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
게리 토마스 / CPU 2006.8.21~
1.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현대의 사회에는 교회 바깥뿐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도 영적 공허함, 허기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영적 양분을 섭취하는 법을 전혀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흐려진 것은 아니지만 습관적이고 쳇바퀴 같은 삶에 빠져 영혼이 무감각해 진 사람들도 있다. 영적 침체에 빠져 있다면 영적 식단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죄, 중독, 기타 영적 불량식품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야 말로 모든 죄의 가장 강력한 해독제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특정한 성품과 특정한 영적 기질의 소유자로 지으셨다. 그리고 그 지으신 방식에 따라 예배 받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다가가는 길을 좁히지 말아야 한다. 어떤 한 방법이 한사람에게 양분이 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에게 양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질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찾아야 한다. 교회사나 신학을 공부하는 것, 찬송가를 읽거나 부르는 것, 춤추는 것, 숲 속을 거니는 것 모두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성경인물들을 보면 그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음으로, 모세와 엘리야는 악의 세력들과 다양한 대결을 펼침으로, 다윗은 열정적 예배방식으로, 솔로몬은 무수한 제사를 드림으로 에스겔과 요한은 뛰어난 감각으로 하나님의 웅장하고 다채로운 이미지를 매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모르드개는 고아 신세의 에스더를 포함하여 남들을 도움으로, 베다니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그분을 만났다.
영성이란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 맺는 방식이며, 그분과 가까워지는 방식이다. 저자는 이 영성을 9가지로 구분지었다.
▶자연주의 영성: 야외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하나님이 지으신 삼라만상에 둘러싸여 그 분을 구하는 법을 배운다.)
▶감각주의 영성: 오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그림, 음악, 향기등 오감으로 느낄수 있는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남)
▶전통주의 영성: 의식과 상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신앙의 역사적 차원에 속하는 것들, 즉 의식, 상징, 성례, 제사등에서 양분을 얻으며 훈련된 신앙생활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금욕주의 영성: 고독과 단순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혼자 남아 기도하는 것, 침묵과 단순성속에 기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남)
▶행동주의 영성: 참여와 대결로 하나님을 사랑한다.(정의의 하나님을 섬기며 교회를 다시 세상에 나가 불의와 일전을 벌이기 위한 재충전의 장소로 본다. 모세, 엘리야)
▶박애주의 영성: 이웃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남을 섬김으로서 힘을 얻는다. 테레사 수녀)
▶열정주의 영성: 신비와 축제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단지 개념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체험하고 느끼고 감동에 잠기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들의 영적 혈액은 예배의 흥분과 신비이다. 다윗)
▶묵상주의 영성: 사모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사랑하는 아버지와 신랑의 이미지가 그들의 하나님을 주도하며 하나님을 연인으로 지칭한다. 베다니의 마리아)
▶지성주의 영성: 생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하나님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때 가장 가깝게 느껴진다.)
H.노먼 슈와즈코프 장군, 엘리자베스 여왕, 베토벤, 척 스윈돌, 트윌라 패리스,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 즉, 장군, 정치적 통치자, 작곡가, 종교지도자, 음악가, 시인인 이 사람들이 한 사람안에 총집결된다면 누가 나올까? 바로 ‘다윗 왕’이다.
‘이상적’ 그리스도인은 전부는 아니라도 다수의 영적 기질을 보여줄 수 있다. 물론 모든 기질의 모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의 목표는 자아실현이나 영적 자아도취가 아니라 영의 양식을 섭취함으로 하나님을 새로운 방식으로 알고 전 존재를 다하여 사랑하며 그 사랑을 이웃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흠모)을 다하고 목숨(의지)을 다하고 뜻(신념)을 다하고 힘(몸)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 즉, 온전한 그리스도인에게는 흠모, 신념, 헌신, 봉사가 나타나야 한다.
신앙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달콤한 데이트가 아니라 결혼 생활하는 법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삶의 일상과 기복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분을 즐거워하고 그분의 뜻을 따를 수 있는지, 또 그 사랑을 늘 새롭게 간직하고,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이해가 어떻게 자라갈 것인가를 알아가는 것. 그것은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 가능하다.
하나님은 하늘 아버지께 가까이 가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는 자녀들을 찾고 계신다.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도 하다.
(당신의 삶에 일정 기질이 발견되지 않은 까닭은 한번도 거기에 노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 자연주의 영성 : 야외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예배드리는 장소가 우리 예배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연주의자들은 의례적 건물과 푹신한 회중석을 떠나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전혀 새로운 ‘성전’ 즉 자연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된다.
성경 속에도 많은 예화와 비유가 자연에 바탕을 둔 것이 많다. ‘생수의 강’, ‘푸른 초장’ 등이 있으며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현현’, 즉 그분의 임재는 대부분 광야에서 일어났다.
