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요사체 이야기
요사(寮舍)는
주거공간으로서 절에 있는 승려들이 거처하는 집을 말하며, 수행·의식·축원 등의 용도에 사용되는 종교공간인 법당(法堂)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구분된
건물단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인 채를 덧붙여 요사채라고도 하는 요사는 승방만으로 혹은 승방에 부엌 등이 추가되어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막기 위해
담장을 두르거나 폐쇄적인 ㅁ자 형태의 평면으로 구성하거나 혹은 별도의 구분된 영역에 만들어 가급적 승려의 생활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요사는
▶ 출가한 일반 승려들이 거주하는 일반적인 요사,
▶ 법당을 관리하고 제반 법요를 행하는 분수승(焚修僧)이 거처하는 노전(爐殿),
▶ 고승(高僧)이 거처하는 방장(方丈),
▶ 나이 들거나 혹은 아픈 승려들이 머무르는 정양소(靜養所),
▶ 조선 말 사유재산제 발달로 경제력을 지닌 일부 승려가 독립된 별방을 갖기 시작하면서 성립된 별방제(別房制)와 별가제(別家制)로 인해 사찰 경내에 독립적으로 구성된 요사 등 다양한 형태로 사찰 내에 구성되고 있다.
송광사 하사당
이 가운데 별방제는 조선 말기 성행한 것으로 사찰 안 가옥의 각 방을 각 승려에게 분배하여 거주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시기 사찰의 각 실은 곧 1호(戶)와 같은 개념으로 사승(師僧)과 제자(弟子)가 이곳에서 1호를 구성하여 독립된 생활을 하였다.
이전에도 별방 설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나이든 사승, 병든 승려의 정양소로 사용되었으며, 이 경우 대개 개인이 한 방을 점령하는 경우는 없었으며, 모두가 큰 방에 베개를 나란히 놓고 자거나 자리를 깔고 앉았다.
그런데 사유재산제가
발달하고 각자의 생활에 독립적 부분이 많아짐에 따라 자연히 별방제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 별방제는 한층 발달하여 별가제가 되었는데, 이는 사찰
구역 안에 별가를 세우고 여기에서 완전히 일가(一家)를 이루어 생활하는 것이다.
이러한 별방제와 별가제 성립에 따라 독립적으로 구성된 요사 모습은 선암사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이 곳에서는 과거 일제 강점기까지 경내에 여섯 명의 사승이 각자 독립된 거주단위를 형성함에 따라 설선당, 심검당, 천불전, 창파당, 달마전, 무우전의 독립된 여섯 채의 요사로 된 육방(六房 : 육별방) 건축이 만들어졌다. 이 중 창파당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채의 요사는 모두 담으로 구획되고 심지어 별도의 출입문까지 설치되어 독립된 영역을 형성하고 있어, 별방제에서 별가제로까지 발전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건봉사에서도 그 중심 영역 부근의 낙서암 영역에 1902년 학림과 완허 두 선사가 별실을 갖추고자 개인 자금과 공적 자금을 합쳐 남별당을 지었고, 또한 중심 영역 전면으로 새롭게 형성된 극락전 영역에 담장을 두른 별당을 짓는 등 별방제에서 별가제로까지 확대된 요사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곳의 별방제 및 별가제에 의한 요사는 개인 재산이 아닌 사찰 재산으로 되어 있다.
내소사 설선당
이러한 요사는 예로부터 그 기능에서 법당과 명확하게 구분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부에서 사찰 중심 영역에 구성된 주요 법당으로서
참선 수행을 하던 선방(좌선당)이나 염불 수행을 하던 대방(염불당) 등의 법당을 요사에 잘못 포함시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만해 한용운이 그의 저서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해 당시의 좌선 및 염불 성행에 따른 폐해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 말기에 좌선과 염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상당하였고, 그 결과 좌선과 염불이 점차 쇠퇴하면서 이 과정에서 승려 수의 감소와
더불어 그 수행을 위한 법당인 선방과 대방이 원래 용도가 아닌 승사나 종무소 등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되면서 나타난 잘못이라고
하겠다.
또한 중정에 면한 一자형 선방 후면으로 ㄷ자형 요사가 이어져 ㅁ자로 이루어진 내소사 설선당처럼, 법당과 요사가 기능적으로는 구분되어도 건축적으로는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고 이어져 구성되는 경우, 법당으로서의 선방을 구분 않고 그대로 요사에 포함시킨 결과라고 하겠다
아울러 염불 수행 법당인 대방은 이전의 전통적인 법당과 달리 사찰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특성을 반영하여 자체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승방, 부엌, 수납용 공간 등을 함께 갖춘 복합형 법당임에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하겠다.
대방과 관련해서는 「전등사본말사지(傳燈寺本末寺誌)」를 대상으로 전등사와 그에 속한 총 28개 사찰 중에 대방 건물이 들어있는 15개 사찰을
분석한 김동욱의 연구 결과로서, 많은 사찰에서 요사와 대방을 별도로 갖추고 있는 사실 등을 통해 요사와 대방이 별개임이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이외에도 참선 수행을 하는 선종 사찰에서는 요사까지도 수행 공간의 연속으로 삼고자 하면서 요사가 법당의 수행 기능의 연장선상에 놓였던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요사를 승료, 승사, 승당으로도 지칭하였던 화계사의 옛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승당이란 ‘선원(禪院)에서
수행자가 좌선을 닦는 도장’을 뜻하기 때문이다.
도솔암의 요사채
규모 있는 사찰에서는 요사와 법당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만들어진다. 하지만 단일 건물만으로 된 암자 규모의 사찰에서는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봉안하여 주거와 종교 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져 구분되지 않는 바, 이를 인법당(人法堂)이라 칭하고 법당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인법당을 요사의 범주에 넣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자고 먹고 요리하고 공부하는 온갖 행위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원룸에
대하여 침실, 식당, 주방, 공부방 등으로 일컫는 것과 같다.
승려의 주거 공간인 요사는 종교 공간인 법당에 비해 일반적으로 소박하게 민도리계의 건물로 만들어지며, 수행·의식·축원 등의 종교적 용도를 담지 않는 개인 공간으로 구성되는 점에서 법당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물론 선종 사찰의 경우에는 참선 수행이 연속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요사는 승려의 사적 영역을 어느 정도 보호하면서도 법당에서의 종교 활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사찰마다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적절히 발전해 온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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