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품었던 회화나무를 아시나요?
정신여학교, 일제의 수색 피해 비밀문서·태극기·국사 교재 등 나무에 감춰
이수진 기자 sjlee@pckworld.com
2019년 02월 14일(목)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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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에는 서울의 수많은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3.1운동이 발발한 지 4일 후인 3월 5일엔 학생들이 남대문역(서울역) 앞에서 격렬한 만세시위를 벌였다.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길러낸 정신여학교(연동여학교의 후신)의 학생들도 대다수 참여했다. 이날 만세시위로 일경들은 당시 종로구 연지동에 위치한 정신여학교를 방문해 조사했고, 배후자로 지목된 김마리아는 학생들과 함께 피체되기도 했다.
이렇듯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산실이기도 하며, 졸업생·재학생 할 것 없이 상당 수의 여학생들이 독립운동에 나섰던 정신여학교(현 정신여자중·고등학교)는 늘 일제의 감시 대상이었고,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수색이 빈번했다.
이때 일본 경찰들의 수색을 피하기 위해 비밀문서와 태극기, 교과목으로 금지되었던 국사교재들을 감춘 곳이 바로 연지동 옛 정신여학교 교정에 서 있는 '회화나무'다. 고목의 빈 구멍에 각종 비밀문서들을 숨겨 위험한 고비들을 넘겼다. 이렇게 남겨진 자료들은 후일 역사를 기록하는데 중요한 뒷받침이 됐다.
정신여중고 교장과 총동문회장을 지낸 이미자 회장(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은 "옛 교정의 세브란스관(현 대호주차장 내 붉은 벽돌 건물)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본부가 되기도 했으며, 태극기와 각종 비밀문서들을 회화나무의 빈 구멍에 숨기기도 하고, 나무 뿌리 주변을 파서 묻기도 했다"면서 "기독교학교인 정신여학교는 일제의 국어말살정책과 신사참배 거부 등으로 설립재단이 해체되는 등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민족의식과 애국정신이 뚜렸한 학교였다"고 말했다.
연지동 회화나무는 서울시 보호수 120호로 지난 1981년 보호수로 지정될 당시 수고 21m, 둘레 390cm이다. 종로구 김상옥로 29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물 왼쪽에 있는 폭이 좁은 '회화나무 계단길'을 15미터 정도 오르면 왼편에 서 있다. 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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