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연정업어서(可延定業御書)』에「업(業)에 두 가지가 있으니, 일(一)에는 정업(定業), 이(二)에는 부정업(不定業)이니라. 정업(定業)조차도 깊이깊이 참회(懺悔)하면 반드시 소멸(消滅)되느니라. 하물며 부정업(不定業)에 있어서랴. 법화경(法華經) 제칠(第七)에 가로되「이 경(經)은 즉 염부제(閻浮提) 사람의 병(病)의 양약(良藥)이니라」등(等) 운운(云云)」(신편어서 p.760)라고 있습니다.
업(業)이란 태어나면서 갖고 온 모든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으며, 각각 태어나는 나라나 성별의 차이나, 수명 등은 정해져서 태어납니다. 이것을 일괄해서 업(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업(業) 중에 특히 수명(壽命)과 같이 정해져 있는 것을 정업(定業),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고 합니다. 이 정업(定業), 부정업(不定業)은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대성인님은『묘신니부인답서(妙心尼夫人答書)』에「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병(病)에만 의하지 않느니라. 이키(壹岐)·쓰시마(對馬島)의 사람들은 병(病)은 없었지만, 모두가 몽고인(蒙古人)에게 일시(一時)에 타살(打殺)당했노라. 병(病)이 있으면 죽는다고 하는 것은 부정(不定)이니라.」(신편어서 p.900)라고 말씀하고 있어 중병(重病)의 병상(病床)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정업(定業)이 아니라면 죽는다고는 할 수 없고, 가령 건장하여 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정업(定業)이라면 전쟁에서 죽거나 사고로 죽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가연정업어서(可延定業御書)』에「진신(陳臣)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명(命)이 지명(知命)이라고 하여 오십년(五十年)으로 정해져 있었는데, 천태대사(天台大師)를 만나서 십오년(十五年)의 수명(壽命)을 연장하여 육십오(六十五)까지 살았도다. (중략) 그러므로 니치렌(日蓮)은 비모(悲母)를 기념(祈念)하였던바 현신(現身)으로 병(病)을 고쳤을 뿐 아니라 사개년(四箇年)의 수명(壽命)을 연장(延長)했느니라.」라는 실례(實例)를 드시어「정업(定業)조차도 깊이깊이 참회하면 반드시 소멸(消滅)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에, 정해진 목숨이라도 연장(延長)할 수가 있지만, 우리들은 그날그날 건강하게 있으면, 자기가 그렇다고는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묘호니부인답서(妙法尼夫人答書)』에「임종(臨終)의 일을 배운 후에 타사(他事)를 배울지어다.」(신편어서 p.1482)라고 항상 가르치시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심하고 마는 것입니다.
목숨의 고마움은 건강한 동안에는 알지 못하지만, 큰 병(病)을 앓거나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살아 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맙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정업(定業)이란 생명에 관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특히 수명(壽命)이 정해져 있는 것을 정업(定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다른 일에 관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해져 있으니까 바꿔질 수 없는 것인가 하면 제일 소중한 수명(壽命)조차도 연장(延長)할 수 있는 것이니까 반드시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불법(佛法)에서 말하는 업(業)과, 세간(世間)에서 말하는 운명론(運命論)과 다른 점입니다.
불법(佛法)의 업(業)은 결정되어 있는 정업(定業)조차도 바꿔 가는데, 하물며 부정업(不定業)을 바꾸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운명론(運命論)같이 모든 것이 정해져 있으니까, 되어가는 대로 맡겨두고, 생각하는 것도, 노력도 일체 무용한 것이지만, 불법(佛法)에서는 인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수업(修業)이라든가 정진(精進)같은 것을 특히 강조(强調)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성인님은『스슌천황어서(崇岐天皇御書)』에「곳간의 재(財)보다도 몸의 재(財)가 뛰어나고, 몸의 재 (財)보다도 마음의 재(財)가 으뜸이니라.」(신편어서 p.1173)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가난은 불행이고 유복(裕福)만이 행복이라고 하는 의미는 미진(微塵)도 없는 것입니다.
또,『묘신니부인답서(妙心尼夫人答書)』에「열반경(涅槃經)에는 병(病)이 있는 사람은 부처가 된다는 연유가 설(說)해져 있도다. 병(病)에 의해서 도심(道心)은 일어나느니라. 」(신편어서 p.900)라고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병(病)을 오히려 기뻐하기조차 하시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난이든 병(病)이든 거기에 도심[(道心): 불도수업(佛道修業)]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