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보은어강, 행사】

육도의 삶을 사성(四聖)의 인생으로

작성자손득춘|작성시간16.10.14|조회수221 목록 댓글 0

대성인님은()함은 지옥(地獄()함은 아귀(餓鬼어리석음은 축생(畜生첨곡(諂曲)함은 수라(修羅기뻐함은 천(평온함은 인()이니라. 타면(他面)의 색법(色法)에 있어서는 육도(六道)가 함께 있으며, 사성(四聖)은 명복(冥伏)하여 나타나지 않으나 자세히 찾으면 있느니라.(어서 p.2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글월은 인계에 십계가 호구(互具)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면 육도의 생명은 명확히 보이고 또 사성(四聖)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지만 엄연히 구족돼 있다고 밝히셨습니. 여기서 우리는 육도의 생명상태로 흘러 허무한 나날을 보낼 것인지, 혹은 사성의 생명을 용현시켜 힘차게 주체적인 인생을 열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불법(佛法)에서는 성문계(聲聞界) · 연각계(緣覺界) · 보살계(菩薩界) · 불계(佛界)4가지 생명의 활동을 사성(四聖)’이라고 합니다. 사성(四聖)’이란 욕망을 지배하여 자기 자신을 콘트롤해 가려고 하는 생명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든가 욕망이나 감정에 좌우되고 있는 약하고 추한 자기의 생명을 똑바로 보고 그 생명을 강하고 깨끗한 것으로 해 나가려는 자세를 사성(四聖)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육도(六道)가 지금 가지고 있는 힘의 전부의 세계라면 사성은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서 아직 나타내지 않은 힘을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세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육도윤회(六道輪廻)의 세계에 살고 있어도 육도의 거친 물결에 밀리고 흔들리고 말려들어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인생과 그 거친 파도 속에서도 마치 물놀이를 하듯이 유유하게 즐겨 나갈 수 있는 인생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즉 환경에 이끌려 좌우되는 일생과 스스로 환경을 지배하고 변혁시켜 가는 일생과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생의 갈림길은 자신의 일념(一念)을 어떻게 바꾸어 가는가에 따라 달라지며, 그 생명의 일념을 바꾸어 가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세균 등에 의한 전염성의 병은 많이 줄었지만 그 대신 정신병이나 정신적 자극에 관계되는 병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마음의 괴로움의 내용은 사업상의 문제, 직장의 인간관계, 환경의 변화, 가정 내의 인간관계가 주된 문제였습니다. 즉 인간관계나 사업관계 등의 환경에 지배되어 그것이 생명력을 약화(弱化)시켜서 병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밖의 많은 병이 정신적인 괴로움에 의해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회사의 부장, 과장 등 관리직 간부에게 비교적 심장병이 많다는 것도 한번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입니다.

 

현대의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생명을 강하게 하지 않고서는 환경이나 여러 가지 자극이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여 생명이 약해진다든가 탁해져서 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아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칫하면 우리는 바쁜 일상생활에 쫓겨 향상심을 잃기 쉽습니다. 그러면 육도의 생명상태를 반복할 뿐이고 성장과 진보는 도모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타성에 빠져 자신을 나쁘게 만드는 무기력과 포기라는 생명 경향이 강해지고 목표도 없는 찰나적인 생활에 쫓기게 됩니다. 본존님을 수지하고 신심(信心)에 힘쓰는 우리는 육도의 자세를 타파하는 것에 인간변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은 창제며 괴로워하는 사람을 구제하는 지용의 보살로서 수행입니다. 묘법을 수지한 우리는 모두가 구도심을 불태워 노력해서 보다 인간적인 경애인 사성(四聖)의 생명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육도의 삶의 자세를 극복해 사성(四聖)의 인생 태도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