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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어강, 행사】

삼인불성(三因佛性)을 신심을 통해 개발

작성자손득춘|작성시간16.09.27|조회수327 목록 댓글 0

우리들은 설사 말법(末法)의 보잘것없는 일개의 범부이지만 본불님 니치렌대성인님과 사제상대(師弟相對)의 신심을 관철한다면 본존님과 경지명합(境智冥合)하여 자신의 불성(佛性)을 열고 성불(成佛)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성불을 위한 가장 근본이 되는 불성(佛性)정인(正因)·요인(了因)·연인(緣因)이라는 세 가지의 불성(佛性)으로서 이것을삼인불성(三因佛性)이라고 말합니다이 삼인(三因)()이라는 글자에는 의거하다.’, ‘시작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정인(正因)이란 우주법계(宇宙法界)를 체()로 하는 법신여래(法身如來)의 중도법성(中道法性)의 이()에 의거한 진실의 부처님의 생명입니다. 즉 이것은 본래 일체중생도 성불을 위한 올바른 인()이 되는 불성을 생명 속에 갖추고 있다는 것으로써 이것을정인(正因)의 불성(佛性)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이정인(正因)의 불성(佛性)은 남녀노소, 민족 등의 차이를 불문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의 오저(奧底) 본래 그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우리들 범부는 그 불성의 존재를 자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땅속에 금괴와 같은 보물이 있어도 밖에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올바른 본존님을 선택하여 정법(正法)의 신심을 확립해 간다면 본불님께 갖춰진 법신여래(法身如來)의 공덕에 의해 존귀한 부처님의 생명을 내 몸에 현현해 갈 수가 있습니다.  또 그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이정인(正因)의 불성(佛性)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어떠한 형태로 자신의 생명에 갖춰져 있는가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사물을 생각하거나 냉정한 판단을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며또 때로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고 그 감정에 흘러버리는 붙잡을 수 없는 마음도 있습니다그것은 여러분도  각각 하루를 사는 과정 속에서 실감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신심의 마음을 우리의 심중에 품고 부처님 곁으로 우리의 마음을 정하고 심중에 정법을 굳게 세울 수 있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거기에 부모님은 물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고생하고 있는 사람을 구하려는 자비(慈悲)의 마음도 움트게 됩니다또 광포를 위해 활동하고 싶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자연히 길러지게 됩니다.

 

그와 같이 여러 가지의 마음이 자기 자신의 생명 속에서 매일 여러 가지의 형태로 일어나며, 그것이 또 여러분의 생활 속에 반영되어 여러분을 떠받치고 모든 행동의 규범으로 되어있습니다어떤 일에서나 스스로 마음을 정하고 발심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면학(勉學)이나 일에 있어서도 모든 것을 성취하게 되는 근본이 되는 것은 전부 마음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성불을 위한 일념심(一念心)정인(正因)의 불성(佛性)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대성인님의 올바른 본존님 아래에서정인(正因)의 불성(佛性)을 개현(開顯)해 가는 신심만이 즉신성불(卽身成佛)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법화경에는정인(正因)의 불성(佛性)을 각지하는요인(了因)의 불성(佛性)이 본래 일체중생의 생명 속에 있다는 것이 설해져 있습니다요인(了因)()라는 글자에는 잘 깨닫는다.’, ‘이해한다.’라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요인(了因)이란 법계(法界)의 진리(眞理)에 통달한 보신여래(報身如來)의 지혜에 의거한 삼신상즉(三身相卽)의 부처님의 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이 깨닫는다는 것은 땅속에 금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안다는 것으로 거기에는 깨닫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 범부의 어리석은 지혜를 가지고 부처님의 심심한 법문(法門)을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대성인님께서사신오품초(四信五品抄)()를 또한 감당하지 못하면 신()으로써 혜()를 갈음[()]한다. ()의 일자(一字)를 도리(道理)로 하느니라.(어서 p.1112) 라고 말씀하심과 같이 이신대혜(以信代慧)의 신심의 중요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신()의 일념(一念)을 갖고 대성인님 도현의 본문(本門)의 본존님을 향해서 본문(本門)의 제목(題目)을 부른다면 우리의 몸에 갖춰진요인(了因)의 불성(佛性)이 현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불성의 존재를 자각하는 일이 없어도 모든 기회를 통해서 자기 자신이 불의(佛意)를 얻어 대성인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하고대성인님의 대법(大法)이 얼마만큼 뛰어나고 존귀한 가르침인가를 요해(了解)하는 근본이 되는 마음이요인(了因)의 불성(佛性)인 것입니다.