하갈은 사막에서, 아브라함은 산에서, 야곱은 강나루에서, 모세는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만나주셨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 영적진리를 시각화 할 수 있고 하나님을 더 밝히 볼 수 있으며, 안식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듣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피조 세계를 통해 말씀하신다. 장미의 가시를 통해 모든 현세의 단맛에 쓴맛도 섞여 있음을, 파리를 잡아먹는 거미는 마귀와 유혹을 나타내며, 바다로 흐르는 강물은 만물이 하나님을 향함을 상징한다. 또한 그 아름다움과 다양한 모습을 통해 무한하신 하나님과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자연속에는 닫지 않는 학교가 있다.
그러나 자연가운데 계시된 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비와 은혜의 하나님이자 동시에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임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땅을 비옥하게 하는 비가 열대성 폭풍이 되어 해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수도 있고, 봄날 채소를 살찌우던 태양이 여름철 미약한 식물을 살라버릴 수도 있다. 피조세계를 보며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과 심판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를 돌보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피조세계는 하나님이 우리의 추운 마음을 덮어주시는 따뜻한 이불일 수 있다. 자연환경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강하게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변화만이 아니다. 그저 쉼이 필요할 때도 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기에 분주한 사역일정 중에도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며 힘을 얻곤 하셨다.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은 이런 시를 남겼다.
“이땅에는 천국이 가득하고 모든 떨기나무는 하나님으로 불붙어 있다. 그러나 보는 자만이 신을 벗는다. 다른 이들은 둘러 앉아 야생 열매를 딴다”
우리 자신의 감정과 감각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누릴 수 없다. 창조 세계를 온전히 맛보려면 영적으로 깨어나야 한다.
먼저 창조주인신 하나님을 찾고 믿어야 한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분이 인간이 되신 것을 마음에 새긴다면 모든 피조물이 내게 전보다 백배나 더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그럴 때 나는 해와 달과 별과 나무와 사과와 배의 진가를 바로 알 수 있다. 그분이 만물의 주인이요 중심임을 묵상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자연을 보아도 무감각하다면 아직 창조주를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산과 하늘과 바다 등 피조 세계의 광대함을 통해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과 지혜와 선을 깨닫고, 피조물의 종류에 주목함으로 하나님이 동시에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음을, 또한 피조세계의 다양한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통해 자비와 사랑이 다함없는 부요한 하나님을 만나고 지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눈앞의 문제에 빠져있을 때는 자연 속에 있더라도 자연이 주는,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놓칠 수가 있다. 숲에 갈 때에는 대화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말씀하실 시간을 드려야 한다. 숲에 갈 때에는 자신을 비우고(내려놓고) 받기 위해 가라.
◆ 자연주의 영성의 유혹
-개인주의: 야외에서 홀로 있는 시간은 세상에 돌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다. 그 시간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분을 피하는 시간이 되어선 안된다.
-영적미혹: 하나님과의 산책 중에 받은 음성은 검증 대상의 조언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확실한 기준은 성경뿐이며 사탄이 우리를 곁길로 빠뜨리려 만든 모조품 체험을 구하지 않도록 자신을 살펴야 한다.
-자연의 우상화: ‘범신론’은 모든 자연 속에 하나님이 있다, 자연이 곧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피조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은 물리적으로 자연 속에 있지는 않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그분의 자상한 관심, 뛰어난 창의력, 질서 등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성령님은 그릇되게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이끄신다.
영적체험도 식욕, 물욕, 성욕처럼 탐욕으로 화할 수 있다. 우리는 영적 절정에 대한 갈망을 절제하며 성령님의 지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존재의 다른 부분들도 개발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경배할 수 있는 새롭고 깊은 길들을 찾을 수 있다.
? ◆ 나는 자연주의자인가?
(당신에게 딱 맞는 내용이면 5, 당신과 전혀 무관한 내용이면1이 된다.)
나는 산이나 숲이나 바다 등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속에 있을 때 그분이 가장 가깝게 느 껴진다.
나는 음악을 듣든 노래를 부르든 실내에 있어야 할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갑갑하다. 내게 하나님이 가장 가깝게 느껴질 때는 밖으로 나갈 때다.
나는 그룹 예배에 참석하는 것보다 작은 시냇가에서 한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더좋다.
나는 쌀쌀한 날 정원에 나가 기도하거나 따뜻한 날 초원을 거닐거나 다른 날 혼자 산에 오를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자연의 성소: 그림책]이라는 책을 나는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개념을 깨우치거나 격식을 갖춘 예배에 참석하거나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것보다 자연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더 감동된다.
점수 합계 :
점수가 15 이상이면 이 기질 쪽으로 성향이 있다는 뜻이다.
8. 금욕주의 영성 : 고독과 단순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금욕주의 영성은 고독, 청빈, 단순성, 깊은 헌신으로 표현되며 훈련, 엄격함,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수도원’영성으로 말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나실인과 세례요한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침울하고 엄숙한 것 보다는 일상적인 것으로, 단순함 보다는 복잡한 치장 쪽으로 기운다.
이는 자신의 참 자아를 숨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금욕주의 영성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실천에 있어 다른 영적 기질보다 문화에 역행하게 된다.
예수님에게서도 금욕주의 성향을 볼 수 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40일 동안의 금식기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서의 기도 시간, 겟세마네의 기도 등이 있다.
