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의 평화.” 기독교 최대의 절기이자 모든 인류가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성탄절이 다가온다. 기독교인들은 믿음의 근본인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라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비신자들도 이날이 다가오면 덩달아서 기분이 들뜨고 흥분된다. 신·불신을 막론하고 성탄절이 전인류가 기뻐하는 날이라는 데는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의 날에 의미를 두지 않거나 심지어 ‘우상숭배일’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여기에는 일부 이단단체 신도들은 물론 일부 그리스도인들도 포함된다. 이들은 성탄절인 12월 25일에 예수님이 탄생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날이 사실은 로마의 태양신 축제일이었다는 데서 근거를 삼는다. 이교도의 풍습에서 유래한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성탄절을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2천여년 전 12월 25일에 탄생했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기독교사전(기독교문사刊, 한영제편, 1991)에 보면 크리스마스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기념일(12월 25일)”이라고 언급한다.
한국민족대백과 사전(한국정신문화원刊, 1991)도 성탄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부활절과 더불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명절 중의 하나이다.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 그 정확한 날짜를 아는 사람은 없지만,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12월 25일을 예수의 출생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12월 25일에 탄생하지 않았는데도 왜 기독교인들은 이 날을 성탄절로 삼게 됐을까? 성탄절의 시작은 로마에서 동지(冬至)에 행해졌던 축제와 긴밀한 연관관계를 지녔을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다. 일부 이단에서는 이를 악용해 성탄절을 폄하하는 것이다. 성탄절이 본디 태양의 신생(新生)을 축하하는 로마인의 태양신 숭배(미트라축제일)일이었다며 성탄절을 기념일로 삼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석가탄신일에 교회에서 예배 드리면 우상숭배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태양신인 미트라의 축제일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탄생 축하일로 삼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페르시아에서 시작한 태양신인 ‘미트라교’가 기원전 1세기에 로마에 전파됐고 이 종교의 축제일이 12월 25일이었다. 종교적 갈등 관계에 있던 기독교인들이 이날을 우상숭배일이 아닌 ‘기독교의 날’로 만들고자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로 삼게 됐다. 즉 우상숭배일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타파하고 배격하고 없애는 한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대안으로 만들어진 날이다.
이건사에서 나온 ‘교회사’(송낙원 저, 1981)에 보면 성탄절이 탄생하게 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지킨 것은 354년의 기록에 나타났으니 곧 로마감독 리베리우스 시대였다. ··· 브루말리아 제일이니 이것은 동지제로서 태양의 떠오름을 축하하는 절기였다. 이런 축제일에 가담할 수 없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별다른 의미로 축하하는 집회를 모색하게 된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 태양이 나온 후에 탄생하셨다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서 이때로 크리스마스를 삼아 축하하는 풍이 시작하게 된 것이니 이것이 곧 구주 강탄의 축하인 것이다.”
한국민족대백과 사전(한국정신문화원刊, 1991)에도 이와 동일한 내용이 등장한다. “본래 로마에서는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점으로 하여 농경신인 사투른(Saturn)과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숭배하는 축제가 거행되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뒤 로마의 교회는 전통적인 축제일을 예수의 생일과 동일시하여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당시 미트라숭배와 사투르날리아(Saturnalia)가 매우 광범위하게 대중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풍습을 억압하는 대신 동화시키는 방법을 사용, 태양의 재탄생에 비유하여 ‘세상의 빛’인 예수의 탄생을 널리 알리고자 한 것이다.”
성탄절은 태양신 숭배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굳이 관련이 있다면 태양신을 숭배하는 게 아니라 그날을 타파하기 위한 시도와 관계가 있다. 이러한 초대교회 신앙선배들의 노력은 대성공을 거둬 지금 성탄절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일로 기억되고 있다.
이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날로서 맞아보자. 물론 그날만 예수님의 날이 아니라 모든 날이 그리스도의 날임을 인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산타클로스의 유래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이라고 답하면 교인이거나 기성세대다. 이젠 정답이 ‘산타클로스’가 돼 버릴 정도다. 몇 해 전 성탄절을 앞두고 팻머스문화선교회(대표 선량욱)가 ‘크리스마스’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는 질문에 서울·경기 소재 중고등학생들 중 30%가 산타클로스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은 ‘크리스마스 트리’, ‘선물’, ‘눈’의 뒤를 이었다.
성탄의 주인공인 예수님보다 인기인이 된 산타클로스는 270년 소아시아 지방 리키아의 파타라시에서 출생한 세인트(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자선을 지극히 많이 베풀었던 사람으로 후에 대주교(大主敎)가 되어,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데, 그의 생전의 이런 자선행위에서 유래,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생겨났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성탄절 전야에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전설을 가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모습은 흰 수염을 기르고 두건이 달린 붉은 옷을 입은 노인으로 상징된다.
학생들이 성탄절하면 ‘산타 클로스’를 떠올리는 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일지 모른다. 성탄절 아침에 깨었을 때 선물을 두고 간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산타 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만일 성탄절에 교회에서 ‘산타클로스’가 아닌 ‘예수님’으로 인한 추억을 지속적으로 성도들의 마음에 심어준다면 산타가 설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산타 할아버지가 끄는 것은 인간에게 친숙한 개썰매가 아니라 왜 사슴 썰매일까? 사슴썰매는 1821년에는 윌리암 글리(William Gilley)가 쓴 ‘Santeclaus’라는 시에서 처음 묘사됐다고 한다. 바로 그 다음해엔 유명한 “The Night before Christmas”라는 시에서 산타클로스가 작은 요정으로 묘사 되었고 여덟 마리의 사슴이 끄는 작은 썰매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
1920년대에 접어들어 드디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산타클로스의 모습이 표준화되었다. 약간은 뚱뚱하고 하얀 수염을 가지고 있고 붉은 옷에 흰 털을 단 그 유명한 모습이 탄생하게 되었다.
빼빼로데이나 발렌타인데이가 자본주의와 결합해 ‘기념일’로 자리잡은 것처럼 산타가 루돌프사슴이 끄는 사슴썰매를 타게 된 것도 자본주의의와 결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대형 백화점인 몽고메리 워드(Montgomery Ward)의 광고 카피라이터였던 로버트 메이(Robert L. May)는 어려서 항상 작고 수줍음을 잘 타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코가 빨개서 사슴들에게 왕따 당하는 빨간코의 루돌프를 만들었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Johnny Marks가 “Rudolph the Red-Nosed Reindeer”를 작곡하여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불리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되었다.
오늘날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독일 서부에서 발생했다. 아담과 이브에 대한 중세 대중연극의 주요소도구는 에덴 동산을 상징하는, 사과가 매달린 전나무였다. 독일인들은 아담과 이브의 축일이 되면 집에 트리를 세우고, 빵(그리스도교에서 구원의 표시인 영성체용 빵을 상징)을 매달았다. 나중에는 빵 대신 여러 가지 모양의 과자를 매다는 전통이 생겼고,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양초도 매달았다. 트리도 이교도의 관습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트리장식을 통해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뻐하고 기념하게 된다면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기독교포털뉴스 제공