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관악부 공연 - 교육과학기술부 선정 학생오케스트라>
2. 임종정념(臨終正念)의 뜻을 세우자
금생의 총결산이며 또 그대로 내세의 생처(生處, 태어나는 곳)가 결정되는 중요한 임종이기 때문에 한 번 더 임종의 중요함을 배워보도록 합시다.
대성인께서는 임종을 맞는 마음가짐에 대하여『형제초(兄弟抄)』에「아무 일 없더라도 죽음은 일정(一定)이니라. 색상(色相) 나쁘게 하여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마시라」 (어서 982) 고 말씀하셨고, 또『시죠킹고전답서(四條金吾澱答書)』에는 「명심(銘心)하여 더러운 죽음을 해서는 안되느니라」(어서 1163) 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그 임종 때에 사상(死相)이 나빠서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훈계하시고 또 명심하여 보기 흉한 죽음을 해서는 안 된다고도 훈계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현당이세(現當二世)의 성불이라는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또「임종(臨終)이 나쁘면 법화경(法華經)의 이름을 꺾으리」〔『니시야마전부인어전답서(西山殿後家尼御前答書)』·어서 1584〕라고 훈계하시고 계시듯이 만약 임종의 상이 나쁘면 최승(最勝) · 최존(最尊)의 정법인 삼대비법의 불법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자주 말하는 「법을 낮추게 되는」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착실하게 평소의 신행에 정진하면, 반드시 훌륭한 임종을 맞게 될 텐데도, 해태(懈怠) 따위 때문에 정진을 게을리 해서 임종의 상이 나빴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수지했던 불법에 공덕이 없고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오해하고 정법에 불신, 비방을 하기 쉽습니다. 그것이 법화경의 이름을 더럽히고 법을 낮추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정법을 수지하는 자들은 항상 삼대비법의 정법에 대한 호지(護持) · 홍통(弘通)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대성인의 훈계를 배독하면 정법을 수지하고 신행에 힘쓰는 자로서, 또 자신의 신심의 커다란 목적으로서, 임종의 순간에는 마음을 산란하는 일 없이,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일 없이 죽음을 겁내지 말고 숨을 거두었으면 합니다. 또 남을 원망하거나, 괴로워하는 일 없이, 병 때문에 고통에 괴로워하는 일 없이, 차분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제목을 부르면서 기쁨과 감사 속에서 완이(莞爾)하게 웃음을 띠고 임종정념을 이루었으면 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라도 실제로는 어려운 법입니다.
대성인께서는『우에노전답서(上野殿答書)』에서「임종(臨終)에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신 것은, 일안(一眼)의 거북이가 부목(浮木)의 구멍에 들어가고, 하늘에서 내리는 실이 대지(大地)의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라.」 (어서 1218) 고 말씀하셨듯이, 임종에 실제로 제목을 부르고 정념을 이루는 것은 난사(難事) 중의 난사로, 예를 들면 그것은 하늘에서 실을 내려서 대지에 있는 바늘구멍에 실을 끼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왜 임종정념을 이루는 것이 그처럼 어려운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 니치칸상인께서는『임종용심초(臨終用心抄)』에서 「일(一), 임종(臨終)의 때 마음 흐트러짐에 세 가지 이유 있다는 것. 일(一)에는 단말마(斷末魔)의 고(苦) 때문에, 이(二)에는 마(魔)의 소이(所以), 삼(三)에는 처자(妻子) 식솔의 탄식하는 소리, 재보(財寶) 등에 집착하는 고로 운운」(후지종학요집 3권 259~260) 이라고 교시하시고 계십니다.
처음의 단말마의 괴로움이란, 사람은 임종을 맞을 때 단말마의 바람이 불어 뼈와 살이 분리된다고 하는데, 이 때 천 자루의 예리한 칼에 찔리는 것 같은 격심한 고통을 겪는다고 합니다. 이 아픔은 지금의 의학으로 말하면 암으로 겪게 되는 통증에 해당 할 것입니다. 그 아픔을 견딜 수 없어 제목을 부를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다음의 마의 소이(所以)란,『치병대소권실위목(治病大小權實違目)』에「또한 천태(天台) · 전교(傳敎) 등(等)의 때의 삼장사마(三障四魔)보다도, 한층 더하니라.(중략) 임종(臨終) 하실 때는 각오하고 계시라」 (어서 1238~9) 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기본은 행해(行解)의 증진으로 인해 겨루어 일어나는 삼장사마입니다. 특히 삼세(三世)를 아우르는 일대사로서 임종의 직전에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 성불하려고 하면, 그에 상당하는 강한 마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은 필정(必定)입니다. 우리들은 이 마 때문에 임종정념이 깨져버리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자식들, 가족, 친척의 비탄에 젖은 목소리 때문에 혹은 재산 · 재보 등에 대한집착 때문에 임종정념이 방해를 받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자주 보게 되는 일인데, 만약 처자, 가족들이 임종을 지켜보게 되었다면, 가능한 한 비탄해 슬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제목을 함께 부르고 정념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힘을 기울이길 바랍니다. 또 재보 등은 임종하는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배려가 됩니다.
임종에는「틀림없이 쉽게 제목을 부를 수 있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임종정념을 방해하는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충분히 주의해야 합니다. 니치칸상인께서는 우리들이 임종정념을 이루기 위한 주의(注意)로서 같은 『임종용심초(臨終用心抄)』에서「다념(多念)의 임종(臨終)」과「찰나(刹那)의 임종(臨終)」에 대해 교시하시고 계십니다.
다념의 임종이란『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에「결국은 임종(臨終) 바로 지금에 있다고 이해하고, 신심(信心)을 다하여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어서 513)이라고 말씀하셨듯이 매일의 신심수행 속에서「 임종을 맞는 날은 오늘, 시각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로 제목을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찰나의 임종이란, 인생의 마지막 임종을 말하며 이 찰나의 임종이 바로 금생의 총결산임과 동시에 내세의 과(果)를 결정하는 중요한 임종입니다. 이 찰나의 임종을 훌륭하게 맞이하기 위해서는「임종(臨終) 바로 지금에 있다」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평소의 수행을 통해 비로소 성취되는 것입니다. 즉 오랜 세월 쌓아온 다념의 임종의 행공(行功)으로 인해 마지막 찰나의 임종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신심의 목적을 일생성불과 광선유포로 정하고 광포를 위하여 정진할 것을 서로 맹세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