이 시간들은 고통스럽고도 용감한 자기 부인의 행위로 최종적으로 순종을 결단하는 본격 영적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금욕주의 영성은 고독, 청빈, 엄격함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영적활동 중에도 자신을 고갈시키는 것과 채워주는 것이 있으며
두 활동은 보완적이며 균형이 필요하다. 금욕주의 영성의 경우 혼자 떨어져 있는 고독의 재충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도 훈련시키실 때 광야로 부르셨는데 도시의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이 사라진 광야에서는 오로지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빈한 생활은 수도사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기도와 금식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감각의 자극이 낮은 환경을 고르곤 했다.
감각주의자들과 달리 금욕주의자들은 오히려 오감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금욕주의자들은 자신에 대해 엄격함을 보인다.
이것은 삶의 대부분을 하나님을 향한 열정적 추구를 위해 남겨 두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을 대할 때에는 초자여적 너그러움으로 대한다.
◇금욕주의 영성의 행위
?심야기도, 새벽기도-신앙의 표현을 위해 굳이 사막을 찾아갈 필요는 없다.
하루 중 그러한 시간을 구분해 놓으면 된다. 십대 아이들이 데이트나 스포츠 행사를 기대하듯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시간을 기대하며 일과를재조정 할 수 있다.
?침묵-듣기위해선 침묵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불필요한 잡담은 에너지를 소진 시키고 생각을 어지렵혀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할 때가 많다.
가족끼리도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번쯤은 TV나 컴퓨터를 켜지 않고 잡담을 없애기로 합의해 볼 수 있다.
?금식-금식은 절제와도 상통한다. 침묵처럼 금식도 우리의 생활 중에 많은 시간과 생각이 덧없는 일에 소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대상도 음식 외에 TV, 영화, 컴퓨터, 특정부류의 음식, 고기 등 모두 금식이 가능하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과 위로를 누리기 위해 ‘이 세상의 기쁨과 위로’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다.
?순종-순종은 인간의 교만을 깨뜨리고 우리를 겸손한 삶으로 부른다.
단순히 ‘복종하여’ 타인의 리더십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며 사람들은 자기 지도자, 상사, 목사를 비판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어떤 차원에서든 반항은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하며 남을 존중하는 성품을 키워야 한다.
금욕주의자들이 순종을 실천하는 것은 지도자들이 복종 받을 자격을 갖춰서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나 부모나 회사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일을 명할 때는 순종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하나님께 있다.
?일-예수님은 생애 중 90%는 평범한 노동자로 사셨고 극히 적은 시간만 눈에보이는 공적 사역에 할애 하셨다.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는 삶을 기뻐 받으시며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재능과 힘도 하나님이 주셨다. 마음가짐만 바르다면 일과 생활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 예배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고난을 견딤-추우면 무조건 따뜻한 것을 찾고 더우면 금방 시원한 것을 찾는태도는 우리의 영혼이 아직 어리고 나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병이나 더위나 추위나 배고픔이나 피곤함이 올 때 무조건 벗어나고 보자는 태도는 영적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그것을 끌어안고 배움으로 신앙이 자랄 수 있다. 그 밖에 기도원 방문, 단순한 삶도 금욕주의 영성에 도움이 된다.
◇금욕주의 영성의 유혹-개인적 경건의 지나친 강조: 나실인의 서원은 일정 기간에만 해당되었다.
그 기간이 끝난 후에는 고독한 삶을 떠나 신앙의 사회적 본분에 충실했다.
예수님의 고독이 공적 사역으로 이어졌듯이 영적 회복에 대한 우리의 필요는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우리의 본분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고통을 위해 고통을 구함: 욕구충족에 익숙한 사람들은 조금만 불편해도 즉각적 해결을 요구하는 반면 왜곡된 자아상과 병든 심리를 가진 사람들은
고통을 위해 고통을 구한다. 건강한 금욕주의자들은 금욕이 목표가 아니라 수단임을 분명히 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어 내려는 시도: 우리의 행동과 삶과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인정이나 용서를 기대해선 안 된다. 하나님을 구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세상과의 격리를 전제로 한다.
금욕주의자들은 더 높은 삶, 영혼의 삶을 증거 한다. 금욕적 행위들은 우리를 곁길로 빠지지 않게 해주며 영적 비만을 예방해 준다.
◇ 나는 금욕주의자인가?(당신에게 딱 맞는 내용이면 5, 당신과 전혀 무관한 내용이면1이 된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전혀 없이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이 가장 가깝게 느껴진다.
내 신앙은 ‘외향적’이기보다는 ‘내향적’이라 할 수 있다.
‘침묵, 고독, 훈련’같은 말에 매우 호감을 느낀다.
하룻밤 기도원을 찾아 작은 방에서 홀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 하루나 그 이상 금식하는 것은 내게
즐거운 활동들 이다.
[한적한 곳: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은밀한 기도]하는 책을 나는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철야나 새벽기도, 단기간의 침묵 서원, 삶의 단순화 등 은 내게 정말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