 물은 나무를, 나무는 불을, 불은 흙을, 흙은 금을 생기게 하여 만물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道’의 성질로는 “視而不見 名曰夷, 聽而不聞 名曰希, 搏而不得 名曰微 ... ” 즉 보아도 보이지 않으니 색깔이 없는 것이요(夷는 無色), 들어도 들리지 않으니 소리가 없는 것이요(希는 無聲), 쥐어도 쥐이지 않으니 형체가 없는 것이라(微는 無形)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둘째 중국어에서의 道(도) 는 여러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언’(言, 말씀)이란 뜻이다. 道를 이러한 뜻으로 쓰는 것은 우리나라 문헌에서도 볼 수 있거니와, 우리말 성경 구역(1911년 발행)이 ‘말’(말씀)이라 번역하고 괄호 안에 “혹은 도라”고 한 것은 중국어역 성경을 그대로 따르는 데 있어서 도교의 사상을 고려에 넣은 것이라 해석된다.
그 외에 노자의 體道편에서 “道可道非常道”(말로써 나타낼 수 있는 道는 영구불변한 본연의 도가 아니다)라고 한 것이나, 한비자(韓非子)의 ‘解老’편에서 “道者萬物之所然也”(도는 만물의 본연)라고 한 것 등은 道의 형이상적(形而上的인 성격을 말하는 점에서 로고스와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문헌에서는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여훈’(女訓) 가운데 “口
不道淫聲”(입으로 음란한 것을 말하지 말라) 한 것과, 김병연(金炳淵, 김삿갓)의 시 가운데 “主人莫道無顔色”(주인이여, 낯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라) 등에서 ‘道’ 자가 ‘언’(言, 말하다)의 뜻으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일어역에서는 모두가 ‘고도바’(言)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일본어에서 ‘고도바’라는 말은 한자로는 ‘言葉’로 기록하는데 요한복음 번역에서 Logos 는 ‘言葉’로 기록하지 않고 ‘言’이나 ‘御言葉’(共同譯)로만 기록하는 것이 그 특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라틴어’로는 verbum(말) 또는 Ratio(도리, 이성, reason)로 되어 있고, 불어로는 Verbe(1988년) 또는 Parole(1910년) 로 번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