 

즉 이요인(了因)의 불성(佛性)은 본존(本尊)님을 믿고 본불님의 불지(佛智)를 얻음으로써 현현되는 불성(佛性)인 것이며우리들은 이 불성(佛性)에 의해서 올바른 신심의 의의를 이해하여 보은(報恩) 감사의 마음가짐을 갖고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매달 어강에 참예할 때마다 대성인님의 일문일구(一文一句)를 접하고, 어서(御書)를 배독(拜讀)합니다. 그럴 때마다 대성인님의 대법(大法)의 존귀함, 고마움, 본불님의 깨달음의 깊음, 크기 그리고 대성인님의 자비를 감득(感得)하고 신심의 의미를 견실하게 신해(信解)해 갑니다.

 

그리고 대성인님으로부터 불지(佛智)를 얻고 자비를 받아서 자신의 악업(惡業)을 전환하고 공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들 중생은 강성한 신심을 통해서 비로소 즉신성불(卽身成佛)의 길이 확립되어 부처님에게 갖춰진 법보응(法報應)의 삼신(三身)의 이익을 생명 속에 굳건하게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부처님의 경계에 서게 되는 근본이 되는 것이요인(了因)의 불성(佛性)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연인(緣因)의 불성(佛性)입니다. 우리들이 성불의 경계를 얻기 위해서는 그 조연(助緣)이 되는 여러 가지의 신심의 활동이 중요합니다. 즉 땅속의 금이라고 하는 보물을 파내는 것과 같이 중생이 성불하기 위해서는 실제의 신심활동으로서 여설수행(如說修行)이 없으면 안됩니다.

 

우리들이 매일의 근행(勤行) · 창제(唱題)는 물론 사원(寺院)의 참예(參詣),  어보은(御報恩) 어강(御講)이나 중요한 행사, 그리고 좌담회 · 교학에 참가하는 것 등 여러분의 일상생활에서 신심활동의 행동 모두가 요인(了因)의 불성(佛性)을 개발해 가는 조연(助緣)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연인(緣因)의 불성(佛性)입니다.

 

또 본존님에 대한 어보은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공양이나 비록 작은 발심, 작은 선업일지라도 그것이 번뇌(煩惱) · () · ()의 삼도(三道)를 법신(法身) · 반야(般若) · 해탈(解脫)의 삼덕(三德)의 경계로 전환시켜 가는 조연(助緣)이 되는 작용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본존님에게 수많은 연()을 맺고 불연(佛緣)을 닦음으로서 우리 몸에 정법(正法)의 대공덕을 현현하며 성불하게 되는 근본이 되는 것이연인(緣因)의 불성(佛性)인 것입니다그리고 본불님에게 갖춰진 응신여래(應身如來)의 공덕에 의해서 중생의 행동도  자연히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찬 정법광포(正法廣布)를 원하는 모습으로 전환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신심을 해 간다면 여러분이 생각하는가 생각하지 않는가에 관계없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확립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생명의 속에는 삼인불성(三因佛性)이 분명히 갖춰져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신심을 통해서 개발되고 실제로 큰 작용이 되어 중생을 이익 되게 하며, 우리들의 생명은 소생되어 색심(色心) 모두 청정한 생명으로 전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삼인불성(三因佛性)이 중생의 생명 속에서 원만하게 개발됨으로서 그것이 서로 어울려서 중생의 생명을 부처님의 생명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악업(惡業)을 가진 괴로운 경계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대성인님의 대법(大法)과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심에 의거한 발심(發心)에 의해서 참다운 행복한 경계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일에는 어떤 일에도 올바른 인과(因果)로서의 본인(本因)과 본과(本果)가 있고, ()도 악()도 모두 이 인과(因果)를 무시하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올바른 본존님이 있어 본문(本門)의 계단(戒壇)의 의의(意義)가 나타나 있어도 중생인 우리들의 마음에 본존님을 믿고 제목을 부르고 대성인님의 제자로서 살아간다는 강한 신심의 마음, 도념(道念)에 의거한 일념심(一念心)이 없으면 자신의 생명의 오저(奧底)에 있는 진실한 부처님의 경계도 현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의 불성(佛性)을 개발해 가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불력(佛力) · 법력(法力) 우리들의 신력(信力) · 행력(行力) 일체가 되어 부처님과 경지명합(境智冥合)하고 진실의 불법(佛法)의 도리를 알고 성불을 원하고 정법광포(正法廣布)의 뜻을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대성인님의 정법(正法)에는 그러한 인과(因果)의 도리(道理)에 의거한 중요한 교리(敎理)와 본불님의 자비(慈悲) 공덕이 분명히 갖춰져 있으므로, 여러분께서는 신심 상에서 나날의 창제(唱題)를 거듭한다는 참다운 의의(意義)를 확고하게 마음에 새기시고매일의 신행(信行)을 관철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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