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기가 들어감으로 ●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뼈 저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 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에스겔37:1-10)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른 뼈와 같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말씀은 고통은 만사가 잘되어 간다는 환상을 깨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그 이상의 것들이 필요치 않음을 깨닫게 하고 우리를 타락시킨 행위를 뒤엎어야 합니다.
아담의 반역을 역전시킴으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고통과 시련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시사해 줍니다.
기독교는 부활 신앙 입니다. 부활은 죽음의 고통을 통과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자아가 죽고 모든 탐심, 게으름, 나태함, 염려, 근심이 사라지고 오직 말씀의 순종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서 새로운 미래가 열리게 됩니다.
절망은 하나님을 반역한 인간들을 치유하시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역할을 감당합니다.
절망 속에서 직면한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 에스겔은 희망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생기가 들어감으로 어둠은 우리에게 새로운 빛을 가져다주며 고통은 우리로 하나님을 찾게 만듭니다.
죽음과 절망 저편에는 필연적으로 하나님과의 새로운 삶을 이어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가 죄와 쾌락에 물들지 않는 정결한 삶은 하나님께 드린 거룩한 산제사입니다.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 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생기가 들어간 우리가 죽을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여 살아나게 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