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나눔’
허영엽 마티아 신부 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가끔 어머니 꿈을 꾼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장면은 등에 돌이 막 지난 형님 신부를 업고, 머릿수건 위로 짚 똬리를 얹어 항아리를 이고, 한 손으로는 작은 항아리를 쥐어 잡고 산길을 걷는 장면이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산길로 10리 20리를 가서 장독을 팔았고, 돌아오는 길은 늘 밤중이었다고 한다.
전쟁에 징집 나간 아버지는 생사를 알 수 없었고, 어머니 혼자 딸 둘과 갓 난 아들의 가장으로 10년을 넘게 사셨다. 스물다섯의 한참 꽃다운 내 젊은 어머니는 문을 꽁꽁 잠그고 머리맡에는 낫을 놓고 잠을 잤다고 하셨다. 그때의 어머니는 산길을 걸을 때, 고된 일을 마치고 잠들기 전 늘 성모님께 묵주기도를 했고, 청하는 내용은 늘 같았다고 한다. 그저 세 아이의 배가 곯지 않게만 해달라고. 오직 믿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성모님이었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인민군을 지척에서 피하고 맨손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 갔을 때는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좁은 방에 곁을 내주었기에 겨울 추위를 피하고 삶은 감자도 얻어먹으며 허기를 달랬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때 도움을 준 이들이 성모님께서 보내신 천사라고 굳게 믿었다. 젊은 아낙네가 혼자서 험한 산길을 몇 년씩 다니는데 왜 위험하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성모님이 항상 함께 걸어주신 것 같아 늘 마음 편안하게 산길을 걸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지도 오래되었다. 당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나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은 무척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머니가 사시던 빈집에도 한동안 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부재를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죽음은 마치 나를 지탱해주던 이 세상의 마지막 탯줄이 끊어져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이었다.
어머니의 생각과 말, 행동, 기도 습관은 나의 것이 되었다
언젠가 아버지의 목소리를 한번 들었으면 한다는 누나들의 말을 듣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나는 집에서 어머니와의 대화를 녹음했다. 그 녹음을 들어보면 어머니는 결코 말씀이 적으신 편이 아니셨다. 내가 궁금한 옛이야기를 여쭈어보면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 주셨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는 내 안에, 우리 가족들 안에 살아계심을 알게 되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 기도 습관은 나의 것이 되었다. 특히 어머니가 그토록 소중히 간직했던 신앙은 내 안에서도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어머니는 부활하여 내 안에 살아계신 것이다.
어머니의 어머니, 내 외할머니도 하루도 묵주를 손에 놓지 않으셨다. 어린 시절 외가에서 자다가 밤에 잠을 깨면 외할머니는 비스듬한 자세로 어둠 속에서도 성모송을 읊조리셨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묵주를 쥐고 십자고상 앞에서 기도드리는 외할머니의 굽은 등이었다. 내가 한번은 “할머니, 할머니는 기도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어요?”하고 여쭈었더니 빙그레 웃으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주 오래지만 그때 느꼈던 따스함은 여전히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외할머니는 자신이 늘 말씀하신 대로 저녁도 드시고 외할아버지 이불도 잘 챙겨주시고 묵주기도를 하시던 중 선종하셨다. 외할머니의 모든 것을 맏딸인 어머니는 모두 다 배웠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도 혼자 사시던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 씻고 청소하고 아침 기도를 하시고 아침나절 다시 누운 채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면 늘 성모님께 묵주기도를 드리시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어머니는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묵주를 손에 놓지 않고 기도하셨다. 성모님을 생각할 때 어머니를 비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느님은 어머니를 통해 나를 사랑하고 계셔
가톨릭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 신앙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있다. 성모님이 교회의 가장 으뜸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분의 신앙 때문이다. 신앙이란 인간의 생각과 판단으로는 잘 받아들일 수 없지만 하느님의 역사(役事)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모님의 삶은 인간적인 판단이나 생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성모님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루카 1,46)라고 하셨다.
십자가형을 당하신 주님은 죽기 전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먼저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요한 19.26-27)하셨다. 그날부터 사도들은 마리아를 어머니로 공경하였고, 그 제자들은 물론 초대 교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톨릭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당부에 따라 성모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었던(루카 1,42-45) 마리아의 믿음이 그녀를 교회의 어머니로 존경받게 하는 것이다. 우리도 기도할 때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어야 참다운 기도가 된다.
어머니의 사랑,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어머니의 은혜에 대한 보답도 숭고한 사랑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도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서 나를, 우리를 도와주고 대신 기도해주고 계신다. 어머니의 사랑 속에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있다. 아니 하느님은 어머니를 통해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 나를 위해 모든 희생을 하신 어머니의 사랑, 그 기억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