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렌초(法蓮抄)에
「호렌법사(法蓮法師)는 아침마다 입에서 금색(金色)의 문자(文字)를 출현(出現)시키도다. 이 문자(文字)의 수(數)는 오백십자(五百十字)이니라. 하나하나의 문자(文字) 변해서 일륜(日輪)이 되고, 일륜(日輪) 변해서 석가여래(釋迦如來)가 되어, 대광명(大光明)을 발하여 대지(大地)를 꿰뚫어 삼악도(三惡道) 무간대성(無間大城)을 비추고, 내지(乃至) 동서남북(東西南北), 상방(上方)을 향해서는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에도 올라가 어떠한 곳이라도 과거성령(過去聖靈)이 계시는 곳까지 찾아가시어, 그 성령(聖靈)께 말씀하시리라.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느뇨. 나는 그대의 아들 호렌(法蓮)이 아침마다 외는 법화경(法華經)의 자아게(自我偈)의 문자(文字)이니라. 이 문자(文字)는 그대의 눈동자가 되리라, 귀가 되리라, 발이 되리라, 손이되리라고 정중히 말씀하시리라. 그 때 과거성령(過去聖靈)은 나의 아들 호렌(法蓮)은 자식이 아니라 선지식(善知識)이구나 라며, 사바세계(娑婆世界)를 향해서 배례(拜禮)하시리라. 이것이 바로 진실(眞實)한 효양(孝養)인 것이로다.」(어서 819쪽)라고 있습니다.
이 어서(御書)에는 정령(精靈) · 선조(先祖)를 법화경(法華經)으로 추선공양(追善供養)하는 공덕(功德)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 승조(僧肇)<384-414>가 기록한『법화전기(法華傳記)』에 나오는 오룡(烏龍) · 유룡(遺龍)의 고사(故事)를 통해 교시하시고 있습니다.
또 대성인께서는『우에노니어전어반사上野尼御前御返事)』(어서1574) 등 몇 편의 어서에서도 이 고사를 인용하시고, 특히 신심하고 있지 않는 부모에 대해서는 부모의 뜻을 어겨서라도 법화경으로 추선공양을 하여 성불로 인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하시고 있습니다.
오룡(烏龍) · 유룡(遺龍)의 고사(故事)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 분도 많겠지만, 대단히 흥미 깊은 이야기이므로 이 기회에 꼭 소개를 해 드리고, 앞으로 신행증진의 양식으로 삼아주시길 바랍니다.
일본에서도 백제에서 불교가 전래됐을 때, 그 불교를 호지(護持)하여 흥륭시키려 했던 쇼토쿠태자(聖德太子),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와 일본 고유의 종교를 사수하려고 한 모노노베노 모리야(物部守屋)가 심하게 대립하였으며, 그 결과 수승한 도리를 설하는 불법이 차례대로 유포된 역사가 있습니다.
그 이전에 일찍이 인도 사람인 마등가(摩騰迦) · 축법란(竺法蘭) 등이 중국에 불교를 전한 서기 1세기경에도 종래의 도교 · 유교를 믿는 사람과 타국에서 전해진 불교를 믿는 쪽 사이에 같은 식의 분쟁 · 대립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오룡(烏龍) · 유룡(遺龍) 부자(父子)는 노자(老子)를 교조로 하는 도교의 열렬한 신도임과 동시에 각각 당시 중국 제일의 서예가였습니다.
아버지인 오룡(烏龍)이 마지막 임종(臨終) 때 유룡(遺龍)을 베갯머리에 불러 유언하기를 “너는 서도가로서 나의 뒤를 이어주었다. 나에 대한 효양(孝養)은 불교경전을 서사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법화경(法華經)을 쓰면 안 된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없듯이 우리 집안에서는 노자(老子)를 천존(天尊)으로 숭앙해야 한다. 그런데 법화경(法華經)은 『유아일인(唯我一人)』이라 하며 노자를 무시하는 기괴한 가르침이다. 만약 나의 유언을 어기고 법화경을 쓰는 일이 있으면 악령(惡靈)이 되어 너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라고 엄중히 분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룡(烏龍)은 임종(臨終)을 맞자, 혀가 여덟 쪽으로 갈라지고 머리가 일곱 쪽으로 깨졌으며, 눈, 귀, 코 등의 오근(五根)에서는 피를 흘리고 고통에 신음하면서 죽어갔습니다. 그 이유는 「법화경을 써서는 안 된다」라는 유언 그 자체가 법화경에 대한 불신(不信) · 비방(誹謗)의 죄를 만드는 것이며, 그 방법죄(謗法罪)로 인해 오룡(烏龍)은 임종에 악상(惡相)을 보이며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졌던 것입니다.
