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蓮대성인은「일염부제 제일의 어본존을 믿으실지어다. 기필코 신심을 강성히하여 삼불<*석가, 다보, 시방제불이며 말법에서는 그 작용도 모두 대만다라 본존 중에 들어 있음>의 수호를 받도록 하시라. 행학의 이도를 힘쓸지어다. 행학이 끊어지면 불법은 없도다. 나도 행하고 남도 교화하시라. 행학은 신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로다. 힘이 있는 한 일문일구라도 설할지니라」(전집1361쪽)라고 말씀하시어 불도수행을 하는데 있어서는 신(信)<*어본존에 대하는 신심>을 성불의 근본으로 하고, 더욱 더 그 신에서 일어나는 행(行)<*구체적 실천으로서의 수행)과 학(學)<*불법의 가르침을 배우는 교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실로 신, 행, 학이야말로 불도의 기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신(信)입니다. 대성인은「대저 불도에 들어가는 근본은 신으로써 본으로 한다」(전집940쪽)라고 말씀하시고 우리들 범부는 단지 신에 의해서(본존님과 감응하여)즉신성불 할 수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음 두번째로 행(行)입니다. 아무리 신에 의하여 성불이 된다고 하여도 단지 마음속에서 믿을 뿐으로서 그것을 신구의<*신체의 행동, 입으로 말 하는 언어, 마음 속에 생각하는 것>의 모든 것으로 표현하지 아니한다고 하면 그 믿음은 진짜라고 할 수가 없으며, 또 그 이상 믿음을 깊게 할 수가 없습니다.
가령 나는 마음속에서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갖고 있으나 머리를 숙이지 않고 고맙다라고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면 그 감사의 뜻은 강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역으로 만약 감사의 뜻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고해도 감사의 말과 태도를 표시한다면 그것이 스스로의 내심에 영향을 주어서 오히려 감사의 뜻이 깊어집니다.
앞의 예와 같이 신(信)에 대해서도 본존님을 대하는 존경의 뜻을 몸과 입으로서 표현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행(行)의 중요성이 존재합니다. 믿음을 형태로 표현한 것이 행이고 또 신(信)을 깊게 하는 것이 행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스스로가 사종방법을 버리고 본존님을 합장 예배하는 것(자행=근행)과 그 신념을 타에게도 개진하는 것(화타행=절복)이 행의 기본이 됩니다.
제26세 니치칸상인은 행의 중요성에 대하여「가령 신심이 있다고 해도 만약 행이 없다면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음이니라. 고로 기신의기(起信義記)에 말하기를 “신이 있고 행이 없다면 즉 신이 견고하지 않다. 행을 쾌히 따르지 않은 신은 연에 조우하면 즉시 물러난다”운운」(성전857쪽)라고 말씀하시고 행이 없는 신은 결코 견고한 신이 되지 않고 무엇인가의 연(삼장사마, 삼류의 강적)에 닿아서 퇴전 될 것이라고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세번째의 학(學)에 대하여 대성인은「유해무신이라 해서 법문을 알아도 신심이 없는 자는 결코 성불 할 수 없느니라」(전집1443쪽)
「통틀어 나의 제자들은 나와 같이 정리를 수행하시라. 지자, 학장의 몸이 되었어도 지옥에 떨어지면 무슨 보람이 있을손가. 결국 시시념념에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 할지어다」(전집1367쪽) 등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만약 신이 없고 행이 없다고 하면 학만으로는 성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홍의 일에 가로되 “원신이라고 함은 이에 의하여 일으키고 신을 행의 본으로 ”운운」(전집1244쪽)라고 있듯이 불법의 도리를 배움으로서 부박(浮薄)하고 맹신(盲信)이 아닌 확고한 신을 배양 할 수가 있어 그 신에서 일어나는 확고한 행이 일어나 그 결과, 신이 강성하게 되어 그 신에 의하여 성불이 되는 것입니다.
일련정종에서는 이 셋의 관계를 중요도의 순서에 따라서 단적으로 일신, 이행, 삼학이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일생성불을 지향하여 올바른 신행학에 매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