아들 유룡은 그 도리를 알 까닭도 없고 부친의 유언대로 경전(經典)을 쓰는 일도 없이, 또 독송(讀誦)하는 일도 없이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중국 제일의 서가(書家)라는 이유로 유룡은 사마왕(司馬王)에게 불려가, 불사(佛事)를 위해 법화경을 서사(書寫)해 달라고 강하게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룡은 부친과 맺은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세 번이나 사퇴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왕은 단념하고 다른 서가에게 서사를 시켰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유룡을 불러「부친의 유언으로 경문을 쓰지 않는 것은 알겠지만 경전의 제목만은 서사(書寫)하라」고 칙명(勅命)을 내려 분부하였습니다.
그래도 유룡이 거부하였기 때문에 왕은 “아버지의 유언으로 서사하지 않는다고 하나, 너의 부친은 나의 신하다. 사사(私事) 때문에 공사(公事)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만약 거부한다면 불사(佛事)를 올리는 곳임에도 너의 목을 치겠다.” 라고 왕명으로 엄하게 명령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유룡은「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제일(卷第一)」부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제팔(卷第八)」까지 8문자(文字)를 여덟 번, 즉 8 x 8 = 64 문자를 써서 왕에게 헌상하고 귀가했습니다. 자택에 돌아가자마자 유룡은 왕명을 겁내서 부친의 유언을 어기고 법화경의 제목(題目)을 서사(書寫) 하고 불효(不孝)한 행동을 깊이 후회하면서 잠에 들어 그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이란 아침 해가 떠서 주위를 비추는 것 같은 큰 광명이 나타나고, 신선(神仙) 같은 사람이 뜰에 서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주위에는 많은 권속들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신선의 머리 위 허공에는 64분의 부처님께서 납시어 계셨습니다.
유룡은 너무나도 거룩한 모습에 합장하고 "신선께서는 대체 어떤 분이시옵니까?" 라고 묻자 그 신선이 답하기를 "나는 너의 아버지 오룡이다. 나는 생전에 법화경을 비방하였기 때문에 임종에 혀가 여덟 갈래로 찢어지고 오근에서 피를 흘렸으며, 머리가 일곱 조각으로 깨져 사후에는 무간지옥에 떨어져 고생하고 있었다. 무간지옥의 괴로움은 임종 시의 괴로움보다 백천억 배나 큰 것이었다. 이 괴로움을 어떻게든 너에게 전하고 법화경을 서사해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취소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법화경의 묘(妙)의 문자, 법(法)의 문자, 연(蓮)의 문자... 이렇게 모두 64글자가 차례대로 무간지옥에 나타나 64분의 부처님이 되셨다. 이 64분의 부처님께서는 하늘에서 감로(甘露)를 내려 죄인에게 주시어 죄를 소멸시키셨다. 죄인들이 '도대체 이 대선(大善)은 어찌된 일입니까?' 라고 64분의 부처님께 물으니 '이것은 무간지옥에 있는 오룡의 아들 유룡이 쓴 법화경 여덟 권의 제목 64자의 문자다. 저 유룡의 손은 아버지 오룡이 낳은 신체의 일부다. 그러므로 유룡이 쓴 문자는 부자일체(父子一體)기 때문에 그대로 오룡의 글이다' 라고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고 말하였습니다.
또 “죄인들도 사바(娑婆)에는 자식 · 처 · 권속 등이 있지만 1년 · 2년 내지 반겁(半劫) · 일겁(一劫)을 기다려도, 또 추선법요(追善法要)를 행해도 선근이 약하고 작기 때문에 지옥까지 닿지 않았지만, 이번에 유룡이라는 선지식(善知識)을 만나 오룡의 권속이 되어 천계(天界)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모두 기뻐해서 먼저 너에게 절을 하려고 생각해서 온 것이다.” 라고 부친은 말했습니다.
또 64분의 부처님께서는 유룡을 향해 “오늘부터 당신을 부모로서 수호할 것입니다. 당신도 수행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임종시에는 도솔(兜率)의 내원(內院)으로 모셔드리겠습니다.”라고 약속했기 때문에 유룡은 더한층 부처님의 광대한 자비(慈悲)를 느끼고 “앞으로는 절대로 외전(外典)의 문자는 서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했습니다.
이렇게 법화경을 비방하고 무간지옥에 떨어진 사람도 법화경에는 妙法蓮華經의 문자가 일륜(日輪)이 되고 부처님이 되고 대광명이 되어 정령(精靈)을 성불(成佛)로 인도하는 대공덕(大功德)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